지난해 12월 30일, 연길려객운수소가 정식 운영되였다. 이는 고속철과 도로 운수가 련결고리를 이뤄 밀접한 교통망을 실현한 것으로 된다. 료해한 데 의하면 연길려객운수소는 현재 연길서역 고속철 옆 건물에 위치했는데 총투자액은 2억여원에 달하고 건축면적은 1만여평방메터에 달하며 광장 부지면적은 7만 5000여평방메터에 달한다. 연길서역에서 출발하여 화룡, 룡정, 왕청 등 고속철이 경유하지 않은 현, 시로 향하는 려객뻐스 운수선로가 이미 전부 개통되였다. 해당 관계자의 소개에 의하면 향후 연길서역에서 통화, 농안, 료원, 유수, 구태, 덕혜, 송원, 백산, 집안, 계서, 회양, 서란, 가목사, 오상, 청도, 림기(臨沂), 단동, 위해 등 지역으로 향하는 선로도 륙속 개통하게 될 타산이다. 연길려객운수소내에는 티켓구매구, 대기실, 려객봉사소, 특색음식구역, 커피숍, 도서구역, 오락장소 등 편의시설이 마련되여 려행객들에게 각종 편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운수소 외부에도 주차장, 공공뻐스대기실, 택시 대기구역, 출퇴근 려객뻐스 출발구, 관광뻐스 출발구 등이 설계되여있다. 연길려객운수소 해당 책임자는 “현유의 려객운수선로 및 관광려객 운수의 시장자원을 통합하여 규모화,
창업혁신 사업을 깊이 있게 추진하고 성내외 창업단지간의 교류합작을 일층 추동하며 우세를 서로 보완하고 협동발전의 새로운 모식을 형성하기 위해 돈화시 대덕창객단지 및 내몽골자치구의 후룬베얼시 창업단지, 어원커족자치기 민족문화산업단지간의 합작 조인식이 지난 25일 돈화시 대덕창객단지에서 있었다. 료해한 데 의하면 이번 조인식은 돈화시대덕창객단지가 나루배(擺渡)혁신공장, 길림농업과학기술학원 등 성내 창업단지 및 고등학교와 전략적 합작관계를 맺은 뒤 처음으로 성외 창업단지와 합작관계를 맺은 것으로 된다. 체결식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해설원의 안내에 따라 대덕창객단지를 둘러보면서 창객단지의 봉사기능, 양성모식, 대상부화 등 상황에 대해 료해했고 쌍방은 이어서 좌담회를 열고 단지건설, 운영관리, 인재양성 등 문제에 대해서도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돈화시혁신창업봉사쎈터 책임자는 “이번 두 지역간의 합작관계 설립은 대덕창객단지의 봉사기능과 수준을 일층 제고하고 성내외 단지자원과의 상호 공유를 실현하게 되며 두 지역 창업자들에게 보다 넓은 교류 플랫폼과 발전공간을 제공하고 협동발전의 신형 단지발전모식과 윈윈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면서 “돈화시는 이번 기회를 다잡아 ‘진심
지난해 12월 27일, 연변구연가협회 제6기 회원대표대회가 연길에서 소집됐다. 회의에서는 지난 한기 연변구연가협회사업을 총화하고 새 임기의 주석단을 선거했다. 김광철이 연변구연가협회 주석으로 당선됐다. 근년간, 연변구연가협회는 회원들을 단결시키고 부단히 탐구 혁신하면서 인민들이 즐겨보는 많은 구연작품들을 창출함과 아울러 문화혜민 활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했다. 연변구연가협회에서 편찬한 《중국소수민족구연》에는 동북3성의 재담, 만담, 삼로인 등 세가지 종류의 3만자를 웃도는 내용이 실렸는데 현재 국내 예술학교에 해당 곡종류의 교과서가 없는 공백을 메꾸었다. 협회는 또 연길시조선족예술단 구연대와 손잡고 조선족좌창(座唱)) <방망이 노래>, 병창 <유쾌한 산촌>, 삼로인 <행복한 만년>, <상모감성>, 사물놀이 <아리랑> 등 종목들을 창작했는데 제3회, 제4회 전국소수민족구연전시공연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따냈다. 올해 7월, 협회 회원이며 조선족구연가 판소리 전승인인 최려령의 판소리 <흥부가>는 ‘19차 당대회를 즐겁게 맞이하기’제1기 동북지역 우수구연종목전시공연에서 우수종목의 영예를 지녔다. /장향월
최근 한파가 몰아치면서 경기·인천 등지에서 부주의 등으로 인한 화재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3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4분쯤 안산시 단원구의 한 15층짜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난방배관 철거작업 중 불이 나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화재가 발생하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곧바로 안내방송을 실시, 주민 30여 명이 대피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 10여 명이 연기를 들이마시는 등 다쳐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또 오전 7시 7분쯤에는 광명시 광명동의 한 2층짜리 단독주택 지하 1층 A(64·여)씨 집에서 불이 나 A씨가 숨졌으며, 오전 8시 5분쯤에도 인천시 중구 4층짜리 상가주택건물 2층에서 불이 나 1시간 40여 분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건물 내부에 있던 7명 가운데 2명이 연기를 흡입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나머지는 긴급히 대피하거나 소방대원들에게 구조됐다. 앞서 2일 오후 12시쯤에는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영흥화력발전소 내 석탄을 옮기는 하역기 컨베이어 벨트에서 불이 나 이날 오전 0시 30분쯤 진화됐다. 이 불로 컨베이어 벨트가 일부 탔으며, 작업이 모두 끝나 다친 사람은 없었
