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중간 참을 하던 봄이 4월이 되면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왔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을 생각하면 봄은 다시 오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긴 터널을 빠져 나오기 전에 밝은 빛이 먼저 마중을 하듯 남녘으로부터 꽃소식이 들려오더니 버들강아지가 눈을 뜨고 개동백은 별이 총총하고 목련도 겹겹이 싸여있던 뽀얀 얼굴을 망설임 없이 보여준다. 집 근처 손바닥만한 땅에서도 제 이름 하나 얻지 못한 들꽃의 귀엣말로 날이 갈수록 봄은 다투어 꽃을 선보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발길을 잡으려한다니. 정원의 꽃은 사람이 가꾸지만 들꽃은 신이 가꾼다는 말처럼 나도 들꽃을 좋아한다. 그 중에도 호젓한 산길에서 만나는 꽃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해 봄 평소 가까이 지내는 분이 상을 당해 장지까지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몇몇이 편편한 자리에서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할미꽃이 피어있었다. 할미꽃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곁에 단출하게 보이는 묘지들이 있었다. 이 넓은 땅에 꽃으로 태어나 살다가기를 할미꽃은 왜 쓸쓸한 무덤가에 피는지를 생각하다 기분이 묘해졌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나 고만고만한 아이들 학교 길이 아니어도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 살아도 좋으련만 게다가 고개도 제대로
이천 산수유마을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고목을 비롯한 1만7천 그루의 산수유가 노란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룬다. 올해는 저온 현상으로 개화시기가 다소 늦어졌다. 제12회 이천백사산수유꽃축제가 8일 이천시 백사면 도립·송말·경사리 일대 산수유마을에서 막이 올랐다. 꽃구경을 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수원의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야트막한 팔달산에도 주말을 맞아 시민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이어졌다. 산중턱에 노란 개나리와 산수유, 진달래는 만개했지만 광교산 중턱 도로변의 벚꽃은 저온 현상으로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했다. 화성행궁 앞에서는 무예시범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화성행궁 옆 신풍초등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필자가 이 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초에는 크게만 느껴지던 은행나무가 초라하기 이를데 없다. 이 학교가 올해로 설립 115년을 맞고 있으니 그 은행나무는 학교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소풍 가는 날이나 운동회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 이 은행나무에 얽힌 사연이 있다. 학교 일하는 사람이 은행마루를 베자 이무기가 나왔다. 이 사람은 이무기를 죽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 소풍날이나 운동회날은 비를…
대한민국은 헌법1조에 민주공화국이라고 떳떳하게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민주(民主)란 말을 빼고 그때그때 사회의 관심되는 말로 대체시키면 재미난 공화국이 된다. 서울의 지역이기주의를 비아냥거릴 때는 서울공화국, 도박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는 도박공화국, 이 것과는 좀 다르지만 요즘 대한민국을 커피공화국으로 부른다. 우리나라 현재 다방을 제외한 매장 수 기준 8개 브랜드 커피전문점이 지난해 말 2만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러니 커피공화국이라고 불릴만하지 않은가…. 여담이지만 며칠 전 휴일 한가한 시간이라 재래시장 장터 국밥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그야말로 옛날 시골다방 분위기가 그리워 들렀다. 커피 2천원, 생과일주스 3천원, 요구르트 2천원…. 참 쌌다. 인구 3만 규모 읍 단위 다방인데 주인보고 장사 잘 되냐고 물어 봤더니 “아휴! 말 마세요. 다방이 17개랍니다” 다방(茶房)공화국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딱딱한 글, 이야기, 모두 싫어하는 편이라…. 아마 1950년대쯤 군 소재지 마을에 다방이 문을 열었단다. 본시 지방에서 유지(有志)로 행세하자면 모름지기 새로운 문물을 남보다 일찍 경험해야 하는 법!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는데 모두 안
