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가까워 오면 한해를 정리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용기와 희망을 준 말부터 말 값을 못한 말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리우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돈 없는 네 부모를 원망하라”며 이죽거렸던 정유라의 말은 청년세대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라고 한탄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패러디 1위 말이 됐고 최순실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는 ‘가증스런 말’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입에 담기도 역겨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도 역시 공분을 샀던 말이다. 알파고와의 대결 뒤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게 아니다”라고 한 말은 희망의 상징으로 회자됐고 정치권에서 나온 “사이다는 밥이 아니다. 고구마는 배가 든든” “이 한 몸 불사르겠다”는 등의 은어성 말들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올해의 말 중엔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도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표준어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고 재미를 느낀 단어들이다.모두젊은 층의 생각과 사회 변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올해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가장 많이 찾아본 신조어는 무엇일까? 부르
비 오는 날 /김신용 비의 바늘을 닦는다. 녹슬지 않게…… 암울한 구름 덮힌 이 공치는 날 빗물 스미는 방에 속절없이 갇혀 세상 무너지는 빗소리에 흐르고 있다 보면 구름장 더욱 낮게 고여오는 가슴속 비의 바늘, 못이 되어 박혀와도 입김 호호 불어 아픈 마음으로 닦는다. 삶의 터를 진흙탕으로 만드는 저 빗물이 갈증으로 갈라 해진 흙의 입술에 풀잎의 마음 한 술로 적셔지고, 아무도 몰래 땡볕에 몸 비틀던 뿌리에 젖어 꽃 한 송이 떠올려 주는 저 비의 바늘, 보이지 않는다고 잊지 않게…… 잃어버리지 않게…… - 김신용시집 ‘버려진 사람들’ /고려원·1988 14살부터 구두닦이 부랑생활 지게꾼 등을 전전하며 아프게 살아온 시인이다. 얼마나 아팠으면 비를 바늘이라 했을까. 게다가 몇 푼 되지 않는 벌이마저 공치는 날엔 바늘이 못이 되어 박혀 온다. 주로 서울역을 근거지로 연명하던 시인에게 그래도 진흙탕으로 만드는 빗물이나마 마른 입술 적시며 꽃 한 송이 떠올려 주는 고마운 바늘이 되기도 한다. 도시의 빌딩 그늘 아래 이름 없이 살아가는 지금의 아픈 우리들에게도
격랑 속에서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온 나라를 흔들다 못해 수렁에 빠뜨릴 것만 같았던 사건의 연속이라고 해도 세월은 언제나 같은 보폭으로 걷는다. 그런데 올 연말은 다른 때와는 뭔가 다른 것 같다. 언제나 들리던 캐롤도 들리지 않고 설렘 가운데서도 한 해를 돌아보게 하던 교회의 성탄 트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근 교회도 십자가 등만 쓸쓸하게 어두운 하늘을 지키고 늦은 밤 취객들의 욕설이 섞인 떠들썩한 목소리도 모두가 깊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고 세상에는 두 여인과 그의 측근들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탄 트리 대신 촛불에 눈길이 향하고 캐롤이나 송년모임을 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얼어붙은 경기에 움츠러든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 대신한다. 병신년, 얼핏 욕설처럼 들리는 그래서 매사에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던 2016년이 이렇게 역사 속으로 묻히고 있다. 스포츠센터 로비에는 조화 벤자민 화분이 진짜보다 더 파릇한 자태로 사시사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매달고 각자의 소망을 하나씩 적어 붙이도록 했다. 처음에는 썰렁하던 나무가 색색의 종이가 달리면서 제법 예쁘게 변해간다. 나도 준비된 여러 가지 모양의 조그만 카
아침 8시, 집 앞동산 나지막한 산길을 걸어 출근을 하면 언제나 수탉이 날씨에 관계없이 그 시간에 목청을 높인다. 그러면 건너편 수탉이 질세라 더 목청을 높인다. 이 산길 냄새는 닭울음과 함께 60년대 초엽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 때 외갓집에 가면 수탉이 볏단 근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 때의 시골의 찬 공기 냄새와 같아서 흐뭇하다. 언젠가 도올 김용옥 선생이 닭 찬미를 했다. 지금도 닭 찬미는 변함없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해는 닭의 해다. 2017년에는 제발 조류 인플루엔자만이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또 죽어간 무수 무명의 조류들의 명복을 빌면서 새해를 맞이하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먹어치운 닭과 달걀이 몇 마리이며 몇 개나 될까. 옛날 집 안 마당에서 노란 새끼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며 먹이를 쪼아주던 붉고 노란 어미 씨암탉을 구경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의 닭은 대부분 공장에서 출하되다가 인플루엔자 한 번 돌면 생닭까지 포클레인에 의해 무참하게 땅 속에 묻히게 된다. 얼마 전까지 슈퍼에 달걀이 동이 났었다. 최씨 게이트로 민생문제를 예방하지 못한 정부의 탓이 크다. 성탄을 지내면서 베드로 성인이 떠오른다. 예수를 아냐는 질문에 베드로가 비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 흔히 수사기관 따위에서 위험인물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마련한다. ‘감시 대상 명단’, ‘요주의자 명단’으로 순화돼 사용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적혀있는 블랙리스트의 설명이다. 내용대로라면 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를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동안 정권유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워낙 많이 이용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 민주 노조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노동계 블랙리스트’다. 