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4년 전쯤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내 연구실이 있는 수원으로 찾아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지난 얘기를 했었지요. 얼마 전 갑자기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했더니 번호가 바뀌었길래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범X 스님.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혹시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제 일처럼 그날이 기억납니다. 2008년 일겁니다. 광우병 소고기 사태가 우리나라의 모든 이슈를 선점하고 있을 때였지요. 나는 그 당시 한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고 광우병 소고기 사태로 촉발된 시민들의 집단적 저항은 뉴라이트 운동의 실체를 알리는 시민강좌로 이어지고 있었지요.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내가 몸을 담고 있던 대학에 시민강좌를 개설하였고 소문을 듣고 참석했던 스님과 처음 만났습니다. 이후 서로의 지나온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면서 스님이 겪어왔던 그리고 감내하고 있는 수행과 현실 참여의 이중적 상황에 대한 혼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기억날지 모르지만 광주의 어느 사찰에 기도승으로 계실 때, 문득 와인 두 병을 들고 찾아갔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와인도 떨어지고 거의 새벽에 잠이
사회적기업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경제 주체인가. 사회적경제기업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경제적·사회적 생태계는 얼마나 조성되어 있는가. 사회적경제가 관 주도에서 벗어나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경제 성장에 착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인가. 언제쯤이면 사람 중심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제도나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지역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이달 초에 열린 정부의 사회적기업 정책 입안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사회적기업 등록제 전환, 사회적기업 법인격 신설 등의 논의가 이루어지며 민간주도의 방향으로 사회적경제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2007년 제정된 ‘사회적기업 육성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고 고용노동부의 인증을 받은 기업만이 ‘사회적기업’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등록제로 전환되면 정부의 서류심사만으로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게 된다. 등록제 전환 논의는 정부와 국회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2019년에는 등록제로 개편하는 내용을 담은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국회에 제출된 바 있고 지난해 12월에도 사회적기업 인증제를 폐지하고, 등록제로 전환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으며 올해 발표될 ‘제4차 기본계획’에도 등록제 전환 내용이
연초부터 국가정보원이 2024년 1월 경찰에 이관하기로 한 대공수사권 복원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공방이라기보다 ‘경찰 이관반대론’이 대세다. 대공수사역량을 키우는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다, 그 공백을 경찰이 단시간에 메우기 어렵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권력의 안배와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전제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또 다른 반대논거이다. 검찰의 수사권도 상당 부분 이양 받은 경찰이 대공수사권 마저 가져가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수사력 독점’에 따른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국가적 위협으로 떠오를 것이다. 2023년 벽두를 장식한 제주·창원·전주 지역 일부 진보단체들과 민주노총 일부 간부들의 이적행위의혹은 대공수사권을 결코 한가롭게 다뤄서는 안 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안보 = 생존’과 직결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국가안보주의 확산이라고 칭하지만, 핀란드와 스웨덴이 국가 생존 위협을 느끼고 나토 가입까지 추진하는 마당에 북한의 노골적인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국정원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너희는 그저 잠자코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종교상의 율법을 조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오만불손한 행위가 있을까? 그런 율법이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참으로 어이없게도, 어느 시대에나 자신들의 추행을 종교와 도덕과 조국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속이는 사기꾼들이 있다. (하이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기다란 예복을 걸치고 나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는 것을 즐기며, 모임에서는 높은 자리를 찾고 잔치에 가면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그리고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도 기도만은 남에게 보이려고 오래 한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그만큼 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예수) (율법학자란 오늘날의 목사를 말한다. 옮긴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본질은 그의 계명을 실천하는 데 있다. 하늘나라에는 “주여! 주여!” 하고 외치는 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들어간다. 예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과 사람 사이에 중개자는 필요하지 않다고 가르쳤다. 그는 모든 사람이 신의 딸아들이라고 가르쳤다. 어버이와 자녀들 사이에 무슨 중개자가 필요하겠는가? 구원이 뭐야? 구원 문제
인류가 최초로 달을 밟은 건 반세기전.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닐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커다란 도약이다.” 이 역사의 순간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류의 끝없는 도전과 응전의 결과다. 쥘 베른(Jules Verne)도 그중 한 사람이다. 베른은 후세의 달 착륙을 일치감치 예견했다. 1872년 그는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저서에서 한 세기 후 인간이 우주비행으로 달에 착륙할 거라 보았다. 예지의 왕 베른. 1828년 프랑스 북서부 낭트에서 태어났다. 법률가인 아버지는 아들이 그의 뒤를 잇길 원했다. 따라서 법과대학에 입학했지만 전공보다 문헌을 모으고 분류하는데 몰두했다. 도서관에서 불철주야 탐험소설을 읽고 과학의 신기술에 관한 자료를 모아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세상에 나온 ‘5주간의 풍선 여행’은 기상천외했다. 하늘에 만족하지 못한 베른은 바다 속에도 도전했다. 15년간 요트를 타고 대서양과 지중해를 오가며 모험을 벌였다. 이는 불멸의 저서 ‘해저 2만리’로 탄생했다. 베른의 기발한 이 상상력은 끝없는 여행과 탐구의 결과였다. 하지만 말년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퇴임 때까지 추진했던 한반도 종전선언을 끝내 묵살했다. 