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삼바, 아마존, 열대우림, 남미 최대 영토와 인구, 자원 부국인 브라질. 그러나 세계 최악의 빈부격차와 불평등, 부정부패와 치안 불안의 국가로 인식되었던 브라질을 한때 세계에서 가장 희망이 넘치는 국가로 탈바꿈시킨 인물이 룰라 전 대통령이다. 그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가난한 선반공 출신의 노동자였다. 노동자를 위하는 정당이 없기에 스스로 노동자당을 만들어 4번 출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2002년이었다. 룰라가 대통령이 되자 외국 자본들은 빠져나가고 국가부도에 직면할 것이라고 해외 언론은 저주의 악담을 퍼부었다. 실제로 단물을 빼먹던 미국 기업들은 줄줄이 브라질을 떠났다. 일순간에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국민은 동요했지만, 룰라는 꿋꿋하게 버텼다. 과거 브라질의 이권을 챙기던 기득권층을 엄단하고 새로운 경제정책을 통한 자강책을 세웠다. 특히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은 브라질을 기사회생시켰다. 그것은 극빈층에게 국가에서 생활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기본소득 정책이었다. 처음에는 350만 명이 혜택을 보다가 점차 브라질 인구의 25%가 수혜의 대상이 되었다. 자녀를 반드시 학교에 보내야만 받을 수 있는 이 정책으로 브라질 경제는
부는 우리에게 결코 만족을 주지 않는다. 부가 늘어남에 따라 욕망도 커지기 때문에, 부가 크면 클수록 욕망의 만족도는 낮아진다. 우리의 재물욕에 적당한 한계를 두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그 점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어떤 사람의 절대적인 크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크기, 즉 그 사람의 욕망과 재산의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므로 재산 그 자체는 분모가 없는 분자처럼 지극히 의미가 적은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싶어한 적이 없는 것, 그래서 그에게는 필요 없는 것은 없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런 반면 그 사람보다 백갑절이나 되는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더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법이다. (쇼펜하우어) 좀더 재산이 있었으면 하는 기분이 들 때는 즉시, 실은 이것만으로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거라고 고쳐 생각하는 것이 좋다. (리히텐베르크) 조금밖에 가지지 않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 가난한 것이다. (세네카) 욕구를 적게 가지고, 그 적은 욕구도 스스로 충족시키며, 모든 기회를 이용해 얻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주고자 하는 것이 훨
지난 10·3은 개천절인 동시에 동서독이 통일을 이룬 날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리 온 통일’ 이라고 하는 탈북민에 대한 얘기를 할 까 한다. 경기도 안성에는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별칭 하나원)가 있다. 1999년 개원 이래 현재까지 3만 4000여명의 탈북민들이 하나원을 거쳐 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국내 주요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탈북민 규모는 낮은 인구수의 군과 비교해서 적지 않은 인원이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탈북민과 직접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탈북민에 대한 사회 인식은 같은 동포로서 지원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부정 인식과 일부 탈북민의 일탈 행위로 탈북민들과는 일종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탈북민들 대상 대학 정원외 특례입학, 의료 및 생활 지원 등을 들어 ‘흙수저’들은 ‘금수저’에 치이고 ‘탈북민 수저’에도 치인다는 얘기도 있다고 한다. 남북하나재단이 국내 거주 탈북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착 실태조사에서 국내에서 차별이나 무시당한 경험이 18% 수준이지만, 남한생활 만족도는 77% 수준이고 불만족은 2%수준대에 그친 결과가 나왔
개천절 황금연휴,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무위당 잠언집' 등 선생의 보석 같은 유물들을 탐독했다. 과장 없이 몸과 마음이 함께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무위당 읽기'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하늘이다')사상과 '노자삼보'(老子三寶. 자애 검소 겸손)를 일상화하여 살았던 이 특별한 선지자를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하늘, 땅, 사람이 협력하여 지은 농사에서 거둔 나락 한톨 안에 우주만물의 기운이 빠짐없이 들어 차 있으니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는 조금의 과장도 아니다. 넓은 바다에 빠뜨린 그 좁쌀 한 알(滄海一粟)이 광대무변의 우주이기도 하다는 가르침은 실로 놀라웠다. 키가 한뼘이나 자랐다. 자연과 인간, 또 인간과 인간 모두가 우주 안에서 그 일체의 조건이 작용하여 '나'를 있게 해준 거다. '나'는 나락이 그러하듯 그렇게 수혜자로서의 우주다. 그 말씀은 어렵기만 한 존재론과 우주론을 자상하고 다정한 선생님처럼 깨우쳐 준다. 선생의 벗들은 말한다.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 이현주(목사. 작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대담자) "내게는 아버지 같았던 분"ㅡ김민기(뮤지컬 '지하철 1
오리 두 마리가 뒤뚱뒤뚱 길을 간다. 거리를 두고 뒤에 따라가던 오리가 멈추면 앞서가던 오리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어떻게 알았는지 동시에 멈추어 선다. 멀찍이 따로 서서 먼산을 보다가 앞쪽 오리가 출발하면 뒤쪽 오리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얼른 고개를 돌려 앞 오리를 따라 걷는다. 가축은 주인을 닮는다던데 덕기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운 오리가 분명하다.
