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따다다 다 따다다 다~ 딴딴 따다다 다~~ 드럼이 조심스럽게 장단을 쳐 들어간다. 플루트가 마법의 소리를 내며 합류한다. 환상적 듀엣의 하모니는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첼로와 바순, 클라리넷은 혹여나 지루할까 끼어든다. 드럼은 첫 동작을 한 치의 흐트럼 없이 반복하고 플루트는 톤을 높여 재등장한다. 하프, 기타, 바이올린, 트럼펫, 피콜로, 트롬본, 심벌즈... 이 세상의 온갖 악기가 하나씩 합세하며 오케스트라는 절정에 도달한다. 지극히 단순한 템포와 리듬.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리드미컬하고 몽환적이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은 기발하다. 볼레로(Boléro). 독창적인 이 곡은 기존 음악의 틀을 완전히 깼다. 라벨은 이 곡을 당대 최고의 러시아 무용수 이다 루빈시테인(Ida Rubinstein)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이 곡은 라벨이 스페인 안달루시아 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라벨과 스페인.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라벨은 1875년 피레네-아틀란티크 주 시부르(Ciboure)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759킬로 떨어진 서남단의 작은 마을 시부르. 이곳은 프랑스의 끝 지점이고 스페인의 시작 지점이다. 우뚝 선 피레네산맥과 푸른 대서양연안에 자리한 이 마을은 가스코뉴(Gascogne) 만으로 둘러싸여 한 폭의 그림이다. 마주하고 있는 생 장 드 뤼즈(Saint-Jean-de-Luz) 마을은 그보다 더 일품이다. 여기서 라벨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그 후 부모를 따라 파리로 이사하지만 이십대가 되면서부터 해마다 여름이면 생 장 드 뤼즈를 찾아 작곡 활동을 했다. 볼레로도 여기서 탄생한 것이다. 바스크말이 통하는 시부르와 생 장 드 뤼즈. 시부르는 바스크말로 지뷔뤼(Ziburu), 다리머리라는 뜻이다. 생 장 드 뤼즈와는 이제 다리가 연결돼 한 마을이다. 이 연육교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바다와 산들로 둘러싸인 이 고장. 천혜자원도 모자라 신은 중세의 유적지를 고스란히 남겨 주셨다. 은빛 모레가 반짝이는 소코아(Socoa) 해변에 어우러진 한 폭의 요새, 시부르와 생 장 드 뤼즈의 고색창연한 성당, 하늘을 찌르는 고딕식 생-마리 대성당. 프랑스가 2016년 이곳을 역사와 예술의 고장으로 지정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부르의 라벨 부두 27번지에 서 있는 라벨 메종은 역사와 예술의 고장을 더욱 품격 있게 승화한다. 이색적인 석조식 메종은 본래 17세기 시부르 출신 선주 에스테방(Esteban)이 지었다. 에스테방은 1630년경 암스테르담의 집들을 보고 경탄한 나머지 시부르에 네덜란드식 집을 지었다. 스페인 공주와 결혼하는 루이 14세의 결혼식을 보러 온 마자랭 추기경이 여기에 한 달간 머물러 더욱 유명하다. 이처럼 다양한 시부르의 스토리는 라벨 음악의 근간이다. 라벨을 추억하기 위해 이 가을 시부르로 떠난다면 여러분은 뜻하지 않은 스페인 문화에 네덜란드풍 건축까지 보게 될 것이다. 볼레로가 음악의 완결판이라면 시부르는 여행의 완결판이 아닐까!
