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그것도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다. 그 화사한 봄날 드디어 ‘수원의 자랑’ 팔달문이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무려 3년여 만이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4개 성문(城門) 중 남문인 팔달문은 조선 정조 18년인 1794년 준공 이래 일제의 침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 온 수원의 산증인이다. 팔달문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이 문을 통과해서 사통팔달로 통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인근에 ‘왕이 만든 시장’인 팔달문시장이 있고, 수원의 역사와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난해 콘크리트로 덮인 지 21년, 복원 공사가 시작된 지 16년 만에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수원천에 이은 팔달문의 중건과 개방이 주는 감동은 괜한 봄날의 열병처럼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들떠 며칠을 보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수원천을 걸어 올라가 팔달문을 마주하자 설렘과 들뜸의 궁금증은 봄날 눈 녹듯이 자연스레 풀렸다. ‘귀환’. 시민의 힘으로 시민 중심의 도시를 만들고…
평택시가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자진철거를 요구하는 계고장을 보냈다고 엊그제 밝혔다. 오는 15일까지 평택공장 정문 맞은편과 송전탑 아래 천막을 치워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평택역 주변 천막농성장을 22일까지 철거하라는 계고장도 이미 발송한 상태라고 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평택시의 처사가 매우 못마땅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업무인 것도 사실이다. 어느 지자체든 도로와 시유지를 장기간 불법 점거하고 있는 상황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 시의 이미지가 흐려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평택시로서는 지역여론이 농성자들에게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의 입장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정부나 공권력의 하수인으로 몰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초 대한문 앞 분향소를 철거한 서울시 중구청도 관할 지자체로서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시민사회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다. 문화재청의 하수인 노릇을 한 정황이 드러나 곤혹을 치렀다. 정부와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 사안에 본의 아니게 말려들어 악역을 맡아야 하는 지자체로서는 억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의 남문인 보물 402호 팔달문 해체·보수공사 준공식이 오늘(3일) 오후 2시부터 팔달문 옹성 내에서 열린다. 2010년 6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진행된 팔달문 해체보수 공사가 끝난 것이다. 조선 정조 18년인 1794년에 준공된 팔달문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이 문을 통과해서 사통팔달로 통한다는 의미의 건축물로,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4대문 중에 화서문과 함께 보물로 지정됐다. 이 팔달문이 해체·보수공사를 마치고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 팔달문 해체·보수공사는 중요무형문화재 전흥수 대목장이 도편수를 맡아 2010년 6월부터 팔달문 문루 1, 2층을 해체 보수하고, 옹성 내·외부 전돌의 백화를 제거한 뒤 부식되지 않도록 경화 처리했다. 팔달문이 해체·보수공사를 하게 된 것은 목부재의 변형으로 인한 원형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목부재의 1차적인 변형 원인은 220여년이라는 세월을 버틴 탓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성문 옆을 지나는 대형버스나 트럭 등의 진동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차량 통행이 이뤄지는 성문에선 석재 균열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팔달문이나 장
史記(사기)에 莊王(장왕)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나(朕)를 간(諫)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는 삼년간 국정도 멀리하고 주색에 빠져 지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한 사람이 죽음을 각오하고 諫言(간언)할 것을 결심하였다. 하지만 直言(직언)보다는 수수께끼로 돌려서 하기로 마음먹고는 전하에게 수수께끼를 내겠다고 아뢨다. 하니 그렇게 하라고 해 ‘저 언덕 높은 곳에 큰 새 한 마리가 있는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인가’ 하니 장왕은 대답하기를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요.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此鳥不飛卽已 一飛沖天 不鳴卽已 一鳴驚人). 3년이 지나고 장왕은 酒色(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는데 3년 동안 주색을 가까이 했던 것은 忠信(충신)과 奸臣(간신)을 가리기 위한 공작이었고, 국정에 임하면서는 많은 충신들을 새로이 등용해 나라를 다스렸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어느 지역 인사를 쓴다느니 쓰겠다느니 미리 말할 것이 아니라 충신과 간신을 가려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믿고 따를 만한 인재를 찾아…
구리시 관내 학교 운동부가 줄고 있다. 학교장들이 말썽 많은 학교 운동부 운영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리중학교 축구부는 해체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재창단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구리여중 핸드볼팀은 올해 초 팀이 해체된 이후, 언제 창단될지 의문이다. 장자중학교는 구리시가 제안한 수영팀 창단을 거절했다. 모두 학교장들이 운동부 창단이나 운영을 꺼린 데 있다. 교장들이 나서 학부모와 교사를 설득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교장들이 나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운동부 운영에 따른 부작용을 의식해 체육선수 육성을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폐단은 비단 구리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근 하남시의 경우 A중학교 축구부 창단을 놓고, 이와 유사한 경우를 겪은 적이 있다. 학교 운동부는 학생들에게 꿈을 키워주는 또 다른 교육이다. 운동에 소질 있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기질을 개발하는 창의적 교육이 될 것이고, 운동을 통해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는 학습창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일선 교육계는 그렇지 못하다. 정년을 앞둔 교장의 거절이나, 팀 창단을 요구하는 관에 대해 요리조리 눈치를 본 교장 등 학교 교육이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에 묻히고 있다. 구리
