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첫사랑은 있다. 필자도 사십 년이 지난 일을 문득문득 기억하게 된다. 필자의 고향 해남의 바닷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만수가 차면 바닷물이 필자의 집 마당을 채웠고, 벗어놓은 신발들이 바다로 떠내려가곤 했다. 문저리와 낙지를 잡은 작은 목선은 마당 앞까지 들어와 만수까지는 바다로 다시 나가지 못하고 마당을 지켰다. 그을린 소금과 염분들이 떠나지 않았던 고향집, 목포에서 유학 생활을 한 필자는 주일만 되면 한 시간 반가량 목선 백마호 혹은 조양호를 타고 목포 앞바다를 건너 상공리 부두에 내려 다시 40분간 황톳길을 달려 산이면 덕호리에 하차했다. 늦은 밤, 산비탈을 몇 개 지나 이름 모를 묘지 앞을 불빛 하나만 바라보고 희미한 위로를 받으며 걷다 보면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는 너무 어렸기에 첫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 그때가 첫사랑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은 성년이 되어도 기억에 떠나지 않은 추억을 감지하고 나서야 그랬다. 동네어귀를 지나 친구네 집 앞을 서성이다 아침까지 기다린 적도 있고, 밤새워 모랫길 언덕배기에 바람을 등지고 서 있던 적도 있었고, 용남샘과 그루터기 나무도 첫사랑의 공간이었다. 추석과
올해 어르신들과 일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윗세대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올해 초, 몇 분의 농업분야 은퇴 교수님들과 해외원조 사업에 동참하여 파키스탄에서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하루는 일행 중 몇 분이 먼저 귀국하게 되어 귀국 전날 한 사람씩 얘기나 노래를 하며 환송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저녁을 잊지 못하는데, 그 중 연세가 가장 많으셨던 어느 교수님 때문이다. 그 분은 칠순 후반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장하셨고, 사람의 중심에서 나오는 건강하고 올곧은 힘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귀국 전날인 그 날도 현지인의 농업기술 교육에 쓸 비닐하우스 짓는 일을 온종일 마무리 하고, 검게 탄 농부의 모습으로 저녁 식사에 나타나셨다. 그 분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우리에게 어떤 문건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는데, 1919년에 작성된 기미독립선언서의 복사본이었다. 그 분은 독립선언서 전문을 외워보겠다고 하시곤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암송하기 시작하였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과연 그 분
‘독립전쟁론(獨立戰爭論)’이 있다. 때는 1905년과 1907년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이어 군대가 해산된다. 종말의 시작이다. 황제는 순종이었지만 권력은 친일매국노의 손에 있었다. 애국지사들은 국내에서 움치고 뛸 수 없는 세월이었다. 하여, 국외로 나가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만들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 곳에서 군대를 만들어 결정적인 시기에 국내로 진격해 조국을 되찾자는 ‘론(論)’이다. 이 운동의 중심에 이회영과 이상설이 있었다. 이회영은 1906년 여름 광복운동을 국내에서만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상설·이동녕·유완무·장유순 등과 만주에서 광복운동을 전개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적임자로 이상설을 선택한다. 물론 이회영의 추천이다. 이상설도 “재주는 없지만 만주에 나아가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청한다. 이상설은 1905년 정2품 의정부 참찬이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머리를 돌에 찧어 자살을 시도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백범 김구는 ‘옷에 핏자국이 얼룩덜룩한 채 여러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인력거에 실려 가면서 울부짖었다’고 백범일지에 썼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국외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1906년 4월 웃는…