▲이성률(연무동장)씨 부친상=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장례식장 별관 8호실, 발인 4일 오전 11시, 장지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봉안묘 ☎010-9747-3622 삼가 명복을 빕니다
▲채인석 화성시장 ▲김성제 의왕시장 ▲곽상욱 오산시장 ▲박승원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 ▲윤재우 〃 수석부대변인 ▲조승현 〃 수석부대표 ▲박동현 경기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김형섭 수원서부경찰서장 ▲김용학 경기도시공사 사장 ▲이부영 〃 부사장 ▲박기영 〃 주거복지안전본부장 ▲정상준 〃 경제진흥본부장 ▲이근태 〃 기획홍보처장 ▲김병기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 ▲채광석 〃 전략부문 상근이사 ▲이민우 〃 영업부문 상근이사 ▲손창희 〃 경영지원부장 ▲박해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사장 ▲한의녕 〃 원장 ▲임달택 〃 중소벤처기업처장 ▲조성균 〃 대외협력실장 ▲남창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장 ▲정용왕 〃 부본부장 ▲권준학 NH농협은행 경기영업본부장 ▲김주식 〃 마케팅부장 ▲남궁관철 〃 영업부장 ▲박흥수 수원시청소년육성재단 이사장
<안양시> ◇4급 승진 ▲의회사무국장 최영인 ▲상하수도사업소장 신홍주 ◇5급 승진 ▲녹지과장 김귀배 ▲만안구 복지문화과장 남궁유미 ▲만안구 건설과장 우병호 ▲만안구 교통녹지과장 박원선 ▲동안구 건설과장 김종강 ▲안양3동장 윤숙희▲석수1동장 이해석 ▲평촌동장 김부회 ▲평안동장 이성희 ▲귀인동장 김원우 ▲호계3동장 정창모 ▲신촌동장 김의배 ▲정수과장(직대) 이용진 ◇5급 전보 ▲기업지원과장 이형주 ▲체육생활과장 최광현 ▲시민봉사과장 문소운 ▲가족여성과장 이순자 ▲주택과장 김언종 ▲의회사무국 전문위원 이강숙 ▲만안보건과장 윤주광 ▲평생교육과장 김진수 ▲시설공사과장 하성철 ▲만안구 행정지원과장 유용철 ▲만안구 민원봉사과장 신현자 ▲동안구 환경위생과장 이명복 ▲동안구 건축과장 이충건 ▲범계동장 홍순석
유정복 인천시장이 3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어린이집 원장들과 교사들의 2018년 어린이집 아동학대 제로(Zero) 선포 선서 낭독을 받고 있다. /인천시 제공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1일 오전 발표한 육성 신년사에서 “남조선에서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대회는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성과적 개최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 “민족적 대사를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 동결상태인 북남관계를 개선해 뜻깊은 올해를 사변(혁명)적 해로 빛내야 한다”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뜻이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한미관계를 이간질 시키려 한다는 등 비판적인 의견도 내놓았지만 그야말로 ‘민족적 대사’인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북한의 참가가 필요하다. 북한의 참가는 올림픽에 대한 해외 언론의 관심을 증폭시켜 평창올림픽의 흥행을 돕는다. 또 이 대회의 목표 중 하나인 ‘평화 올림픽’ 실현에 기여하게 된다. 최근 불편한 북한-미국과의 관계로 인해 방한에 부담감을 느끼는 각국 선수단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안 심리도 대폭 해소될 것이다. 따라서 북측이 참가의사를 표하자 주최국 한국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반색을 하고 있다. 한국 측
1789년 수원 신읍치를 현재 위치로 정할 때는 성의 축조를 고려하지 않았고 신읍을 조성한 후에는 여러 신료들이 축성을 건의하나 정치·경제적 이유로 정조는 거절한다. 그런데 정조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축성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추진하게 한다. 이유는 평생 아들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손과 세자시절을 어렵게 보내고 등극과 정치도 쉬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고 군왕으로서 늠름하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효도였을 것이다. 옛날 아버지 사도세자는 할머니 영빈이씨의 환갑에 후궁임에도 불구하고 중전의 예우로 행차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정조에게도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세자시절 어렵게 환갑잔치를 진행했고 본인은 군왕으로 정식 왕비가 아닌 혜경궁의 환갑을 잘 치러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순왕후가 있는 궁궐에서 혜경궁의 환갑연은 원만하게 치를 수는 없었다. 정조는 고심 끝에 환갑잔치를 궁궐 밖에서 열기로 하고 장소는 아버지가 있는 수원으로 결정한다. 이 생각을 한 시점은 1792년 말로 환갑은 1795년 8월이니 남은 기간은 2년8개월 정도였다. 하지만 왕의 행차는 보통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