이는 위험인물 등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부당 해고된 노동자가 다른 사업장에 재취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노동부와 정보기관이 작성한 것이다. 그야말로 노동자의 생존권 박탈 명부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물론 노동계 이외에 다른 분야에도 있었다. 특히 유신시절엔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작성됐다. 그 중 하나가 대중가요 블랙리스트다. 김민기 ‘아침이슬’, 신중현 ‘미인’, 경찰이 불렀는데 안 돌아봤다고 해서 금지곡이 됐다는 송창식의 ‘왜 불러’까지 이유도, 원인도 애매한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여 줄줄이 방송·공연을 금지시켰다. 1987
벌레 /이재훈 꽃 속에 산다 웅덩이에 잠겨 달콤함에 취해 먹고 싸며 늙는다 그곳이 지옥인 줄 알고 기어 나올 때 지옥을 보려고 온 사람들 예쁘다고 기념할 때 벌레들끼리 서로 눈 마주쳐 징그러워 깜짝 놀랄 때 마지막 계절은 툭 떨어진다. - 이재훈 시집 ‘벌레 신화’에서 우리는 벌레 속에서 하루를 시작 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이 시에서 시인 역시 우리 인간들은 벌레이고 사회구조는 지옥임을 이미지화 하였다. 벌레처럼 낮은 포즈로 기어 다니며 고통스럽게 살아야하는 현실 속에서 마취와 환각상태에 빠져있는 또 다른 벌레들이 사는 세상을 고발하고 있다. 꽃 속에 파묻혀 환락가 같은 웅덩이 빠져 그 달콤함에 취해 허우적거리는 벌레들, 그곳이 지옥인지 모르고 아직도 세상을 탐하고 있는 벌레들, 본인이 벌레인지도 모르고 벌레를 싫어하는 인간들, 아직도 물질만능주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그 안에서 온갖 탈법과 반칙을 일삼고 살아가는 인간들, 그러면서도 반성을 모르고 낯설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은 정말로 벌레인 것이다. /정겸 시인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이하 특검팀)의 활동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특검은 ‘박근혜-최순실’게이트라고도 불리는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분노를 넘어 참담함까지 느끼게 하는 비리들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본격 수사도 시작됐다. 특검팀은 1만명의 명단이 들어있는 블랙리스트를 청와대와 문체부 주도로 작성했다고 보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먼저 최순실이 박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가 필요하다고 제안하자, 박 대통령은 김 전 비서실장에게 해당 구상의 실현을 지시했고 정무수석실이 명단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 명단은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 실무자 등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1차관은 정무수석실에서 수석과 국민소통비서관으로 일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을 블랙리스트 작성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특검은 26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오십대가 된 어느 가을날, 내 마음을 바라보다 문득 세 가지를 깨달았다. 이 세 가지를 깨닫는 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가를 알게 되었다. 첫째는,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다. 셋째는,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내 가족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도 아주 솔직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가족이 있어서 따뜻한 나를 위한 것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는 것도 결국 외롭게 된 내처지가 슬퍼서 우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기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고 그래야 또 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말자. 좋은 인연으로 쉽게 즐겁게 살아가자. 혜민 스님이 쓰신 글이다. 결국 자신을 위하고, 자신이 행복할 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된다. 만약에 남자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면 먼저
“물로 고문하고 모욕하고 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켰어요.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엄마, 저 없이도 행복하게 사세요. 괴롭힘은 끝났지만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벌써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2011년 12월,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대구 중학생 권모군의 유서이다. 학교폭력이 국가적인 문제가 된 계기는 권승민군 자살사건이었다. 권군은 가해자인 같은 반 친구 2명이 보내온 협박성 문자를 하루 평균 50통씩 수개월간 받았다. 새벽에 깨어나서 게임레벨을 올리도록 강요받고 금품을 갈취당하는 등의 피해를 당했다. 권군의 자살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10대의 나이에 친구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한 학생들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 권군 사건 이후에도 학교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12월 대전 모 여고에서 왕따를 당하고 담임교사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보복폭행을 당해 투신한 여고생, 2013년 3월 경산 모 고교에서 갈취 및 폭행으로 투신자살한 최군, 2015년 5월 초등학교 때부터 당해온 왕따와 SNS상의 언어폭력 및 신체폭력을 견디다 못해 투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