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주가 지났다. 그러니까 14일 새벽이 어슴푸레 밝았다. 밤새 뜸해진 비에 곤한 잠을 자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처럼 한가하게 염색이나 할까 하고 약을 섞어놓고 그 사이에 마른 빨래도 개켜 넣고 염색약을 바르고 전날 번개 때문에 못 보낸 원고를 보내려 모처럼 여유를 부려보는데 갑작스런 천둥소리에 놀라 컴퓨터를 끄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남편의 다급한 음성이 먼저 뛰어 들어온다. “가게 물차고 있어.”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재빠르게 머리 헹구고 타월 뒤집어 쓴 채 달려 나갔을 때 내 앞에 놓인 풍경이라니! 지금까지 내가 살던 우리 집이 아니었다. 찻길은 쏜살같이 달리는 황톳물로 넘치고, 가게 안은 온몸으로 출렁이며 나를 기다리는 흙탕물로 한강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쓰레받기로 퍼내보지만 얇은 플라스틱은 휘청거리고 힘을 쓰지 못해 물은 점점 불어만 갔다. 결국 좀 더 탄탄하고 변이 넓은 사각쟁반으로 맹렬하게 물을 퍼내고 쓰레기로 막힌 집 주변의 배수로를 찾아다니며 계속 오물을 치워가며 뚫고 나니 하늘은 어느새 말짱한 얼굴로 구름을 몰고 떠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늦추고 흘끔거리며 쳐다보기에 그냥 한심하고 불쌍
몇 년 전, 관계하는 단체의 10주년 기념 자료집을 만들 때다. 제목 아이디어를 내라기에 이렇게 제안했다. <10년 후를 기억하며, 10년 전을 상상하라>. 항의가 쏟아졌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거 아닌가요? 잘못 쓰신 거죠? 그 자리에서 긴 설명을 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저 발상은 독창적인 게 아니다. 20세기 영국 역사가 루이스 네이미어 경의 명제를 빌려온 것일 따름이다.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하라! 물론 네이미어는 멋 부리려고 상식을 뒤집은 게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에드워드 카의 친숙한 명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이미 지나간 과거가 어떻게 현재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려면 우선 현재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과거가 ‘상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왜 현재가 과거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가? 미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역사의 대열 한복판에 있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는 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의 행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오늘에 이르게 된 과거를 되짚어보는 일 단 한 가지뿐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표
지방자치시대에 공무원 인사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다른 지역에 근무해보면서 자기를 돌아 볼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과 협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른 주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환경에 가보는 것이다. 이에 2010년에 당시 행정안전부는 지방공무원 인사교류 운영지침을 제정하였고, 이에 경기도는 4급 15명, 5급 42명, 6급 81명의 인사 교류 직위에 따른 인원을 정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인사교류는 경기도와 시·군이 1:1 교류가 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경기도가 시·군을 이해하고 시·군이 경기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교류가 일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도청 공무원이 5급으로 승진하면서 자리(팀장)를 줄 여유가 없으면, 시·군으로 갔다가 자리가 생기면 다시 올라오면서 그 자리에 다시 경기도청 공무원이 내려가는 방식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도청 공무원과 시·군 공무원의 ‘상호’ 인사 교류가 아니라, 도청 공무원이 시·군에 낙하산으로 갔다가 돌아오면 회전문 인사를 통해 다시 경기도청…
