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제 나이 52세로 노련한 간병인이다. 간병의 세계는 거개가 여성들로 짜여져 있는데 그는 어쩌다가 이 세계에 뛰어들어 10여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인병원에서 친척 할머니를 간병하다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할머니가 퇴원을 하고 옆 침대에 있던 다른 환자가족이 그를 매우 좋게 보고 정식으로 간병인으로 채용하여, 간병인으로 갖춰야할 이런저런 요건을 지니게 된 셈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생활에 끼어든 지도 세월이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작은 체구에 눈치와 동작이 빠른데다 환자의 짜증이나 투정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잘 받아주고 비위 역시 잘 맞추어 주는 기술이 뛰어나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깊은 신뢰와 호감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 팔 힘이 좋아 웬만한 환자는 가볍게 들고 옮기는 재주가 있었고, 환자의 가족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싫어하는 대소변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받아내고 뒤처리까지 말끔히 해주니 환영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개인병원에서 어깨 너머로 배우는 간병인이었지만 차츰 기술이 몸에 붙으면서 같은 동료였던 간병인들이 먼저 그를 찾게 되었다. 그 역시 일정한 직업이 없이 경비원이나 노가다판이나 닥치는…
와르르, 박수 소리 들리고 예순을 바라보는 교수님, 활짝 웃으신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여러 개 촛불 일렁이는 모습을 보다말고. “이거 울음이지요? 나 태어나던 날도 그렇게 우렁차게 울었다는데. 그 날 기억하고 이 촛불도 제대로 한 번 울어주는 게지요.” 그러고 보니 양초 제 몸 태우며 우는 모습이 마치 어머니 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온 그 날부터 시작된 우리네 삶과도 닮은 듯하다. 제 살 깎으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아픔의 시작과도 같은 그날을 우리는 생일이라 부른다. 그리고 축복이라 말한다. 그날은 꼭 고봉밥을 담으셨던 어머니. 찹쌀을 듬뿍 넣은 차진 밥, 동글동글한 수수팥단지 한 접시, 뜨끈뜨끈한 미역국 한 대접, 내가 좋아하는 갈치조림이 올려 진 생일상. 6남매 틈에서 아옹다옹 살아냈던 어린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은 유일하게 그 생일 날 뿐이었으니 하루 종일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생일상은 지난 1년을 잘 견뎌낸 것에 대한 격려와 또 1년을 건강하게 살 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는 어머니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수십 년이 지나도 어제처럼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런 선물 말이다. 숱한 사람들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은 성인 10명중 1.4명이며,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하다 사고 당한 경우 2014년 1만 9천450건에서 2015년 2만 1천200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영유아 스마트폰 노출 시기는 평균 2.27세의 통계 보고가 있다. 실제 스마트폰을 보며 지나가는 청년이 부딪히면서 어르신 안경이 부서져 시비가 붙어 경찰이 출동한다. 스마트폰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대생이 차량에 부딪히면서 생명까지 잃었다. 또 다른 여성은 정면으로 차가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다. 지하철에서나 버스에서 주위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시비와 분쟁이 오간다. 이처럼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걷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얼마 전 뉴욕에서 스마트폰에 집중한 채 길을 걷던 한 여성이 강으로 추락해 숨지는 보도가 있었다. 스마트폰은 매력적인 최첨단 전자기기이다. 게임, 음악, 인터넷 검색, 사진 촬영, DMB, SNS 등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이 가능하다. 길을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나 화장실 갈 때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 한다. 스웨덴에는 아예 ‘보행 중 스마트폰 사