어리석은 바보, 미치광이 천치... 병 이름 ‘치매’의 한자 癡(치)와 呆(매)의 뜻을 합친 이름이다. 사전은 ‘뇌세포 손상 따위로 인해 지능 의지 기억 등이 지속적 본질적으로 상실(喪失)되는 병으로 주로 노인에게 나타난다.’고 풀이한다. 한자 해석하니, 욕설 아닌가? 불가항력, 어쩔 수 없는 것이 병이다. ‘너’도 ‘나’도 걸릴 수 있는 안타까운 병 ‘치매’도 그렇다. ‘어리석다’거나 ‘미치광이’라는 말이 붙은 ‘바보’라는 명칭, 참 슬프고 어리석다. ‘기왕에 병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니’하고 혀 몇 번 차고 말 일 아니다. ‘한가위 명절에 치매 어르신 잘 보살피자.’는 TV 프로그램 자막 보며 가슴 아팠다. ‘미치광이 바보 어르신’이라니. ‘지랄’을 이제 병명으로 안 부른다. 대신 간질(癎疾)이다. 문둥병도 ‘문둥이’란 말의 실존 때문에 나병(癩病) 한센병으로 부른다. 전염병(傳染病)의 이름에 든 ‘염병’도 병을 빙자한 욕설로 쓰인다하여 피하는 말이다. 배려이기도 하겠다. 癡呆는 痴呆로도 쓴다. 癡나 痴는 같은 뜻이다. 질병의 대표 기호(글자)와도 같은 녁(疒)자와 의심의 疑나 지식의 知가 합쳤다. 의심하는 병, 아는 것의 병이라는 뜻에서 ‘치’는 어리석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한 인류의 진화는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까지 왔다. 현생 인류를 지칭하는 별명으로는 호모 루덴스, 호모 데우스, 호모 이코노미쿠스 등이 있다. 호모 데우스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지어낸 이름으로 인류가 생명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노화와 죽음에서 해방돼 불멸과 신성과 행복을 구현한 미래의 상태를 예견하는 이름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인간을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로 설정한 현대경제학에 대비해 경제주체의 비이성적 감정적 심리를 부각시킨 이름이다. 호모 일렉트리쿠스는 필자가 새로 지어낸 이름으로 처음 선을 보인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의 통찰에 있다.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라는 것. 매스 미디어 시대의 메시지 효과 이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외계어를 대하는 양 낯설 것이다. 생각해보자. 지난 10년 사이에 세상을 뒤집어놓은 것은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인가, 콘텐츠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기차나 자동차, 비행기 등이 무엇을 실어 나르는가에 관계없이 세상을 변화시킨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들은 운송
수고로운 열매로 가득한 10월, 개천절을 보내며 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려도 차마 범하지 못한 곳이라는 이육사의 시 ‘광야’를 읽는다. 하늘이 처음 열리고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천고(千古)의 뒤에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에게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광야를 상상한다. 최초의 민족국가 단군이 있었고 컴퓨터에 한글을 쓰는 오늘날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남쪽에서 하늘이 열린 10월 3일을 개천절로 기념한다. 북쪽에서는 단군신화를 인정하지 않다가 1980년대부터 관심을 가지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단군릉을 1994년 개건하면서 실존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핵문제로 준전시상태까지 갔던 불안한 시기를 감안하면 진위여부를 떠나 국가존립에 민족을 내세운 정치의 연속이다. 남쪽에서 한글날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세종 28년(1446년)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10월 9일로 기념한다. 북쪽은 훈민정음 창제된 날인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을 양력으로 환산해 1월 15일 훈민정음 창제일로 정했다. 남북은 단군을 민족국가의 시조로 인정하고 한글을 사용하면서 선조의 업적을 기리고 있지만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임산부의 날인 10월 10일 북쪽은 ‘조선로동당창
진정한 현자는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심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수고와 탐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자신이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알려면 사람은 많이 배워야 한다. (몽테뉴) 모르는 것을 남에게 묻는 것을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말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언제나 진실을 말하라. 학문을 배우고도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지 않는 사람은 모처럼 밭을 갈아 놓고 씨앗을 뿌리지 않는 사람과 같다. (아라비아의 아르비테스) 철학이나 자연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보통 사람들이 확실하다고 믿는 것을 단순히 그럴 수도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리히텐베르크)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 그리고 악한 일은 어떤 종류이든지 멀리하십시오. (데살로니카전서 5장 21절) 우리의 영혼에는 양식이 부족한 일이 없다. 그것을 자기 몸에 섭취하는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과거에 존재했고 또 앞으로 존재할 모든 요소는 육적, 지적, 정신적인 모습으로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요소들을 지배하는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이상 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진리와 선을 아는 소수의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시민의 대표자 다수가 정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정치인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는 듯한 막말과 저급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다. 사실, 정치인의 막말과 시정잡배 같은 행태는 종종 목격되었으며 이로 인해 시민들은 정치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으며 다음 선거를 기다린 후 투표를 통해 개인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의사 표시였다. 이쯤에서, 이러한 정치무관심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할까라는 환원론적 관심이 생겨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인의 대부분은 좋은 학벌과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한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훌륭한 사람들이 정치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무관심과 불신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러한 명제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명석한 두뇌와 훌륭한 학벌은 좋은 정치인의 덕목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