숲 속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부드러운 청자 빛 하늘 아래는 흰 구름이 자유롭다. 구름은 호랑이 머리가 되었다가 개의 형태이더니 바로 고양이 꼴이다. 흐르면서 변하는 게 구름이다. 변하기 때문에 눈 주고 할 일없는 사람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근자에 나는 하늘 바라보는 재미가 유별하다. 눈이 피로해도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고, 글을 쓰다 문장이 막히면 나가서 하늘을 본다. 글의 주제가 마땅치 않아도 오늘 같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만나면서 뭔가가 머릿속에서 새롭게 뛰어내려 주기를 기대한다. 10월도 저물어 삼십 일이 되면 시월의 마지막 밤이 온다. 이 해도 60여 일 남았다. 계절은 겨울이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오늘도 숲의 그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의 빛(彩)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고자 먼 하늘을 끝없이 바라보아도 색채감에 딱 맞는 언어를 찾을 수..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2월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 방역체계가 1년 9개월여 만에 일상 영위를 목표로 하는 쪽으로 완화된다. 정부는 25일 공청회에서 오는 29일 확정할 정책 최종안 내용을 발표했다. 온 국민이 학수고대해온 ‘위드 코로나’ 시대를 목전에 두고 꼭 필요한 조건은 수준 높은 ‘시민 정신’의 발현이다. 정부의 철두철미한 대비책에 발맞춰서 팬데믹 종식을 견인할 성숙한 ‘시민의식’을 총점검해야 할 때다. 정부의 개편안은 내달 1일부터 3단계(단계별 6주 예정)에 걸쳐 ‘위드 코로나’를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단계(11월 1일~12월 12일)에선 족쇄와도 같았던 운영(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진다. 다만 유흥 및 실내체육시설은 ‘백신 패스’가 적용된다. 사적 모임은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전국적..
누렇게 익은 벼이삭에 잠자리 한 마리 날개를 접고 앉아 고개 숙인 벼를 배운다 바람이 와서 흔들릴 때마다 배움을 끌어안는다
지난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關東)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 수천 명이 일본 자경단 등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된 사건이 있었어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일어난 비극이었지요. 소문 조작을 동원한 인류의 비극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어요.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 무렵, 유대인 박해를 위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가짜뉴스는 여러 차례 동원되었다네요. ‘우물에 독(毒) 타기’는 전쟁사에서 오래된 고육책(苦肉策)이에요. 루마니아 지역에 있었던 ‘발라키아’ 공국의 왕 블라드 3세는 15세기 오스만 튀르크족에게 쫓기자 후퇴하면서 모든 우물에 독을 풀어 적의 진격을 늦추었대요. 20세기 들어서도 핀란드나 독일군이 적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어요. 수년 전에는 IS..
이재명과 윤석열. 최근 언론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두 정치인이다. 한 분은 여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다른 한 분은 제1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현재까지는 상당히 높은 분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두 대선 후보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자격으로 19일(월)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21일(수)에는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야당의원들이 제기하는 대장동 의혹을 해명했다.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많게는 4개면을 할애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중립적 입장을 표방하는 한국일보가 21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도돌이표로 끝난 ‘이재명 국감’”이 이번 대장동 국정감사를 압축적으로 대변했다. 윤석열 예비후보는 19일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며 전두환씨를 두..
몰도바에서 6년 유학했다는 아티스트를 만났다. ‘한 남자’ 때문에 죽기 전 가고 싶은 여행지 목록에 올라있는 나라, 몰도바.(‘한 남자’가 궁금하실 당신. 뒤에 풀 예정이니 일단 몰도바 이야기로 직진 부탁한다.) 내 주변에 몰디브를 다녀왔다는 사람은 차고 넘치지만 몰도바 여행자는 없었다. 꿈의 여행지 몰도바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내게 아티스트는 찬물을 퍼붓는다. ‘볼 거 별로 없어요. 갈 데도 특별히 없구요.’ 그의 말은 내게 ‘ 만난 사람이 별로 없어요. 특별했던 사람도 없구요’로 번역돼 들렸다. 번역기는 서른 개 넘는 나라를 배낭여행하며 떠돈 내 경험이다. 올해 초,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작업실을 만들자 ‘심심하던 차에 건수 생겼다’며 많은 지인들이 놀러 왔다. 환대의 마음으로 헤이리의 ‘나의 최애 공간’을 데려가 구경시켰다. 들꽃 장식으로..
’21년 9월 현재 전국적으로 사회적기업은 3672개 인증을 받아 3064개 기업이 활동 중이며, ‘21년 10월 현재 (사회적)협동조합은 2만 1513여 개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사회적기업은 480여 개였으며, 현재 전체 사회적기업의 17.1%인 520여 개 기업이 경기도에서 사업 중이다. 경기도 소재 (사회적)협동조합은 ’20년 12월 약 3550개에서 ‘21년 10월 현재 4000개 이상으로 사회적기업과 함께 증가 추세에 있다. 2020년 3월 경기도는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 일자리재단 산하에 ‘경기도사회적경제센터’를 설립하여 체계적인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역할 수행을 하고 있다. 경기도는 ‘20년 12월에 발표한 ‘경기도 사회적경제 5개년 기본계획’에서 사회적경제 민관협력 강화를 위한 유기적 협력시스템 구축, 경기도 사회적경제 지..