국회의원의 상징 금배지는 사실 금배지가 아니라 은배지다. 99% 은으로 제작하고 미량의 금으로 도금했을 뿐이다. 무게 6g의 은 덩어리, 지름 16㎜에 불과한 3만5천원짜리 배지를 사람들은 왜 그토록 달려고 하는 걸까.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가면서 까지. 아마 특권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200여 가지가 넘는다. 항공기, 철도, 선박 무료 이용 특전도 있다. 국고 지원으로 연 2회의 해외시찰도 한다. 민방위와 예비군 훈련이 면제되고, 국회 안에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치과, 내과, 한의원, 사우나, 미용실은 가족 까지 공짜다. 골프장 이용시 사실상 회원 대우를 받고 공항귀빈실 이용에 비행기좌석은 최소 1등석이다. 모두가 금배지를 다는 순간 시작된다. 그러나 이같은 특권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는 ‘면책특권’과 회기 중 동료 의원들의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 ‘불체포특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보수역시 그렇다. 한 해 1억3천796만원 세비를 받고 매달 입법 활동비 등으로 1천31만원을 챙긴다. 여기에 연간 646만원 정근수당, 명절휴가비(775만원) 등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초
뿔 /김광렬 뿔 맞대고 씩씩거리는 황소를 보면 나도 저처럼 싸우고 싶어 못 견디다가도 크게 다칠까 보아 멀리 피해버린다 풀을 뜯는 황소가 웬 힘이 그리 센가? 풀잎처럼 유순한 황소가 왜 성나 있는가? 성글성들하던 눈망울이 왜 저리 실핏줄 벌건가? 황소는, 황소는 왜 자신을 드러내는가? 왜 나는 늘 엉덩이를 뒤로 빼는가? 황소에게는 뿔이 있고 나에겐 뿔이 없어서다 단순히 그 차이다 뿔, 자신을 드러내는 간절한 언어 - 김광렬 시집 ‘모래 마을에서’ /푸른사상(2016) 가끔 내게도 붉은 뿔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시인도 황소처럼 치받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아귀가 맞지 않는 바퀴처럼 기분 나쁜 정치꾼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불법과 거짓말과 사기가 바이러스처럼 세상을 어지럽히는 현상들,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나 있다. 잠깐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 보복운전 하는 사람들, 돈 때문에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싶은 심정이다. 황소가 힘세다고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만큼 힘이 셀까? 그렇지만 시인은, 여린 감성의 시인은 머리에 뿔이 있으면 치받고 싶지만 무서워서 피하고 만다. /성향숙 시인
백성의 환호와 갈채를 한 몸에 받던 위정자일지라도, 처음의 뜻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옳다는 독선과 자만에 빠져 백성의 요구를 묵살하면 백성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의 상식이다. 재주복주(載舟覆舟)는 이같은 상식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자성어다.“임금은 배이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물은 배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순자(荀子)의 저서 왕제(王制) 편에 나오는 말이다. 순자는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 했다. “'임금이 이로써 위태로움을 미리 생각한다면 장차의 위태로움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20대 총선의 결과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꼭 이와 같지 않을까. 여당이 야당에게 제1당 자리까지 내주는,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정치상황을 보며 ‘낭패(狼狽)’란 말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옥편에 ‘낭(狼)’과 ‘패(狽)’ 모두를 ‘이리’라는 동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낭’은 뒷다리 두 개가 없고, ‘패’는 앞다리 두 개가 없는 가상의 동물이다. 따라서 ‘낭’과 ‘패’가 걸을 때에는 ‘패’가 늘 ‘낭’의 등에 앞다리를 걸쳐야 한다. ‘낭’과 ‘패’가 합쳐져야만 걸을 수 있지, 둘
소 /최기순 제 그림자를 보고도 뿔 세우고 덤벼들던 암소가 마두금 곡조에 눈매가 차분해지더니 굵은 눈물방울을 툭 떨어뜨린다 모든 사나움은 슬픔에 주둥이를 대고 있다 새끼와 생이별에 간을 베었던 것 우우우 몰려간 고깃집 성급하게 식욕을 돋우던 아름다운 치맛살은 말 못하는 몸의 곡진한 감정 결은 아니었을가 네 슬픔을 내가 몰라보듯 이번 생에서 우리는 엇갈렸을 뿐 우연히 마주치는 불행의 요철들을 나 또한 얼마나 피하고 싶었는지 - 최기순 시집 ‘음표들의 집’ / 푸른사상 송아지를 라디오로 바꾸던 날, 울부짖던 어미소의 울음을 기억한다. 그토록 신기하던 라디오 속 세상이 하나도 신기하지 않던. 곡진한 울음에 어린 귀를 열고 함께 밤을 지새던. 아주 오래 전의 일이 지금도 선명하다. 한계를 넘는 슬픔은 어디로 향할까. 슬픔과 사나움의 관계는 형제처럼 가깝다. 그래서 때로는 동시에 발생한다. 슬픔이 버거워 타인에게 전가하려 한다. 훨씬 무거운 슬픔으로 대체하려한다. 작은 슬픔이 버거워 더 큰 슬픔이 보이지 않는다. 슬픔과 슬픔이 교환된다. /이미산 시인