음식물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된 지 반년이 경과했다. 올해 말까지는 음식물쓰레기 종량제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는 비상이 걸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에 사용하는 방식은 RFID 방식과 납부칩스티커제, 전용봉투제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있다. 안양시는 전용봉투제를 채택하여 오는 9월1일부터 공동주택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음식물 쓰레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음폐수를 그동안 해양에 투기하여 왔으나 2013년 음폐수의 해양투기 전면금지와 함께 정부의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 차원에서 실시되는 것으로, 그동안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에 상관없이 공동주택 가구당 월 900원씩 일률적으로 부과하던 시스템에서 가구별 음식쓰레기봉투를 자체 구입하여 그 안에 음식물쓰레기를 담아 기존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일률적 부과방식 이전에도 잠시 시행했던 일이어서 그리 큰 혼란은 예견되지 않고 있으나 사전 주민홍보와 교육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지자체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방식이 달라 새로 전입해 오는 세대나 다문화 가정 등 우리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서는 종량제 실시에 다소간 어려움이 있
요즘은 ‘덥다 더워’를 입에 달고 산다.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는 폭염의 기세에 눌려 일상의 계획조차 뒤죽박죽이다. 사람 잡는 폭염이니 한반도가 펄펄 끓는다는 등 더위를 표현하는 문구도 자극적이고 가지각색이다. 절전을 솔선수범 하느라 에어컨을 켜지 않은 사무실은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할 정도다. 밤이면 더하다. 30도 가까운 열대야는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린다. 여기저기 사망소식도 들린다. 뙤약볕 아래서 밭일하다, 비닐하우스 작업하다, 실외 공사장에서 일하다, 등산하다 10명 가까운 생명이 스러졌다. 때문에 농촌에 부모를 둔 자식들은 밖에 나가지 말라는 당부의 전화를, 부모들은 대처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염려의 전화를 주고받는 것이 요즘이다. 날씨가 부모 자식 간 뜸했던 연락마저 자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럴수록 우릴 시원하게 하는 그 무엇이 없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청량제는 어디에도 없다. 살림살이를 들여다봐도 그렇다. 새 정부 들어서 좀 나아지려나 기대했던 월급쟁이들은 오히려 날씨보다 속이 더 끓는다. 경제도 나쁘고 수입도 늘지 않는다면 지출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내야하는 세금마저 늘어나게
요즘 ‘설국열차’라는 영화에 생존을 위한 최소 영양공급원으로 프로틴(단백질)블록이 등장하면서 비슷한 모양인 양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양갱을 먹으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이 프로틴블록에서 미래의 기능성 영양식 ‘라이스블록’을 그려보게 된다. 쌀에는 주요 열량원인 탄수화물과 영양원인 단백질이 주성분으로 들어있으며 무기질, 비타민 등의 많은 영양소도 들어있다. 특히 쌀 단백질은 밀이나 옥수수에 비해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의 함량이 2배나 높은 양질의 단백질이다. 쌀로 지은 밥은 섬유질도 풍부해 장운동을 자극하고 대장 내 소화과정에서 낙산을 만들어 대장암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밀과는 달리 소화시간이 길고 인슐린 분비량을 적게 하여 혈당치가 높아지는 것을 억제한다. 이같이 쌀은 비만과 고혈압 등의 성인병 예방에 좋으며 비타민 B, E, 식이섬유 등이 다양하게 들어 있어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기도 한다. 쌀 속의 섬유질 성분은 우리 몸에 해로운 중금속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을 주식으로 해온 서구에서도 최근 들어 이러한 생리활성을 가진 쌀을 웰빙식품으로 인식하는 사
2014년 이전 예정인 농촌진흥청 자리에 국립농어업박물관이 들어선다니 매우 반갑다. 염태영 수원시장과 여인홍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엊그제 국립농어업박물관 건립에 상호 협력하겠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다. 농식품부는 이미 지난달에 기획재정부에 수원 건립 예비타당성 조사도 신청했다. 몇 가지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젠 첫 삽을 뜨는 일만 남은 셈이다. 2007년 국립농어업박물관 건립 계획이 발표되었을 당시부터 여러 지역이 유치경쟁을 벌였던 점을 상기하면 경기도와 수원시 관계자들의 노고가 컸다. 농진청 자리 활용방안이 확정됨으로써 서수원 발전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게 된 점도 기쁘다. 서둔동 농진청 자리만큼 국립농어업박물관에 어울리는 자리도 없다. 인근 여기산 일대의 선사시대 농업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정조대왕이 축만제를 축성하고 국영농장 둔전을 설치했던 한국 농업의 메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종 황제는 1884년 이 자리에 농무목축시험장이라는 근대적 모범농장을 짓도록 했다. 미국 보스턴의 왈코트(Walcott) 시범농장을 본뜬 이곳 모범농장은 농촌진흥청의 직접적인 효시다. 1906년엔 이곳이 권업모범장이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도 전국에서…
