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산과 호수에 담긴 구름이 조화를 이루는 아침 시간이 있습니다. 호수 수면 위 연잎은 표면적 무늬가 됩니다. 그것은 호수 내면에 감춰진 흙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갈대는 지난 해 그 모습보다 낮아지고 빛바랜 그대로 서 있는데 그 자리에 푸른 빛 여린 대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세대교체보다 생명교체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호수 중심 낮은 말뚝에는 해오라기 한 마리가 제 쉴 곳 일번지나 되는 듯, 위에서 내리긋는 획 같은 형상으로 졸고 있습니다. 그 모양이 물속으로 스미어 물 위아래 풍경이 하나가 됩니다. 호수의 풍경이 정지된 영상처럼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순간 쇠물닭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반원을 그리며 지나갑니다. 바람에 밀리는 물결은 솟아오른 아침 빛 머금어 남에서 북쪽으로 물무늬 지으며 번져갑니다. 꽃 진 자리/ 잎 솟고/ 아기 녹색(幼錄)/ 꽃보다 고운데// 비에 씻긴 철쭉/ 맑음이어라/ 하늘 길 찾아가는/ 선한 눈망울 어느 해 봄에 써 둔 시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창을 넘어온 햇살이 내 책상에 와 머물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이
사람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삶과 죽음의 의의에 관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영혼은 배우지 않는다. 다만 원래 알고 있던 것을 떠올림 따름이다. (다우드 엘) 현자는 언제나 만물 가운데서 도움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주어진 재능의 본질은 모든 사물 가운데서 선을 이끌어 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존 러스킨) 정치적 승리, 수입의 증가, 너희 가운데의 병자의 회복, 멀리 갔던 벗의 귀가 같은 행운은 너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너희에게 드디어 좋은 날이 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너희 자신 외에 너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머슨) 인생의 사명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바깥 세계에서 찾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너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너희 자신의 마음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싹의 상태로 있으니, 너희는 선한 생활로 그 해답의 싹을 틔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예지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류시 말로리) 벗을 찾아 헤매는 자는 가련하다. 왜냐하면 참으로 충실한 벗은 자신뿐이며, 밖에서 벗을 찾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참으로 충실한 벗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로) 누가 가르쳐준
17개시도 교육감선거가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로 치러질 전망이다. 교육감선거는 시도지사선거와 똑같은 광역선거인데도 대중적 인지도가 없는 교육계인사들이 소속정당도 없이 나오는지라 일반유권자 입장에선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가 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매우 높다. 중앙선관위와 지역선관위가 특별한 책임감으로 달려들어서 교육감선거가 깜깜이 선거가 안 되도록 적극행정을 펼쳐야만 하는 이유다. 중앙선관위의 지침에 따라 지역선관위와 지역 언론이 합심해서 교육감후보들의 언론노출기회와 정책토론기회를 최대치로 올려놓는다면 교육감선거가 깜깜이 선거가 될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강원, 경기, 전북, 광주의 현역교육감은 3선을 채웠거나 고령을 이유로 출마하지 않는다. 이런 ‘무주공산’ 지역에선 후보들 간에는 몹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게 마련이지만 지역 언론, 특히 지역TV가 돕지 않는 이상 일반유권자들은 무지의 장막 안에 갇히지 않을 수 없다. 현직교육감이 출마하는 나머지 13개 시도지역의 경우에는 현직프리미엄 문제가 과도하게 발생한다. 현직교육감과 달리 도전후보들은 인지도 차이 때문에 고전을 면할 수 없다. 도전후보에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며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칼럼 ‘심우도’를 시작할 때 쓴 글 한 대목이다. ‘... 손 모양 계(彐) 아래 만들 공(工)과 입 구(口)다. 다시 쓰면 左(좌)와 右(우)다. 아래는 손목에 점찍은 마디 촌(寸)이다. 어둠 속 안개바다를 좌우로 손 내밀어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심우도’는 만해(卍海) 한용운 선생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다. 연애편지 같은 시(詩)도 남겨 청춘남녀에게도 인기 높은 스님 만해, 뜻은 깊되 말은 쉽다. 큰 스승이다. 왜놈들 제국주의 아래서 치욕의 삶을 살았던 그의 집 이름이 심우장(尋牛莊)이다. 남향(南向) 피해 총독부와 등을 졌다. 절집 빙 둘러 바람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 그림과 뜻 같으리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에서 비롯해 끝내 아지랑이로 스러지는 모든 사물(一切 일체)을 담은 집이면 그건 우주다. 비유의 세계다. 아지랑이 같은 이 비유는 그 바탕이 그림이다. ‘안개바다를 좌우로 손 내밀어 한걸음씩 나아가는 발걸음’ 묘사는 찾을 심(尋)의 뜻을 추상화한 그림이다. 당신은 ‘찾는다’는 뜻을 어떻게 그릴까? 안개 속 헤매봤다면, 저 표현력을 실감할 수 있을 터. 글(文 문)을 깨친다는 것은 (文 속의) 그림을 본다는 뜻이라네. 뜻글자인 표의
미국인 평론가 달시 파켓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평론 일과 저널리스트 일, 무엇보다 한국영화 자막 번역가 일을 해 오고 있다. 그는 솔직히 한국말보다는 한글을 아주 정교하게 쓰고 사용하는 미국인이다. 한국말은 약간 어눌한데(30년을 살았음에도!) 글을 쓰는 데 있어 마침표 하나, 따옴표 하나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완벽하다. 그가 작업한 ‘기생충’ 영어 번역은 감독 봉준호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서는 데까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그는 보스턴에서 태어났으며 국적은 미국으로 한국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서울 강북 어디메쯤에서 산다. 그 역시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놓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한국 아버지, 여느 부모와 다를 게 없다. 나는 그에게 늘, 너의 아이들을 하루라도 빨리(근데 이미 늦었다.) 부모가 살고 있는 보스턴 외곽으로 보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한국에서의 입시가 다소 너무 강고(强固)하다고 생각하는 터라 미국인인 그마저 그걸 고스란히 떠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걸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 특유의 특혜이자 특권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를 10년 넘게