꽃의 계절이다. 바람이 찍히는 곳마다, 태양이 입맞춤을 하는 곳마다 꽃이 환하다. 꽃을 먼저 달고 봄맞이를 시작한 나무는 한차례 꽃비를 뿌리고서야 새순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서둘러 봄을 불러냈던 냉이며 민들레는 벌써 씨앗을 만들기 시작했다. 낮은 곳에서 봄을 충전하는 전령사들이다. 보도블록 틈에서 무성한 잡초더미 속에서 제 몫의 계절을 피워내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삶의 환희를 느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람이 불면 잠시 꽃잎을 내주고 태양이 뜨거우면 잠시 숨죽이며 그렇게 자연에 동화되며 살아남는 법을 안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고 했던가. 선거가 끝나자 요란했던 거리가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당선의 기쁨을 알리기도 하고 어떤 후보는 아쉬움과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할 것이다. 국회위원 당선자는 국민이 왜 자신의 정당을 지지하고 자신을 뽑아줬는지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선거 운동하는 후보자에게 내가 주문한 것은 선거 때만 표를 얻기 위해 필요한 국민이 아니라 당선된 후에 국민을 섬기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일하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후보자는 여부가 있겠느냐며 내 손이 아프도록 꼭 잡고 잘하겠으니 꼭 밀어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유권자의 한
2011년 1월, 대한민국 부모라면 피해갈 수없는 연년생 딸과 아들의 대학 입시 뒷바라지 5년을 끝내고, 바로 이어 준비해서 다녀온 프랑스 전시 이후, 몸과 마음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쳐서 삶의 의욕이 없었다. 그때 오랫동안 경기도자원봉사협의회를 이끌어 온 최정숙선생님이 아프리카 가나에 친정 사업체가 있다는 이유로, 가나 현지의 숙소 제공과 길안내를 부탁하였다. 오랜 망설임 끝에 청년봉사단원 겸 통역으로 대학 1학년인 아들 조현을 앞장 세우고, 염태영수원시장님의 임명장을 가지고 5명의 봉사단원은 아프리카 가나로 출발 하였다. 새벽 6시, 두바이공항에서 가나 아크라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사하라사막에서 불어오는 하마탄을 맞을 때 부터 가슴이 서서히 열리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 하였다. 피카소를 비롯한 20세기 현대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아프리카 붉은 흙을 밟는 순간, 그들이 즐겨쓰던 색과 그림이 이해될 정도로 강렬한 태양과 색채는 눈이 부셨으나, 마음 한편으로는 ‘FORYOU COMPANY’를 이끄는 큰언니 장혜숙의 마치 한국의 60년대와 같은 아프리카에서의 고군분투가 다가오며, 나에게 주어진 한국에서의 삶을 뒤돌아 보게 하였다. 수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이영숙 권재근 권혁규…. 이 이름을 기억하는 국민들이 몇 명이나 될까? 이들은 2년 전 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의 실종자들이다.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9명의 이름은 이제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차가운 바다 속에 사랑하는 가족을 묻은 이들의 고통을 잊고 있다. 오는 16일이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되는 날이지만 세상에는 온통 여소야대로 결판난 4·13 국회의원 선거 얘기뿐이다. 아니,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망각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사고 공화국’이란 자조적 한탄이 나올만큼 대형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함께 대구 지하철 참사나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등이 거듭되고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 허울뿐인 대책만을 남발했다. 국민들은 또 어디서 무슨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그런 대형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망각은 또 다른 참사를 부른다. 그래서 도내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리고 분향소가 설치됐다. 단원고 학생 등 희생자들이 가장 많은 안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