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여파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른 바 갑질을 행한 당사자들이야 제기된 의혹에 대해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면 상당 부분 사실로 추정된다. 군대에 보냈거나 앞으로 보낼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르는 일이다. 육군 대장의 공관에 근무한다면 모두가 편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강아지에게나 채워야 할 방울처럼 손목시계형 호출벨을 채웠다. 뜨거운 떡을 일일이 손으로 뗐다. 사령관이 연습한 골프공이나 줍는다. 군대생활을 해본 부모들은 자식이 노예에 버금가는 이같은 생활을 했다고 상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개도 부잣집 개가 낫다느니, 훈련도 없지 않느냐니 하는 시대를 착각한 일부 허망한 목소리에는 하도 기가 차서 말조차 안 나온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수석보좌관들에게 전 부처 차원에서 갑질문화를 점검하라고 지시했을까. 우리의 갑질문화는 관존민비 사상이 엄격했던 조선시대부터 뿌리가 깊었다. 아니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대국인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황제에게 알현하러 갔던 문화가 그렇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양반의 행패가 심했다. 실학자 박지원이 쓴 소설 &l
생각은 인생의 물줄기를 이끄는 수로(水路)와 같다. 생각이 위대하면 인생도 위대하게 된다. 생각이 뛰어나면 인생도 뛰어나게 된다. 생각은 인생을 결정 짓는 열쇠와 같다. 1884년 미국의 스탠포드 상원의원 부부는 외아들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였다. 그러나 여행 중 아들이 열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16세 생일을 며칠 앞둔 때였다. 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려 했던 스탠포드 의원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에 자살까지 생각하였다. 그는 교회를 찾아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드리기 시작하였다. 기도 중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평정심(平靜心)을 찾게 되었다. 이에 그는 생각을 고쳐 아들에게 물려주려던 재산을 몽땅 털어 뜻있는 일에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래, 내 아들의 이름을 따서 대학을 세우자!” 그는 귀국 후 모든 재산을 털어 스탠포드 대학을 세웠다. 지금 전자공학과 경영학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스탠포드 대학이다. 천만 평의 캠퍼스에 1만5천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1천300명의 교수들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만 11명이다. 스탠포드 의원은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좌절감에서 생각을 바꾸어 명문대학을 세울 수 있었다. 나는 지금 77세이다.…
1989년 9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회 사고(accident)와 손상(injury) 예방 학술대회에서 “모든 인류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성명이 공식적으로 채택되면서 안전도시(safety Community)의 개념이 태동되었다. 안전은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이다. 인천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난위험시설이 있는 곳이다. 인천은 LNG 생산기지를 비롯하여 대형석유저장소 및 석유화학시설, 초고층빌딩, 대형유통시설, 대형 지하시설 등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위험시설 보유지역 중 하나이다. 특히 최근 들어 초대형 태풍, 지진, 화재 등 대형재난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형시설들은 도시안전을 심각히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의 재난 유형이 산업화, 도시화 및 정보화 등 급속한 환경변화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집중호우, 폭염, 폭설, 태풍 등 기상이변으로 대형화 되고 있는 추세다. 재난대비 사전예방의 중요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재난관리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 각종 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
걸었다 /이성필 친구 덕분에 물때를 배운다 내 생전에는 관심도 없이 지나갔을 일 늘그막에 친구는 어부가 되고 나는 어부의 친구가 됐다 젊어서 윗물에서만 살던 사람이 아랫물 해남까지 내려가서 낙지를 잡는단다 밤낮 없이 바다 물살은 들어오고 나가고 할 것이다 조차가 큰 사리의 삶 그럭저럭 조금의 삶 한때는 만조였던 사람 늘 그러리라 사는 나의 일상에도 물이 빠져 나간다 천천히 그러다가 순식간에 텅 비는 바다 검푸른 갯벌에 배를 걸었다 -계간 아라문학 여름호에서 사실 인생은 변화무쌍하다.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기도 어렵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밤낮없이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어쩌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날 문득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 화들짝 놀라곤 한다. 썰물, 바닷물이 일시에 빠져나가 버리고 텅 빈 자리에 갯벌만 드러누워 있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지만 시인은 빈 갯벌에 배를 걸어두고 있다. 다시 걷겠다는 것이다. 다시 밀물을 기다리는 것이다./장종권 시인