본보는 지난 10일자 사설을 통해 민주당을 비판한 바 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 문제에 적극 앞장서야 할 제1야당이 오히려 이를 반대하려는 움직임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7월8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반대 의견이 다소 우세했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가 ‘찬반검토위원회 건의 정당공천제 폐지’에 우호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지역 토호가 기초의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넓혀 엄청난 부패 야기 ▲새누리당의 덫에 걸린 것 ▲여성공천 의무할당제 위축 등을 이유로 많은 의원들이 반대의견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번에도 또 기초선거 무공천제가 물 건너갔구나’ 하고 실망했다. 실망을 넘어 분노도 느꼈다. 왜냐하면 기초선거 무공천은 양당의 대통령선거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 비판을 거둬들이려 한다.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에 대해 정당공천을 하지 않기로 당론을 확정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20~24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안을 전 당원투표에 부쳤다. 그 결과, 전체 투표대상자(권리당원) 14만7천128명 가운데 51.9%(7만6천370명)가 투표에 참가, 67.7%(5만1천729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우선 ‘기초선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지난 3일 일부 업체가 “철수” 배수진을 침으로써 시작된 회담은 6차에 걸쳐 지루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안 하느니만 못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 사이 애초에 걱정했던 장마철 기계부품 손상이 심각하게 진행되었을 터이다. 장마 걱정을 빌미로 시작된 회담을 장마가 끝나도록 성과 없이 공전시킨 책임에서 남과 북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6차 회담 결렬 직후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이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정부로서는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박철수 북측 수석대표는 “남측과의 개성공업지구 협력사업이 파탄 나게 된다면 개성공업지구 군사분계선 지역을 우리 군대가 다시 차지하게 될 것이며 서해 육로도 영영 막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대결심’이 공단폐쇄를 의미하는지, ‘군대주둔’이 확정된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북 모두 개성공단 존폐를 벼랑 끝에 세우고 마지막 ‘치킨 게임’을 하겠다는 의도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이미 실무회담 합의 직후부터 본란을 통해 이번 회담이 공단을 다시 열기 위한 회담이
貴鵠賤鷄(귀곡천계)나 遠貴近賤(원귀근천)으로도 유사하게 쓰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나쁜 양심을 가지고 있고 비인간적 행동인가를 묘사한 말이기도 하다. 흔하지는 않지만 돈이 많이 생기거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왔을 때 일어나기 쉬운 일이다. 재산이 불어나게 되면 쓸데없는 생각과 욕망이 발동하게 된다. 그래서 고전에서도 飽暖思淫慾(포난사음욕)이라 하여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음탕에 빠진다 하지 않았던가. 송나라 文豪(문호) 蘇東坡(소동파)의 누나는 당나라 때 명필 柳公權(유공권)의 후손 집안에 출가했다. 어느 날 조카들이 소동파에게 글을 써줄 것을 요청하자 한 폭을 써주었는데 글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의 집안에 그렇게 유명한 선조가 있는데 그런 분의 글이 있으면 그런 분의 글을 익히고 부지런히 따르면 그만이지 왜 또 나에게 글을 써달라고 하는가’라고 했다. 厭家鷄 愛野雉(염가계 애야치)인 것이다. 즉 ‘집안에서 기르는 닭은 싫어하고 들에 사는 꿩을 좋아한다’는 말로써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가벼이 여기고 타인의 물건을 부러워한다는 의미이다. 때로는 자신의 본처를 버리고 밖에서 만난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도 된다. 부유할 때는 망각하고 어려워졌을…
지난 23일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 쾰른 등 주요 도시에 2천여장의 나치 전범 수배 포스터가 내걸렸다. 포스터에는 유대인 대량학살이 자행된 아우슈비츠 비르 케나우 강제수용소의 정문 사진이 담겼다. 그리고 제보자에게 최대 3만3천 달러(약 3천680만원)의 포상금을 제공한다는 안내문구도 실렸다. 이 같은 포스터 게시는 멈출 줄 모르는 나치 전범 추적 체포 및 기소로 나치 사냥꾼이라 불리는 ‘시몬 비젠탈 센터’가 주관하고 있다. 독일에는 아직도 죗값을 치르지 않은 나치 전범이 6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시몬 비젠탈 센터가 추적에 나선 것이다. 일가친척 89명을 나치 손에 잃고 부인과 단 둘이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시몬 비젠탈(1908~2005)은 1977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 비젠탈 센터를 설립했다. 그리고 사망하기까지 1천100명이 넘는 나치 전범을 기소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나치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죽은 후 지금은 후계자인 에프라임 주로프(65)가 센터를 이끌고 있다. 그 또한 나치 잔당의 98%는 이미 숨졌지만 남은 2%를 심판대에 세우기 전까지 사냥은 끝나지 않는다고 공언