북한도 사실상 묵시적으로 동의한 선언이 무산된 것이다.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간 정상회담의 결렬과 종전선언 거부는 미국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 일련의 사태는 전쟁국가인 그들의 국익에 비춰 연속선 상에 있는 것이다. 군사 패권 정책에 매달려온 미 군산복합체 로비스트 존 볼튼(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의 하노이 회담 참석에서부터 종전선언 거부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해방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일관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동북아에 영토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미국은 일본을 점령한 뒤 소련에 대적할 강력한 동맹세력으로 키울 작정이었다. 이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전범국인 일본 대신 한반도의 분할이 이뤄졌고 남한에는일본을 지키는 최전방 군사기지로서의 운명이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 주도의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미국은 이승만의 간청으로 남한 군대의 작전권을 유엔군에 귀속시킨다. 이후 미국은 일본 및 남한과 각각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동북아 전략의 큰 구도를 완성한다. 남한이 배제된 채 미국과 북한-중국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휴전 70년 동안 미군…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여기저기 겨울축제가 한창이다. 축제현장을 가보면 쓰레기가 넘쳐난다. 컵, 접시, 각종 용기, 나무젓가락, 플라스틱 숟가락, 포크, 각종 비닐 등 평소 분리 배출되거나 줄여 사용하던 것들도 축제현장에서는 가득가득 버려진다. 탄소 중립 기후 행동 실천을 해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웠을 어린이들도 배우는 것 따로 실천하는 것 따로인 참세상을 축제현장에서 배우게 된다. 꽉 막힌 도시를 떠나 탁 트인 촌에서 일탈의 쾌감을 느끼고자 축제를 찾았을 도시민들은 일상의 분리배출에서도 일탈하는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인천의 수도권매립지는 2025년에 문을 닫는다고 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경기도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아는데, 쓰레기는 하염없이 버려진다. 우리의 축제는 여전히 지속가능한 지구를 전제로 펼쳐지고 있다. 지구가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기후재앙의 강도는 높아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잠시라도 망각하기 위해 축제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런 축제의 모습을 계속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지난해 ‘쓰레기 없는 축제’를 경험했다. 가평군 청평의 한 마을에서 열린 작은 규모의 수제맥주 축제에서였다. 축제 음식을 파는 두…
요사이 여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는 곳은 대통령실이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의 갈등에 이어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당무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의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과 선거 중립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기 때문에, 총선과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 등에서는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선거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선거에서의 중립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은 다르다. 대통령은 정당의 당원이다. 우리가 편의상 “1호 당원”이라고 부르는 엄연한 정당의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여당이 여당으로 불리는 이유도,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여당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이렇듯 대통령은 정당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당의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의 의견은 다른 정당 구성원들의 발언보다,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의 당 문제에 대한 의견 피력을 불법 혹은 탈법적
식물성장에 필수 영양소인 질소의 발견은 화학에 위대한 성과이다. 공기속 질소를 얻으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는 물로 만들어진다. 물의 길을 따라 생겨난 것이 화학공업도시 흥남이다. 흥남을 만든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는 1873년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 전기공학을 전공한 화학기술자이다. 암모니아합성기술 특허권을 구매하여 노베오카(1923년), 미나마타(1909년)에 암모니아합성공장을 세웠다. 비료수요가 높아지자 자원이 풍부한 조선에 눈길을 돌리었다. 화학공업도시로 천혜의 자연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함흥-흥남은 해발 2,000m가 넘는 산맥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강수량과 석탄과 석회석이 풍부하고, 저렴한 토지와 노동력,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통이 편리하다. 이러한 이유로 노구치는 1927년 함흥에서 12km 떨어진 흥남에 질소비료공장을 세웠다. 이를 시작으로 물의 길은 부전강에서 장진강, 허천강에서 압록강까지 뻗어나갔다. 그리고 흥남은 빠르게 확장되었다. 흥남은 화학공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화학공업도시가 되었다. 노구치는 흥남의 초대읍장으로 흥남에 모든 것을 관할하는 기업도시가 되었다. 리승기는 1905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의 그림에는 주로 나무와 새, 소, 달, 산, 사람 등이 등장하는데 표정 하나하나가 우스꽝스럽다. 어느 하나 특출 난 것 없이 두루뭉술하다. 모두 어깨동무를 한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장욱진의 그림 세계를 불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행의 십우도(十牛圖) 중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입전수수는 이른바 깨달음을 성취하고 난 뒤 중생 속에서 아픔을 함께하는 보살도의 단계다. 한자 '전(廛)'이 말뜻을 잘 나타낸다. '전빵(전방)'의 '전'자와 같은데 가게를 상형한 것이다. 가게는 저잣거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전수수는 저잣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쉽게 풀이가 된다. 저잣거리에서 대중들과 함께 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느냐만 한 사람만 꼽으라면 우리는 신라시대의 원효를 드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머리를 기른 채 저잣거리에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았다. 부처가 대중 속에 깃들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승려와 신도, 엘리트와 대중, 권력자와 피지배층이라는 이분법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도 초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는 원효 지우기 시대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