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이 없는 인천기업들은 힘들다. 인천을 거점으로 하여 인천기업들의 자금수요에 정합적인 자금공급을 해주고, 또 인천에서 발생하는 금융배제(Financial Exclusion)를 완화하고, 또 지역경제의 경기변동과는 무관한 안정적인 관계지향적 대출상품을 공급해주는 ‘인천의 은행’이 없기에 인천기업들의 경영이 안정될 리 없다는 의미이다. 인천의 예금은행여신/지역밀착형여신의 수치를 보면 1997년 1.8에서 2012년에는 4.4로 크게 증가하였고, 또 인천 전체 여신 중 예금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0%에서 81.3%로 급증한 반면에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32.9%에서 18.7%로 크게 줄었다. 이는 비용이 많이 드는 기업금융보다는 이른바 소비자금융으로 불리는 수익 추구를 위한 대출을 중시하는 예금은행의 비중이 커져 인천기업들의 자금난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다. 이같이 인천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의 지역 내 여신 비중이 크게 줄어듦과 동시에 인천에 설치되어 있는 일반 시중은행의 총대출에서 차지하는 인천 소재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의 비중 역시 줄어들고 있다. 그 비중은 1996년 약…
史記(사기)에 보면 趙(조)나라 왕이 오로지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만 옳다고 여기고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趙括(조괄)이란 장군을 대장으로 승진시켜 전쟁터에 보냈다.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법만 외울 줄 아는 젊은 장군을 보낸 결과는 아주 참담하고 처참했다. 조괄의 아버지는 아주 훌륭한 장군이었는데 그가 부인에게 남긴 자식 조괄에 대한 유언이다. “전쟁이란 생사가 걸려 있어 이론과 방법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을 이론적으로만 펼치는 것은 장수가 취할 태도가 아니니 앞으로 괄이 장수가 된다면 조나라는 큰 변고를 당할 위험이 있다”며 괄을 장수로 삼지 못하게 해달라는 부탁의 내용이었다. 조나라 대신이었던 藺相如(인상여)라는 사람이 남긴 말을 보자. “왕께서 그 이름만 믿고 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는 것은 마치 기둥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괄은 단지 그 아버지가 준 병법만을 읽었을 뿐 상황에 따라서 변통할 줄은 모릅니다.”(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 能讀 其不書傳 不知合變也) 이 전쟁 때 진나라의 작전에 빠져들어 50만 대군을 죽게 한 중국 역사상 최악의 참
겨울이 시작된 지 며칠 전에 교육훈련 중 교통사고로 소방공무원이 순직하는 가슴 아픈 사고가 일어났다. 앞으로 갑자기 내릴 폭설과 뒤따른 혹한으로 인해 빙판길 자동차 사고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다. 작년에 도로교통공단이 발표한 최근 5년간 동절기(12월~1월)에 발생한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총 17만3천여건의 교통사고로 사망자 4천792명, 부상자 27만3천910명이 발생, 하루 평균 560건의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884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지역에는 과거에 비해 도로안전시설이 보강되고 도로포장 및 제설작업이 잘 돼 있음에도 겨울철 자동차 접촉사고와 이로 인한 인명피해가 속출한다. 또 이면도로나 비탈길 및 동네 골목길에 넘어져서 골절사고나 찰과상을 입는 사고를 당하는 노인 분들이나 어린이들이 많이 발생한다. 이런 재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눈이 많이 올 때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다. 부득이한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 자동차로 외출을 해야 한다면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하고 눈길과 빙판길이 평소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 대설 관련 소방방재청에서 발표한 외출 시 국민행동요령은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
속수무책 /조항록 도마 위에서 안간힘을 쓰는 광어를 어찌할까 이를테면 연민 때문인데 납작 엎드려 살아온 것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한쪽만 보고 살아 다른 한쪽을 외면한 것이 정말 죄는 아니지 않은가 저 살 속에 저며 있는 바다의 노래에 귀 기울이면 가시들의 일상이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마지막 헤엄은 눈물 속을 헤매는 법이고 이제 속속들이 칼날이 닿으면 한 접시의 순결한 고백만 남을 것 모든 속수무책의 생애에 대해 오직 천사 같은 몸부림에 대해 -시와시 2013 가을 제16호/푸른사상 모든 약자(서민)들은 ‘도마 위의 광어’ 같은 존재다. 강자들, 권력자들, 혹은 갑들의 칼날에 베이지 않으려 안간힘 쓰면서도 처절하게 당하면서 산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못 배웠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차별, 착취당하면서 속수무책 살아간다. 하소연 할 곳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이 최소한의 행복할 권리마저 빼앗긴다. 밤낮 구별 없이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발버둥 쳐도 환경은 결코 좋아지지 않는다. 이런 불합리는 혁명이 아닌 한 시스템의 변화로밖엔 해소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정부(상부구조)의 마인드가 어떠하냐에 달려있다.…
