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차라리 슬픔이었다. "언제 처음 사랑에 빠졌어요?“ 내 질문에 그는 머뭇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가 그렁해졌다. 그날 수업 주제는 첫사랑이었다. 20대 초반, 나는 장애인 야학 교사였다. 어떤 성인 장애인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그는 자기 이름 석 자만 쓸 수 있었다. 수업에 사용할 한글 교재를 찾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알록달록한 그림과 스티커, 큼직한 활자는 스무여섯 살 청년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유아용 교재로 한글을 배우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고심 끝에 직접 교과서를 만들기로 했다. 주제를 정해 대화를 나누며 녹음했다. 녹취를 풀어 문법에 맞게 글을 다듬고 이를 모아 교재로 엮어냈다. 그의 머리와 가슴 언저리에 머물던 정직한 시간 속에서 곰삭은 어휘가 종이 위에 펄떡거렸다. 경험과 생각이 자신의 언어로 정리된 교과서는 효과적이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한글을 익혔다. 뇌성마비 장애인이라 그의 발음을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선명하고 또렷하게 들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겨우 목구멍을 열어 내놓은 건 어린 시
온유한 사람은 자아를 떠나 신과 하나가 된다. 천하에 물보다 약한 것은 없지만,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길 수는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 천하에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노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억지로 저항하는 자는 상황 쪽에서도 그에게 저항하고, 거기에 양보하는 자는 상황도 역시 그에게 양보한다. 만약 네가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거기에 저항하지 말고 물 흐르듯 거기에 맡기는 것이 좋다. 상황을 거스르는 자는 상황의 노예가 되지만, 거기에 순응하는 자는 그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탈무드) 현자는 선을 행하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며,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결코 서운해하지 않는다. 사디가 말했다. “나는 파르티아 지방에서 호랑이를 타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사디여, 놀라지 말라. 다만 너의 머리를 신의 멍에에서 빼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그 어떤 것도 멍에에서 너의 머리를 빼지 못할 것이다.’라고”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고자 할 때는 매우 강하지만,…
노동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뜻이다. 노동자를 구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흔히 말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고용형태에 따른 구분이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즉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계약이면 정규직이다. 반대로 비정규직은 기간이 정해진, 그 기간이 끝나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노동자다. 단시간 근로자라는 개념도 있다. 주위 다른 노동자에 비해 근무시간이 짧은 이들을 뜻한다. 그런데 이렇게 근로시간이 짧은 노동자 중 1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을 별도로 구분하여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부른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이, 평균 근로시간 노동자에 비해 단시간 노동자가 그리고 다시 초단시간 노동자가 더욱 열악한 경제 상황에 놓여 있고는 한다. 한 사업장에서 1년 이상 재직한 노동자는 일을 그만둘 때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국가는 노동자의 퇴직금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퇴직금 지급을 강제하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에게 퇴직은 곧 먹고사는 것에 대한 위험이다. 그렇기에 퇴직금이라도 받아야 이러한 위험에서 조금은 그리고 잠시는 안전할 수 있다. 그만큼 퇴직금은 노동
생명은 죽음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모습을 바꿀 뿐이다. 하루의 고뇌는 그날 하루로 족하다. 자신의 삶을 의혹과 공포 속에서 낭비하지 말라. 현재의 의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 앞으로의 몇 시간 또는 몇 세기를 위한 최선의 준비임을 믿고, 열심히 자신의 일에 종사하라. 지금의 우리에게는 미래는 언제나 환상처럼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삶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이다. 문제는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귀한 영혼의 행위처럼 영혼으로 하여금 시간을 초월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삶을 살고 있을 때 시간 같은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예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가 끼친 영향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을 초월하게 하여, 그들 자신을 영원한 존재로 느끼게 했다. (에머슨) 인간이 살고 있는 집은 부서지고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이 자신을 위해 깨끗한 사상과 선한 행위로 지은 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며, 그런 집에 사는 자를 해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류시 말로리) 내세를 믿을 수는 없지만, 현재의 삶이 불멸이라는 것은 믿어도 좋을 뿐만 아니라, 똑똑히 확인할 수도 있다. 불멸에…
조중동에스와 종편 등 ‘적폐언론’의 무기는 불법, 탈법으로 장악한 기득권과 선택적 ‘담합저널리즘’이다. 이들의 특권을 통한 여론시장 개입과 왜곡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최근 이들 적폐언론의 부당한 기득권과 여론시장에서의 횡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몇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 서울행정법원은 11월 19일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셜록 등 ‘독립언론’들이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서울고등검찰청)을 상대로 제기한 ‘출입증발급 등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거부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법조기자단’을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법원은 “신청이 거부됨에 따라 침해되거나 제한되는 기본권 내지 법률상 이익은 그 소속 기자들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언론기관 고유의 것도 포함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적시함으로써 배타적 기자단 운영으로 특정 언론기관이 배제될 경우, 그 언론과 관련한 국민의 보편적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동안 법조기자단 카르텔은 검찰과 언론 유착과 ‘부당거래’의 핵심 고리였다. 감시대상과 감시자의 담합결과 언론사는 기소되지 않는 특권집단이 되었고 검찰비리는 언론보도의 성역이 되었