응급실에 근무하다가 보면 각양각색의 환자와 마주치고 예상하지 못한 경우의 환자와 만나기도 하고 우연한 말 한마디로 정보를 얻어 환자를 치유하는데 결정적 정보를 얻기도 한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진료시 환자 혹은 보호자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 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아주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느날 저녁 11시경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가 나면서 40대 남자가 119 구급대와 함께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환자는 혼수상태로 축 처진 채 입술이 창백했으며, 호흡이 불규칙해서 마치 사망하기 직전의 환자와 같아 즉시 기관내 삽관을 시행하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으며 그 외 응급처치를 시행하였다. 뇌 컴퓨터 단층 촬영과 엑스레이, 혈액 검사, 심전도를 시행하면서 환자 보호자에게 긴급히 연락하였다. 내원 1시간 후 뇌 컴퓨터 단층 촬영과 모든 혈액 검사를 포함한 검사 결과가 나왔으나 정상이었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환자 보호자와 연락이 되어 보호자들이 내원하여 과거 병력이나 집안 가족들의 병력을 자세히 물어보았으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마지막까지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던 회사 동료들
2005년 ‘금산갤러리’로 시작 참나무 살리는 미술관 설계 착안 2006년 대한민국 건축상 수상도 자연친화적 교육으로 창의력 쑥쑥 클래식 음악 연계한 수업도 진행 백순실 관장, 후배들 전시 기회 주려 “자신 개인전은 열지 않아” 원칙 고수 파주 헤이리 블루메미술관 현대적인 미술관과 박물관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공방, 아트숍,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즐길거리로 가득한 헤이리마을은 8월 피서철을 맞아 문화적 체험을 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헤이리마을의 한켠, 색색의 리본이 화려하게 걸려있는 건물이 눈에 띈다. 전시가 한창 진행중인 이곳은 2013년 문을 연 블루메 미술관이다. 여느 미술관과 다를바 없는 현대적인 건축물인가 싶지만, 미술관 가까이 다다르자 특별한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미술관 한쪽 벽에 난 구멍으로 여러 갈래로 뻗은 나뭇가지는 미술관의 시간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페테라스 곁에는 백순실 관장이 정성스레 키운 꽃과 나무들로 편안한 느낌을 배가시킨다. 자연과 미술, 다른 듯 닮은 두가지 이야기가 공존하는 블루메미술관을 만나보자. 2005년 파주 헤이리마을에 &lsqu
오리가 떴다. 저물녘 어미오리가 새끼 다섯을 앞세워 현장학습 중이다. 물살을 가르며 종종종 어미의 뒤를 따른다. 산책을 나서보면 늘 한 쌍의 청둥오리가 노니는 것을 보았는데 수습되는 듯 했던 AI가 다시 창궐했다는 뉴스가 있을 쯤 한 놈이 막 모내기를 끝낸 논에 처박혀 죽은 것을 관계기관에 신고한 적이 있다. 그 후 한 마리만 보이더니 그놈이 저들의 아비였나. 어미 따라 종종대는 모습이 가관이다. 앞서거니 따르거니 노는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한참을 바라보다 동영상으로 찍어 지인에게 보내기도 했다. 오리는 하루가 다르게 컸다. 며칠이 지나자 어미 꽁무니만 따라붙던 녀석들 제법 물질을 한다. 가끔은 무리에서 이탈하는 놈이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한 무리가 되곤 했다. 내 짐작이 맞는다면 짝을 잃은 청둥오리의 슬픔이 새끼들을 보면서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혼자서 알을 품고 새끼를 부화시키는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고통 뒤의 희열도 함께 했을 것이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종족을 보존한다. 가시고기는 부성애로 유명한 물고기다. 암컷이 산란을 끝내면 수컷이 둥지를 지키며 알의 부화를 돕는다. 새끼를 적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먹이사냥도 하지 않고
이젠 취학 전 아이들까지 놀 틈이 없게 되었다.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그냥 두어선 안 되지 싶은 조바심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의사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을 때부터 영어, 한자, 수학, 태권도… 이것저것 배우게 하는 석연치 않았던 현상의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5세 아이들의 경우 하루 학습시간은 3시간이나 되지만 실내·실외 놀이시간은 각각 1시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쟁 잘 시키는 별난 동네 얘기가 아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부모·교사 2천276명을 표집 조사한 전국적 현상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편하게 지내는 꼴을 볼 수가 없는 것일까? “아이들이란 행복해서는 안 된다” “그럴 수 없다”는 논리에 사로잡힌 건 아닐까? 혹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던 말대로 어릴 때의 그 고생이 장래를 보장한다는 착각에 빠져버린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과도한 사교육은 불안감, 우울증을 부르고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외면하겠는가? 아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눈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2학기에 웃고 싶다면, 여름방학 고생은 필수”! 7월…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그런 눈으로 욕하지마/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난 왼손잡이야…” 10여년전, 남성 듀오 패닉이 발표한 ‘왼손잡이’란 노래다. 이 노래가 발표되자 당시 마이너리티(소수자)인 왼손잡이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뜻과 함께 획일성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서 꽤 오랫동안 인기차트 상위에 올랐다. 실제로도 우리 사회에서 왼손잡이는 소수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만 20세 이상 국민 중 왼손잡이는 3.9%에 불과했다. 오른손잡이가 88.3%, 양손잡이가 7.8%였다. 양손잡이 중 적지 않은 수는 왼손잡이였다가 불편을 느껴 양손을 사용한 경우로 추정된다. 사회구조가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보니 실생활에서의 왼손잡이 애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병따개나 가위, 마우스 사용도 쉽지 않다. 왼손잡이로 산다는 것, 지금은 불편을 감수하면 그만 이지만 사실 예전에는 차별을 심하게 받았다. 특히 왼손을 터부(Taboo)시 해 따돌림은 물론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왼손잡이에 상대적으로 관대해 보이는 영국에서도 1940~50년대까지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왼손으로 글씨를 쓰다가 들키면 뒤로 왼손을 묶어 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종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