삶은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접근이다. 따라서 삶은 죽음이 더 이상 어둠으로 생각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있고, 날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고 있다.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운명이 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과연 서로 때리고 괴롭히고 죽이고 해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흉악한 강도들도 이런 상태에서는 서로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파스칼) 우리는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이내 죽어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이 매일 조금씩 소모되고 쇠약해지는 것을 알고, 언젠가 결국 죽어버리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이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한 채 끝난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 대해 꽃이 시들거나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볼 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그
빛의 벙커에서는 자신의 경계가 흐려진다. 캔버스를 벗어난 그림이 벽과 바닥을 넘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까지 물들이기 때문이다. 온 공간을 채운 예술 속에선 사람도 예술이 된다.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본질이다. 미디어아트란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사진, 영화, TV,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게 파급효과가 큰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미술에 적용시킨 예술을 의미한다. 미디어아트는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에 직접 호소하며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처음으로 한국에 정착한 곳은 제주였다. 넓은 공간과 장기간의 전시, 꾸준히 찾아올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늘 관광객이 많은 제주가 적합했다. 한국 안에서 가장 멀리 떠나온 사람들은 궂은 날씨에도 찾아갈 만한 실내관광지를 원했고, 독특하고 신선한 체험을 바랐으며, 조건만 맞는다면 제주 어느 곳이든 찾아가려 했다. 2018년, 국가 기간 통신시설이었던 9백 평 면적의 철근 콘크리트 건축 구조물에 빛과 색이 들어섰다. 자연 공기 순환방식을 이용해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는 비밀벙커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미디어아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난 9일 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새 대통령 취임식 참석한 후 KTX 편으로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으로 내려갔다. 이후 문 전 대통령은 농사도 짓고 반려견도 기르고, 이웃 주민들과 막걸리도 나누면서 평범하게 지낼 계획이다. 문 전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다. 재임 중에 한국경제가 회복되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모범적으로 대응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류 콘텐츠는 세계를 제패했다. 이례적으로 퇴임하는 문 전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하는 윤석열 씨 보다 더 높았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은 문 전 대통령의 성과를 애써 무시한다. 오히려 ‘졸렬한 퇴임’이니 ‘줄소송예고’니 하는 악담 기사만 내보내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라고 말 한 바 있다. 언론 브리핑 이야기도 했지만 취임사의 핵심은 국민과 직접 소통을 늘리겠다는 점이었다
완전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과 다투지 않으며, 그 현실이 그대로 정의이고 행복이며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진보도 없고 생명도 없다. (아미엘) 개인의 경우나 집단의 경우나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완전성을 향한 추진력은 그 개인과 집단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관념이다. (마르티노) “하늘에 계시는 ᄒᆞᆫ님처럼 너희도 완전하라.” 신의 완전성, 즉 모든 사람의 최고선에 대한 이념이야말로 전 인류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이다.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저 언덕, 저 곶, 저 해안을 따라 헤엄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항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득한 별과 나침반뿐이다. 아무리 타락한 사람이라도 항상 자신이 지향해야 하는 완전성만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은 힘이다. 말이 아니다. 생각이 아니다. 사상이 아니다. 지식이 아니다. 이론도 아니고 학설도 아니다. 술(術)도 아니요 방편도 아니다. 신앙은 힘이다. 살리는 힘이다. 말로써 영혼을 구원하였다는 일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새 3개월에 접어들었다. 참혹한 전쟁의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경학 쟁투는 전쟁 못지않게 치열하다. 유럽은 신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개통을 유보하는 외에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입을 축소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를 스위프트 국제금융결제시스템에서 축출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는 석유·가스 거래 대금 결제 방식을 루블화로 제한함으로써 루블화의 가치를 방어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유가 상승으로 경쟁력을 회복한 셰일 석유·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등 에너지 공급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 산 석유·가스를 싼 가격에 수입하는 이득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를 위안화 결제 방식으로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쿼드 국가 중 하나인 인도의 이런 이중 행동을 미국은 쳐다 보고만 있다. 전통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 및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의 석유 거래 결제 통화로서 위안화 도입을 저울질하고, 중국은 숙원 사업인 페트로 위안화 시대의 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