20대 대선이 4개월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 정의당은 심상정 후보로 최종 주자가 결정됐다. 경선 불복 움직임을 보였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그제 이재명 후보와 만나 정권재창출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했다. 늦게나마 경선에 승복했다는 것은 정치신뢰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다음 달 5일엔 제1 야당인 국민의힘 최종 후보도 판가름 난다. 이런 가운데 제3의 후보들이 몸을 풀고 나섰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24일 '새로운 물결'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가졌다. 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대선 출마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지금 정치판의 강고한 양당 구조로는 대한민국이 20년 넘게 가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정치교체’를 내세웠다. 2011년 새 정치의 시대적..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건 사슴이다. 소는, 모가지와 상관없이 슬픈 짐승이다. 소의 운명은 ‘워낭소리’와 함께 끝났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만큼이나, 소의 역할 또한 우리 곁에서 지워지고 없다. 들녘에서 논을 갈고 밭을 일구는 건 소가 아니라 기계다. 일터에서 쫓겨난 것은 사람이나 소나 마찬가지이지만, 소에게까지 실업수당이 지급되진 않는다. 고양이처럼 발바닥을 핥지 못하고,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지 못해서, 소는 반려동물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소는, 모가지와 상관없이 슬픈 짐승이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듯이 사람은 소를 키운다. 개와 고양이는 주린 정을 채우기 위해서 키우고 소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키운다. 사람은 소를 먹는다. 사람이 고기로 먹는 소는 한해 삼억 마리에 달한다. 고기는 구워 먹거나 삶아 먹거나 날것으로 먹는다. 머리는 쪄서 귀와 코와 혀와 골을 먹고, 뼈는 푹 고아 물을 먹는다. 그렇게 먹다 남긴 것을 갈아서 사람은 일반가축의 먹이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 중에는 반려동물의 먹이도 있다. 사람이 먹기 위해 죽인 가축의 부산물을 가축이 다시 먹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료라고 부른다. 개중에는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키우는 소도 있다. 젖소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 갈린다. 젖을 짤 수 없는 수컷은 생식기능을 끊어버리고 고기소로 키운다. 우리가 아는 젖소는 모두가 암컷이다. 물론 암컷 젖소라고 무턱대고 젖을 짤 순 없다. 젖은, 새끼를 배거나 낳은 소에게서만 나온다. 사람들은 젖을 짜기 위해 끝없이 젖소를 임신(姙娠)시킨다. 그런 점에서, 젖소의 임신은 사람에 의한 강제 임신이고 평생 임신이다. 그렇게 짜낸 젖소의 젖으로 사람들은 우유와 치즈와 버터와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는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건 사슴이다. 소는, 모가지와 상관없이 슬픈 짐승이다. 논과 밭에서 일을 하다가 사람과 함께 늙어 죽는 건 조선왕조실록에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소는 스무 살까지 살 수 있지만 ‘가축’이 된 소는 평균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 현대사회에서 소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평균수명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은, 소의 육질이 가장 연하거나, 피둥피둥 살이 올랐거나, 새끼를 낳지 못하거나, 젖이 나오지 않을 때 소를 죽인다. 그렇게 죽은 소들의 나이는 두 살이나 세 살이 대부분이고 젖소라 해도 여섯 살을 넘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소를 닮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터에서 쫓겨나는 건 소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소와 사람을 밀어내고 일을 하는 건 기계와 인공지능이다. 기계와 인공지능은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다. 스물네 시간 일을 시켜도 문제없고, 고장이 나도 내다 버리면 그뿐이다. 사람이 만든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정작 사람이 일로부터 소외되는 세상이다. 일이 곧 밥이고 생명인 세상에서, 일터에서 쫓겨난 일꾼들의 눈은 슬프다. 소를 닮은 눈은 슬프다. 소를 닮은 사람들은, 모가지와 상관없이 서글픈 짐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