지난 3월 30일 인천시는 지자체 차원에서 국내 첫 ‘노인들의 공개적인 만남의 장 <합독>’행사를 가졌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 중 ‘혼자 사는 노인들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의 ‘합독’에 근거해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계신 홀로된 노인들이 새로운 만남과 인연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 이날 행사에는 100명의 신청자가 모두 참석해 이중 50명, 25쌍이 커플로 탄생했다. 참석자 모두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많은 연구와 정책, 제도가 나오고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가 책임져야할 피부양자’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정작 노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면적 욕구, 특히 이성교제나 성 문제 등은 관심 밖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몇 살부터 ‘늙었다’라고 명확히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건강상태도 좋아지고 의식도 바뀌었으며, 욕구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감정’이라는 부분은 몇 세를 기준으로 늙었
터무니 없는 문자메시지가 하루에 적게는 서너건에서 많게는 십수건에 달한다. 어떻게 내 휴대전화 정보를 알아냈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면 아찔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개인정보가 개인의사와는 관계없이 사회전반에 널리 퍼져 흘러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개인정보가 뭉터기로 유출되는 사례도 종종 보아왔다. 현대캐피탈 수십만 고객의 정보가 해킹당했다는 소식이다. 현재까지 정보가 유출된 고객 수는 42만명으로 전체 고객 180만명의 23% 수준이라고 한다. 이들 고객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번호 등이 유출됐다. 또 고객 1만3천명은 신용등급과 비밀번호 등 금융거래에 사용되는 정보까지 유출됐다고 한다. 고객들이 유출된 자신의 신용정보가 범죄에 이용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져서야 되겠는가. 현대캐피탈은 지난 7일 수억원을 요구하는 해커의 협박 메일을 받고서야 해킹 사실을 알아챘다.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경찰은 아직 뚜렷한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2월부터 인지가 어려울 정도로 고객정보가 조금씩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현대캐피탈 관계자의 전언이다. 해커의 지능적인 수법에 당한 측면도 있지만 보안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최근 신산(辛酸)한 모습으로 늦은 밤까지 손수레를 끌면서 파지를 줍고 다니는 할머니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작은 손수레를 가득 채워야 2~3천원 밖에 되지 않는 벌이인데도 요즘에는 그나마 경쟁이 더 심해져서 수입이 줄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생계가 정말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더욱 딱한 경우는 서류상에 부모를 봉양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 자식이 있는 경우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돼 있다. 이른바 ‘파지할머니’들은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녀나 부양가족이 있더라도 노후생활이 힘든 노인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도내 노인인구가 전국 최초로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을 위한 노후대책 마련은 지금쯤 정착단계로 접어들어 있어야 함에도 정부의 실버대책은 아직도 근시적인 공공근로사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형편에서 경기도가 지난해 수립한 ‘건강 100세 프로젝트’는 눈여겨볼 만한 계획이다. 도는 지금까지 해왔던 공공형 노인일자리뿐 아니라 민간분야 일자리도 늘려나가겠다는 복안이다. 도가 발행하는
구제역 파동과 일본 원전의 방사선 누출 등을 겪으면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그 여느 때 보다 뜨겁다. 제9회 ‘친환경 유기농 무역박람회 2010’ 자료에 따르면, 친환경 유기농 식품 소비량이 전년대비 45% 증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구매 선호도는 ‘가격’ 보다는 ‘보다 안전한’ 식품으로 변화하고 있다. 동물 식품의 안전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바로 ‘사료’이다. 따라서 사료의 원료가 무엇인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이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축산농가는 배합사료를 사용하고 있다. 배합사료는 말 그대로 각종 영양원을 적정 비율로 배합해 만든 사료이다. 배합사료의 구성성분에 따른 배합비율은 생산업체의 기밀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단백질과 지방의 함량이 높을수록 고급사료로 분류한다. 단백질의 경우 통상적으로 25~30%이상이 들어있으면 고단백 사료라 할 수 있겠다. 지방의 경우 가축의 종류에 따라 지방 요구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젖소 사료에는 전체 사료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4~8%로 낮은 편에 속한다. 실질적으로 지방은 사료에 들어있는 총 지방 함량보다 어떤 지방산이 얼마나…