‘비속어’는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이다. 당연히 비속어를 듣는 사람은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잔머리 굴린다’라는 말은 비속어에 속한다. 듣는 대상이 불쾌해 하더라도 이 한마디는 꼭 해야겠다. “새누리당, 잔머리 굴리지 말라!”고. 왜 이런 과격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새누리당을 비판하는가 하면, 그들이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문제를 놓고 하는 짓이 쓴 웃음을 짓게 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문제는 여야 막론하고 대선 후보들의 대국민 공약사항이었다. 그런데 대선 후 정치권의 반응은 수상했다.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불가론이 솔솔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한 내홍은 민주당이 먼저 겪었다. 당 지도부가 정당공천 폐지를 잠정 결정했으나 일부 의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것이다. 지난 7월8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반대 의견이 거셌다. 반대 의견 중에는 지역 토호가 기초의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넓혀 엄청난 부패를 야기한다는 주장과 여성공천 의무할당제 위축 등의 논리가 제기됐다. 한 여성의원이 “우리 지역에선 정당공천이 폐지되면 조폭도 출마하겠다고 준비 중”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달력을 보니 어느덧 다가온 8월 15일. 68년 전 그 날을 떠올리며 가만히 눈을 감아보자면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던 조국광복의 기쁨으로 소리 높여 만세를 외치던 선열들의 함성이 귓전을 맴돈다. 일제의 온갖 압제와 고통으로 인한 우리 민족사의 암흑기에서 어둠을 헤치고자 의연히 자기를 버렸던 순국선열, 애국 지사분들의 뜨거운 나라사랑과 그 숭고한 애국정신을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계승하고 있는지, 또 우리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 광복 68주년이 되는 올해 광복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도 갈망했던 조국 광복을 맞이했지만 그 감격과 가슴 벅차던 환희도 잠시, 우리는 이념대립으로 남북으로 분열했고, 또 지금도 국내에서 이념 갈등으로 국론은 더욱 분열되고 있다. 왜일까? 그토록 갈망하던 독립된 조국에서 우리는 왜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하고 있을까? 그건 바로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던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어디론가 실종된 후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독립투쟁을 하던 분들은 오로지 대한독립만을 위해 의연히 모든 것을 버려가며 투쟁했으나, 해방 후 그 분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 및 평가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자신이 한 말이 불행이 생기는 근원으로 되어 죽을 수도 있다’는 말, 즉 함부로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논어에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 하였다. 이 말은 그의 제가 중 자로라는 이가 있었는데 태생이 무뢰하고 기고만장하듯 한 성품이라 공자를 모시고 다니면서도 자만심을 드러내고 뽐내기를 좋아해 공자를 자주 당혹하게 만듦으로써 공자가 子路(자로)에게 한 말이다. 지식이 깊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이어져 오고 있고 또 인류 역사와 함께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람이란 대체로 남에게 보이게 또는 보이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니까 교육도 마찬가지다. 조금 배운 것으로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면이 있는 것이다. 옛말에 옛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과 예의를 위해 학문을 했다면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든 남을 가르쳐 보고자 학문을 한다고 말한 이가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舌是斬身刀) 입 다물고 혀를 숨겨라(閉口深藏舌) 그래야만 몸을 편안하게 간직할 수 있다(安身處處牢). 내가 무심코 하는 말 한 마디가 상대에게는 도끼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