한의원 대기실이 시끄럽다. 알고 보니 한 환자가 이사회 회의하다 말고 너무 아파왔다고 하며 빨리 치료받고 가야 한다며 간호사를 재촉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난 모양이었다. 처음 내원하면 하는 잠깐의 예진 시간에도 마음이 쫓기는 말쑥한 양복차림의 그는 붉은 얼굴과 크고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급하게 들어온 진료실에서도 목이 아파 움직일 수 없는데 중간에 나온 이사회 회의 걱정이 먼저이다. 목과 어깨 근육이 긴장으로 전체적으로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고혈압으로 혈압약도 복용 중이다. 그녀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마감에 항상 쫓긴다. 예민한 성격인데 완벽하게 일하길 원하고 또 그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지속되니 몸이 영향을 받는다. 혼자서 일하다 보니 입맛이 없을 때도 있고 귀찮기도 해서 식사시간이 들쭉날쭉이다. 입맛도 없고 해서 밀가루와 간식 위주의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대충대충 때우기 일쑤다. 언택트 시기에는 더 심해졌다. 이러한 생활이 누적이 되니 소화도 잘 안되고 야간에 잠을 자주 깨고 소변을 자주 보러 간다. 불안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잘 놀란다. 한의원에서 만나는 풍경들이다. 바쁜 일상은 호흡조차 여유롭지 않다., 오징어게임속의…
‘개고기 식용’ 관련 논란을 생각한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구라파와 미국, 특히 불란서에서 고급요리로 치는 푸아그라(foie gras)다. 유럽과 유에스에이(U.S.A. 아메리카), 프랑스를 동아시아 방식으로 부른 것은 ‘문화의 차이’를 보이고자 함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의 동아시아의 용(龍)과 동굴 속 공주를 구하는 기사(騎士)의 창에 찔려 피 흘리는 서구(西歐)의 드래곤(dragon)은 전혀 다른 상상의 동물이다. 상당수가 龍의 번역어가 ‘드래곤’이라고 착각하는 마당이다. 개고기 문제의 (문화적) 발생 지점으로 읽는다. 나는 푸아그라를 즐기는 저 사람들을, 속으로는 못마땅하지만, 비난하지 않는다. 현지에서 먹어봤다. 맛있었다. 그 후 먹지 않았다. 그 뜻은 ‘기름진 간’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유서 깊은 요리다. 한국의 일부 식품점, 서양요리점에서 만날 수도 있다. 인간이 제 입맛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학대할 수 있는가? 깔때기를 거위 오리의 목에 넣고 옥수수 같은 곡물을 밀어 넣는다. 간이 0.5~1Kg까지 커지고(붓고) 맛이 좋아진단다. 세계 곳곳에는 공감 못할 음식이 있다. 나는 ‘그것을 먹지 말라.’ 윽박지르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왕년의…
포퓰리즘, 그 진실은? 정치에서 “포퓰리즘(populism)”은 비하(卑下)의 언어다. 이 말은 가치나 원칙없이 대중들의 욕망에 영합해서 표를 모으는 행위를 지탄할 때 등장한다. 그렇게 인기에만 기대는 정치인은 “포퓰리스트(populist)”라는 공격을 받는다. 사실이 아니라도 정적(政敵)을 모함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대마다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가 달라지긴 하나, 사실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이다. 이 단어는 “피플(people)”에서 나온 것이자 미국의 내전(Civil War)인 남북전쟁 당시인 1863년 에이브라함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연설로 더욱 분명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민주정치의 주체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데 ‘people’은 ‘국민(the nation)’이 아니라 ‘인민(人民)’이다. 링컨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와 일치한다. 이 인민을 앞세우는 사상과 태도가 “포퓰리즘”이다. 그 정확한 번역은 “인민주의”가 되는데
난데없이 떠오른 음률. 그런데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하루 종일 기억의 재를 뒤지다 아하! 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영화 속 음악이었다.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 1990)’. 데보라 윙거가 나왔을 거야. 사막이 무대였어. 줄거리가 어떻게 됐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일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장엄한 주제곡, 처연한 느낌의 아프리카 음악들의 가슴을 적신 기억은 선연하다. 그 기억이 오래전 영화를 호출해 다시 보게 만든다. 영화 ‘마지막 사랑’의 무대는 아프리카 모로코다. 부부관계 권태와 작품 창작의 벽을 만나 여행길에 오른 작곡가, 작가 부부 포터와 키트. 그들 곁에는 부유하고 잘생긴 동행자가 있어 삼각관계를 예상하게 했는데 돌연 동행자는 다른 길로 새 버린다. 일단 러브 스토리는 아니라는 이야기. 영화 첫 장면부터 나와 심장을 강타하더니 중간중간 배경에 흘러 감정을 뒤흔들던 아프리카 토속 목소리들이 있었다. 가장 강렬했던 목소리에 대해 영화 속에서도 대화가 나온다. 부부에게 비극의 광풍이…
84년 즈음 한 친구가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책 제목이 ‘황강에서 북악까지’였는데 표지의 사람 얼굴이 낯익었다. 9시를 알리는 땡소리만 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를 시작했던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전대갈’이라 부르며 이를 갈았던 우리는 지피지기라며 책을 펼쳤지만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사과서리를 하다가 들켜서 거짓말을 했는데 이때 부끄러움 때문에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아버지가 악질순사를 강에 처박고 만주로 도망갔다면서(실상은 노름빛 때문이라는데..) ‘행패를 부리는 순사 놈을 보는 소년 두환의 주먹이 불끈’ 운운하며 시작하는데 80년대 피끓는 청춘들이 완독하기에는 보통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작가 천금성은 당시 권력핵심이자 서울대 농대 2년 선배인 허문도의 권유로 전기를 창작(?)했다. 문단의 평가는 혹독했으나 작가는 글을 판 댜가로 문화방송 편집위원이라는 달콤한 자리까지 거쳤다. 책 제목대로 경남 합천 황강변에서 태어나 서울 북악산까지 탱크를 몰고 접수했던 전두환이 죽었다. 그는 국민들을 자기가 통솔하던 군대의 졸로 여겼다. 오월 광주를 비롯해 수많은 청춘들이 그의 군홧발 아래 피어보지도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