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되기 전에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떠날 거라 했다. 서른세 살에는 미치지 않으면 자살하게 될 운명이라 했다. 인도 뉴델리 파하르간즈 골목에서 만난 예언자라는 이의 말이었다. 스무 해 전, 나는 한국을 떠났다. 중국에서 터키까지 두 해에 걸쳐 길 위에서의 삶을 살았다. 사랑하던 이를 잃고 힘겨운 마음으로 견디던 여정(旅程)이었다. 그 한 복판에서 듣게 된 끔찍한 예언이었다. 탁류(濁流)에 휩쓸려 깊고 어두운 강 아래로 내가 가라앉는 일시정지 화면이었다. 화가 치밀어 좌충우돌 목적지도 없이 버스를 탔다.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못했다. 사흘 밤낮 의자에 꼿꼿이 앉아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러다 도착한 곳이 히말라야 산맥 해발 2천 미터 고도에 위치한 마날리였다. 해가 저물기도 전인데 버스는 끊겼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어야 했다. 더군다나 알고 보니 온천 마을.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는 자학 프로그램”이 버스 끊긴 산속 온천 마을에서 자동 종료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고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무작정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며칠을 굶어 쓰러지기 직전이었지만 사과나무의 탐스러운 열매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만큼 가혹한 신(神)에게 분노했다. 산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들 어떠랴 싶었다. 어차피 미치지 않으면 자살할 운명이니 지금 죽으나 서른세 살 때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삶에 미련이 없으니 죽음에 두려움도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걷는 건지 허우적대는 건지 감각마저 희미해졌다. 그때 저 멀리서 어떤 여자가 피리를 불며 내게로 걸어왔다. 울창한 전나무 숲 사이로 신비로운 음률이 감돌았다. 일본인이었다.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인도 마날리 산중에 피리 부는 일본인이라니!’ 내 눈을 의심했지만 그녀는 환상도 망각도 아닌 실체, 히피였다. 나처럼 20대에 고향 일본을 떠나 떠돌다 그곳에 정착한 여행자였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몹쓸 운명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깔 웃다가 이윽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네게 게임을 걸어올 거야. 그럴 때마다 피하지 말고 즐겨. 신(神)조차 마찬가지야. 시련과 고통, 운명으로 너에게 게임을 걸지. 도망가지 마. 신과 게임을 해. 이길 수 있어. 너는 신(神)이 가진 패를 이미 알고 있잖아?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미치지 않고 자살하지 않으면 돼. 그러면 너는 신(神)을 이기는 거야.” 그렇다. 신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해법이었다. ‘미치지 말자. 자살하지 말자. 운명이 예고한 서른세 살을 넘기자. 신(神)과의 게임에서 이기는 거야.’ 관에 누운 시체처럼 지내던 나는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다. 서른셋까지 앞으로 남은 7년, 정신줄을 단단히 붙들어 매자 다짐했다. 이후로도 여전히 눈을 감으면 탁류(濁流)에 휩쓸린 채 가라앉는 내가 보였다. 하지만 더는 그때의 일시정지 화면은 아니었다.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결국 바닥까지 가겠지. 그래. 그땐 바닥을 “탁” 되짚으면 돼. 그 반동으로 위로 올라가는 거야’ 바닥을 짚고 수면을 향해 떠오르는 내가 보였다.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려는 의지도 생겼다
얼굴은 밖으로 드러나는 마음의 표정이다. 삶의 뿌리에서 오는 형상이며 영혼의 풍경이다. 그래서일까 첫인상은 첫사랑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흉한 인상은 범인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한세상 나그네 길에 여권 같은 얼굴과 이름이라는 고유명사와 함께 운명적인 성격과 인격을 안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 대변인 같은 게 얼굴이다. 재 너머 사래 긴 밭이랑 같은 얼굴의 주름살 속에는 오늘의 그 사람만 내재되어 있는 것 아니다. 태어나 살아온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따른 마음가짐에 있어서의 표정의 변화가 세월이라는 이름과 함께 용해되고 축적되어 있다. 또한 그 위에 오늘의 일들이 얹히고 있다. 생물학적인 면에서 볼 때 얼굴은 운명적으로 타고난 바탕이 있다고 한다. 이어서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후천적인 면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타고..
역사를 소수 엘리트층에 의한 지배로 본 이탈리아의 정치경제학자 파레토(Vilfredo Pareto)는 대중의 지배는 일종의 환상이라고 했다. 대중들은 그저 자신들을 이끌어줄 새로운 엘리트를 기대할 뿐이기에 그 엘리트가 순환하면서 역사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엘리트의 순환론』(정헌주 역, 간디서원, 2018)에서 사자형(Lion)과 여우형(Fox) 엘리트가 교차한다고 했다. 사자형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강하고 충성심과 힘을 강조하며 용감하고 무모하며 때로는 무식하기까지 하다. 여우형은 현란한 말솜씨와 조작에 능하며 교활하고 주도면밀하며 때로는 유약하고 무능하기까지 한 지도자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의 역대 대통령에 대입해보자. 먼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교활한 여우 성향이 있었지만, 권위주의가 넘쳤던 전형적인 사자형의..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가 대형사고를 쳤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돕겠다는 의도로 한 발언이 평지풍파다. 지난달 31일 자신의 유브 채널 ‘기생충티브’에서 ‘서민 교수 윤석열 후보의 몸보신을 위해 홍어와 맥주를 대접하다’라는 라이브 방송을 했다. 영상을 소개하는 머리화면(섬네일·thumbnail)에 ‘윤석열을 위해 홍어준표를 씹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윤석열 후보와 서 교수가 맥주잔을 부딪치며 화사한 미소를 짓는 모습도 연출했다. 윤 후보는 ‘민(서민)이 덕분에 산다’고 하고, 서 교수는 ‘대동단결 윤석열’이라고 화답한다. 홍어는 극우 진영에서 호남을 비하하는 차별적 언어다. 치열한 당내 각축을 벌이고 있는 홍준표와 유승민 후보 측은 즉각 반발했다. 윤 후보에겐 전두환 옹호발언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쓰나미까지 덮친 꼴이 됐다. 윤..
