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행정역사관은 경기도 인재개발원 안에 있다. 수원시 장안구 경수대로 1150번지 광교산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은 아니지만 1960년대 행정자료를 볼 수 있으므로 초중생 부모들에게 방문을 권고한다. 서울 광화문에 있었던 경기도청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볼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도지사 발령장은 마치 조선시대 경기도 관찰사에게 내리는 교지와도 같다. 1960년대 공무원들이 쓰던 책상과 서류, 타자기, 직인, 각종 공예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경기도와 해외 자매결연 도시에서 받은 기념품을 볼 수 있다. 경기도 기록관에서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는 다양한 평태의 기록물을 활용하여 경기도의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고 설명한다. 경기와 관련한 기록물중에 ‘경기도청’, ‘경기도의회’라는 동판을 보게 된다. 여기에 작은 정성과 공무원으로서의 스토리가 있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2006년 7월에 제32대 도지사에 취임했다. 인수위 기간중에 김문수 도지사는 도청주변의 철조망을 걷어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재임중인 2009년 3월에는 정문과 후문의 철문도 철거를 결정했다. 철거소식을 접하고 몇가지 의견을 도청 부서에 냈다. 문화재
공직을 마칠 때 그 허전함의 공간이 크고 넓었다. 명예퇴직을 결정한 그날 늦게 귀가하여 서재를 정리하다가 다산 선생님의 목민심서가 수록된 소책자를 발견했다. ‘마음으로 쓰는 목민심서’라는 제목으로 2016년 3월에 실학박물관에서 발행한 자료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님의 소개글로 시작된다. 사무실에서 받은 자료인데 그냥 책장 틈에 넣어두었다가 공무원 퇴직을 앞두고서야 운명적으로 눈길이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에 후반부에서 제12부 해관(解官)이라는 부분에 눈길이 겹쳤다. “관직이 교체되어도 놀라지 마라. 수령직은 반드시 교체됨이 있는 것이니,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관직을 잃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존경할 것이다.” 조선시대식 표현이니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보면, 공무원은 늘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날 것이니 항상 준비를 하여야 하고 공직을 떠나게 되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주변의 동료들이 여러분을 존경할 것이다. 40년 공직을 떠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긴 세월 근무하다보니 막상 퇴직, 명예퇴직을 하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목민심서를 다 읽고나니 자신도 역사속의 한사람으로서 젊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 일하고 이제 나이가
경기신문이 2002년 6월에 창간한 이후 2020년 5월에 지령 4,720호를 기록했다. 지난 18년간의 기록이니 매년 평균 270번 신문을 발행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 많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다름박질을 하였고 사진 기자들은 무거운 장비를 메고 동분서주, 새벽과 밤을 달려 순간을 포착했다. 편집회의는 밤늦게 끝나고 다음날 취재를 걱정하면서 늦은 퇴근을 했다. ‘창룡문’이라는 코너는 경기신문이 수원 화성의 창룡문 인근에 자리하면서 조선시대 정조의 개혁정신과 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그 기초에 깔고 시작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 경기도청 기자실 옆 대변인실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경기신문의 창간을 지켜보았다. 1988년 지방언론 창간 해에도 공보관실에서 기자실에 도정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담당했었기에 언론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이후 사옥을 장안구청 건너편 지방행정동우회관 3, 4층으로 이전하였다. 아마도 창룡문(동문)과 장안문(북문)을 바라보는 각도는 대략 30도 정도로서 본 코너의 제목을 ‘장안문’으로 개칭해도 좋을 듯 싶다. 무취불귀 정조가 한양에서 화성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하고 축성 당시 행궁을 짓고 북쪽의 문은 당시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