북향, 문풍지 빗장을 열고 나를 비우러 가는 봄 날. 묵직한 빨랫감을 이고 봄볕을 따라나선 동네어귀 빨래터도 이리 설레었을까. 매주 금요일, 다월산방을 찾아가는 날은 늘 그랬다. 가슴 한 켠이 싸-하게, 작정이나 한 듯 부풀어 오르는 기대와 설렘이 중첩되는 느낌. 안성 하정다회에 있는 다실(茶室), 동·서·남 삼면으로 유리문을 만들어 낮엔 햇살을 불러 앉히고 밤이면 달님 더불어 차향을 즐긴다 하여 다월산방이라 부른다. 도래도래 내려앉은 햇살이 수반(水盤)위 산수유 노란 꽃잎을 파고들고 수줍어 비껴 앉은 다구들이 친정에 온 듯 푸근한 그곳엔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젊음을 충전해주는 스승,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시는 여든일곱의 마음이 젊은 스승님이 계시다. “이 나이에 뭘 또 배우니?” “이 나이에 그게 말이나 되니?” 갓 마흔 넘어서부터 ‘이 나이, 이 나이’ 타령을 하는 친구를 볼 때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얘기를 하면서도 문득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의 기준이 무엇일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마음 속 생각에 따라 더디게 먹기도 하고 급하게 먹어 체하기도 하는 그 나이라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가늠하는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
최근 상생을 위한 대·중소기업 간의 소통이 경제계에 화두가 되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중소기업 지원을 맡고 있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소속 기관 간의 소통은 되레 역행하고 있다. 경기도 경제계에는 ‘경기중소기업지원기관장 협의회’(경중회)라는 정기모임이 있다. 중소기업지원기관장 간 협력 모임은 경중회가 유일하다. 경중회는 도내 중소기업 지원서비스를 단일화시켜 지원기관 간 이견차를 좁히고 효율적인 네트워크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협의회로 지난 2009년 경기지방중소기업청의 주도로 발족됐다. 한국은행, 노동청,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등 도내에서 활동하는 정부 소속 기관을 비롯해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중기센터), 경기신용보증재단(경기신보) 등 도 산하 기관과 민간 경제단체 등 총 26개 기관장이 매월 1회 만남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모임이 결성된 이후 단 한차례도 참석하지 않은 특정 기관장들이 있다.이들은 홍기화 경기중기센터장과 박해진 경기신보 이사장, 경기도경제투자실장 등으로 간간이 대리인만이 모임에 참석, 타 기관장들과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이 모두 도와 도 산하기관의 핵심 인물이라는…
앤디 라일리의 카툰집 ‘자살토끼’는 포식자에게 먹히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한 토끼를 다루고 있다. 토스터 안에 들어가 있기, 할복하는 일본 병사 등 뒤에 붙어 함께 칼에 찔리기, 부메랑에 수류탄 묶어 던지기 등등. 무표정한 토끼들은 온갖 기발한 방법으로 죽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냉소적이고 뒤틀린 블랙코미디를 보여준다. 죽기 살기로 자살하려는 토끼를 보면 ‘저렇게 죽으려고 애를 쓰느니, 차라리 그 힘으로 살고 말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수업’이란 부제가 붙은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죽음을 앞둔 노교수와 그의 제자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1997년에 처음 출간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에서 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리 교수는 차분히 죽음을 관조하고 지나간 삶을 되새긴다. 저자는 대학시절 은사인 모리 교수에게 “20대 젊은 나이로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을 한다. “여기까지 씩씩하게 왔는데 왜 다시 시작해야 하나. 이제 50m만 더 올라가면 산의 정상인데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네.” 누구나 한 번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