제1 야당인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오늘 결정된다. 이로써 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여야 대선후보들이 사실상 모두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주요 변수가 하나 남아있다. 바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안 대표는 대선을 불과 4개월여 앞둔 지난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권 3수에 나서는 안 대표의 도전은 기존 대선구도, 특히 야권의 대선판을 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국민의힘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1대 1로 붙어서 이길 수 없다”면서 동시에 대선전 ‘야권 통합 불가’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안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오히려 야권내 후보단일화에 불을 지피며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민의힘 유승민, 원희룡 경선 후보 등이 잇따라 단일화 추진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나섰고, 김재원 최고위원은 안 대표 지지율이 3%만 나와도 위협적..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아도르노는 말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떠올리면 아도르노의 절규는 상식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아우슈비츠 이후 줄기차게 서정시를 써왔다. 아도르노가 살아있다면 얼마나 통탄해했을까. 우리나라의 사정은 더할 것이다. 통계로 잡힌 건 없겠지만 생산되는 시 대부분이 서정시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등식이 성립한다. 서정시는 인간과 떼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문학 장르라는. 이 등식이 맞으면 아도르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도 인간에 의한 인간의 학살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그렇다. 서정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서정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아우슈비츠 등 인류의 숱한 학살을 형상화할 수..
환경교육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재활용이다. 우리가 평소에 분리수거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다시 사용되는지 알면 분리수거를 귀찮아하던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면서 참여한다. 환경 수업에서 페트병을 모아서 새롭게 만든 의자나 소파처럼 큰 가죽을 잘라 지갑이나 가방으로 재창조하는 건 너무 자주 해 온 이야기였다. 새로운 수업 아이템을 찾던 중에 ‘양말목’을 알게 되었다. 처음 ‘양말목’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무의 한 종류인 줄 알았다. 이름 끝에 ‘목’이 들어가는 행운목처럼 양말처럼 생긴 작고 귀여운 식물을 떠올렸다. 다른 선생님들도 단어를 듣더니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목재의 종류냐고 되물었을 정도로 생소했다. 글자 자체를 처음 들어보는데 이 아이템으로 어떤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아리송했다. 양말목은 양말을 만들고 남는 천을 말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맞은 1교시 수업은 체육 시간이었다. 종이 울리자 교실 문이 열리고 체육 선생님이 들어왔다. 우리 학교는 운동부 특히 럭비부가 꽤 유명했고, 그 체육 선생님이 럭비부 담당 코치였다. 우람한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선생님은 천천히 걸어 교단에 서더니, “1번부터 10번까지 일어나 봐.”라고 했다. 참고로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친구가 1번이었다. 그리고는 “앞에서부터 100m 달리기 몇 초야?” 하고 물었다. 우리는 1번부터 차례로 자신의 100m 기록을 대답했고, 그 당시 4번이었던 나는 본능적으로 “18초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열 명의 대답을 모두 들은 후 두 명을 지목했고, 방과 후 럭비부실로 오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물은 이유는 키와 덩치가 크고 달리기 속도가 괜찮은 아이들을 럭비부로 데려가기 위함이었..
파주시 자유로 파주출판단지 휴게소 운영권 이관 문제를 놓고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관련기사 본보 3일자 1면) 이로 인해 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가 지난 임시회 기간 중 도 건설국의 각종 안건 심의를 중단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열리는 행정사무감사에서도 마찰이 예상된다. 지난달 6일 열린 제355회 임시회 제1차 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회의에서 도의원들은 자유로 파주출판단지 휴게소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경기도가 파주시 이관을 미루고 있는데다 운영권도 없는 상태에서 휴게소의 신사업자 선정을 위한 위수탁계약 심의까지 진행하고, 도의원을 심의위원에서 배제해 사실 확인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 건설국이 기존 입장을 고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도의회는 임시회 기간에 처리할 예정이었던 도 건설국의..
북한은 지난 10월 10일 대대적인 열병식 대신에 ‘자위-2021’이라는 국방발전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전람회에서는 국제사회가 우려해 왔던 각종 신형무기가 전시되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무기개발은 남한과 미국이 아닌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기념연설을 하였다. 핵무기와 각종 미사일은 자위적 차원에서 개발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이중적 기준이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무기개발은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북한은 한미일 안보수장이 회동하고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가 미국에서 종전선언과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는 시기에 신포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보란 듯이 발사하였다. 대화 논의는 진행되면서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