1991년 처음으로 외국에 갔다. 비행기 역시 처음 타보는 것이었는데, 무모하게도 현지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몇 년 지낼 계획으로 떠난 거였다. 요즘에야 해외여행이 옆 동네 나들이처럼 바뀌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드문 일이었다. 오죽하면 올림픽 직전까지만 해도 당시 유일한 국제공항인 김포공항에서 고기 구워먹으며 일가친척 다 나오는 환송회 하지 말자고 캠페인을 다 했을까! 스무 시간을 날아가 프랑스 지방도시 보르도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삶의 수준, 일상적 삶의 스타일, 기후와 풍토, 문화 등등…. 우리가 글로벌한 네트워크에 연결되기 전의 일이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깨달음이 늘 뒷머리를 때리는 나날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사소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도로 운전에서 우측 진입 차량 우선 원칙이었다. 대륙의 도로체계를 따르는 프랑스 도로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도로 진입 시에 직진 차량은 우측 진입 차량에 양보를 해야 하는 점이 달랐다. 뻥 뚫린 길을 신나게 달리다 말고 오른쪽에서 진입하는 차량에 우선권을 양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배려의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프랑스 운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끼어드는 차량에…
벽화는 주어진 공간을 수정함과 동시에 그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3차원적인 유일한 회화 양식이다. 때문에 회화예술의 다른 양식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취급된다. 벽화는 특징도 있다. 폭넓게 공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유럽에선 시대별 양식도 다르다. 비잔틴시대는 모자이크가 건축 형태의 유기성을 크게 고려했는가 하면, 르네상스시대에는 벽 아닌 다른 공간이 실재 존재하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표현했다. 바로크시대에는 벽이나 천장이 거의 없는 것처럼 근본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벽화는 로마시대에 현저히 증가했다. 로마 전역의 공공 및 개인 건물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벽과 천장에 풍경 등 상징적인 장면들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벽화의 전성시대(?)는 유럽의 르네상스시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거론치 않아도 그 시대에 그려진 벽화는 오늘날에도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니 말이다. 벽화는 17세기 바로크시대를 지나면서 양식이나 기법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침체기를 겪다가 20세기에 장식이라는 표현을 통해 다시 활발하게 나타났다. 거장이라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파리의 유네스코 건물 벽화), 앙리 마티스(프랑스 방스에 있는
몇 해째 집에만 갇혀 살다보니 언제 움이 트고 꽃이 피는지 잘 모르고 지나치고 만다. 긴 겨울이 지루하고 실증이 나 자연 봄을 기다리게 되면서 혹시 새싹이 돋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아직 얼음도 풀리지 않은 땅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지는 않나 해서 괜스레 먼 길을 바라보노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굴 기다리느냐고 묻기도 한다. 때 이른 기다림에 마음을 빼앗기고 정작 봄이 오면 남들로부터 꽃소식을 듣기 일쑤다. 더욱이 올해는 어수선한 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안타깝게도 군수가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어 재선거를 치르게 되었고, 후보자 중에는 현직 도의회 의원들도 중도 사임을 하고 선거에 뛰어 들어 선거판을 키웠다. 자기 후보를 나타내는 옷을 입고 인사를 하고 다니는 것은 물론 마을회관을 방문하기도 하고 행사장을 쫓아다니는 것은 물론이요, 영업 중인 상가에 찾아와 한 표를 호소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날이 가고 회를 더 하면서 주민들은 불편해 했고, 바쁠 때는 여론조사 전화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불경기까지 선거 탓으로 돌리면서 몇몇 당선자를 위한 잔치는 끝이 났다. 날씨도 여느 봄날보다 심
비가 그친 뒤 캠퍼스 곳곳에 각양각색의 봄꽃이 만발했다. 따뜻한 햇살과 싱그러운 봄바람,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한때 대학 캠퍼스는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던 젊음과 낭만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캠퍼스 분위기는 퇴출당하지 않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강요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대학사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혁신의 와중에 있다. 총장을 비롯하여 교수는 교수대로, 교직원은 교직원대로 자기가 몸담고 있는 대학을 경쟁력을 갖춘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목적이 좋다고 해도 합리적 수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대학을 비롯한 우리 사회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건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각 구성원들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각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죽기를 각오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옛사람의 글에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말이 있
지자체들의 경전철 예상수요 부풀리기가 ‘협잡’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정부, 용인, 광명 등 6개 지자체가 경전철을 추진하면서 터무니없는 예측에 근거해 일을 벌여왔다고 한다. 이를 ‘협잡’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상식으론 도저히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예측 모형을 사용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잘못된 예측은 시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장단을 맞춰주는 행위는 범죄가 분명하다. 예컨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맡은 의정부경전철의 경우 하루 7만9천여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이용객은 14%선에 그치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연구기관에서 내놓은 예측치고는 너무도 참담한 결과다. 감사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의정부시와 KDI는 예상승객수를 꿰맞추기 위해 타당하지 않은 자료를 활용, 수요를 31%나 부풀렸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7일 개통한 의정부경전철은 현재 매달 20억원씩 적자를 내면서 운행 중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26일 개통에 들어간 용인경전철도 협약수요가 17만1천명이었다. 하지만 재추정 결과는 5만9천명(2014년 기준)으로 당초 예상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