7월 5일에 갑자기 떠난 3박4일은 최상의 기후로 최상의 여행이었다. 중국의 연길을 통해 들어간 숙소에서 20분 정도 달리니 백두산 입구다. 중국에선 백두산을 長白山이라고 부른다. 자작나무와 사스레나무가 산 입구부터 산을 오를수록 풍파에 이리저리 휘어진 모습이 산의 기후가 얼마나 변화무쌍한가를 알게 한다. 중턱쯤에서 초목이 자라지 못해 작은 풀밭이 펼쳐지고 창밖엔 작은 야생화들이 즐비하게 피어있다. 잘 정리된 구불구불한 길에 수많은 봉고버스가 오르고 있는데 하나하나가 중국의 수입원일 것이다 생각하니 이북의 백두산을 그냥 묵혀두는 게 안타깝게 느껴진다. 가이드는 열 번 와서 세 번 보기 힘든 백두산 천지인데 우리들한테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라고 축원을 한다. 천지 근처 천문봉주차장에 내리니 사람이 꽃이다. 인산인해를 이룬 행렬이 순례객처럼 열을 지어 오른다. 천지에서 무엇을 찾고 무엇을 얻으려는지 흐드러지게 핀 꽃처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천지를 향해 걷는다. 15분 정도 걸어 오르니 많은 사람이 벽이 되어 천지를 가리고 있다. 천지는 새파랗다 못해 청옥빛 나는 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백두산 천지는 이미 사람들 마음의 성지가 된 곳, 성지는 좀체 얼굴을 보이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향후 행보를 둘러싼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만큼 2014년 지방선거가 가까이 다가왔나 보다 하는 느낌보다 ‘김문수의 힘’이 먼저 읽힌다. 변덕스런 날씨에 최대 시우량을 갈아치우며 처참한 피해를 낸 최근 며칠의 장마 얘기도 김문수를 둘러싼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묻혀 버린다. 하긴 김문수가 누구인가. 서슬이 퍼런 유신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해 감옥살이도 마다 않고 올곧게 한 길을 갔다는 대중적 평가를 받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김문수다. 그 김문수가 정치에 뛰어들어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그 시절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돈선거’, ‘조직선거’, ‘부정선거’ 등의 선거판과 정치 틀을 깨기 시작한 것 역시 얼마나 신선했는지 대개의 국민들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반칙과 불의가 통하지 않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원칙주의자’ 김문수가 ‘고교동창’인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과 맞붙어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7년이 넘게 흐른 지금 경기도는 많이도 변했다. 2006년 김문수가 내건 10대 공약
국민의 행복을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그래서 복지 예산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세수 확보가 뒷받침되지 못하니 다른 분야 예산을 감축해야 하는 문제가 뒤따르고 있다. 복지를 확대하면서도 재정 구조를 튼튼히 할 수 있는 두 마리 경제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17세기 조선 사회도 같은 문제에 부딪쳤다. 당시 조정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현물을 백성들로부터 거두어 들였다. 그런데 현물을 각 고을에서 한양까지 수송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옮기는 과정에 변질되거나 파손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조정에서는 한양에 있는 상인들에게 필요 물자를 대신 관청에 납부하게 하고 물건 값을 해당 고을에서 징수하게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상인들이 물건 값을 고을로부터 과다하게 징수하였기에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 이 문제는 16, 17세기 조선 사회 백성에게 큰 부담이었고, 조정의 입장에서도 골칫덩어리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대동법이다. 이전에 가호(家戶)를 단위로 사람에게 부과되는 인두세적 성격의 현물 징수 방법을 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