“올해부터 내 달력엔 13월을 넣기로 한다/한 해를 12월로 마감하기 허전해서다/단 하루 마지막 달 할일이 참 많을 것 같다/첫사랑 산골 소녀에게 엽서를 보내고/눈 내리는 주막으로 친구를 불러내고/헐벗은 세월을 견딘 아내를 보듬어주고/또 미처 생각 못한 일 없나 챙겨가며/한 해를 그렇게 마무리 해보고 싶다/….” 시조시인 박시교의 ‘13월’이라는 시다. 시 구절에 표현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어느새 2013년 한 해가 저문다. 12월 달력도 이미 스무날 가까이 지워졌다. 이제 남은 날이라야 고작 열흘 남짓이다. 빠르다 못해 시위를 떠난 살 같다는 표현이 더욱 실감난다. 한해의 끝이 다가올수록 공연히 마음만 바빠진다.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이 큰 탓일 게다. 더불어 연초에 기원했던 소망을 되돌아본다. 희망을 화두로 넉넉한 삶을 바랐다. 또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랑을 키워가며 여유를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난 것 같다. 오히려 삶에 짓눌려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바람같이 지나고 말았다. 세월은 자기 나이만큼 속도감을 느낀다고 했던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나
벌써 2013년이 저물어 간다. 늘 새해가 시작되면 꼭 잊지 말고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해가 가면 후회한다. 올해는 개인적인 소망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해마다 내가 편안히 소망을 말할 수 있게 해준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마음에 새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북한의 적대행위 속에서 우리는 늘 안보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6·25전쟁과 유엔군 참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전협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정전협정은 1953년 7월27일 국제연합군과 북한군, 중공인민지원군 사이에 맺은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수호와 평화,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협정이다. 정전협정 체결의 의미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휴전선/NLL을 설치하여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게 됐고, 유엔군 사령부 및 중립국 감독위원회 유지로 정전협정 준수를 감시하게 했다. 또한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게 됐다. 주요 평화보장조치로는 주한미군 계속 주둔, 미증원 전력 전개 등 한·미연합훈련 정례화, 생활수
꼭두는 정수리나 꼭대기, 또는 으뜸을 나타내는 우리말이다.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 남사당패(男寺黨牌)에서는 우두머리를 ‘꼭두쇠’라 일컫는다. 그런데 그 어원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하다. 중국어는 ‘곽독(郭禿)’, 몽골어는 ‘고독고친’, 집시어는 ‘쿨리’, 인도어는 ‘쿠쿨라’ 등과 연관된다. 그래서 중국기원설과 서역기원설, 지중해기원설까지 ‘꼭두’는 지구상 대부분에 퍼져있다. 결국 언어의 기원은 한 뿌리에서 나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가지를 만들어 뻗어나간 것이 틀림없다. 굳이 박용숙 교수의 ‘지중해문명과 단군조선’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가 한 뿌리에서 나왔으니 말꼴도 그 뿌리를 같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언어란 신통방통한 것이라 단어와 단어가 결합하면 원(原) 단어와 전혀 반대의 뜻으로 읽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고봉을 뜻하는 꼭두 역시 그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꼭두에 ‘각시’가 붙으면 최고의 존엄으로 통하던 ‘꼭두’의 스타일이 영 구겨진다. 꼭두각시.…
지난 12일, 북한이 남북경협을 내세우며 개성공단을 기획했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선로동당 행정부장을 국가전복음모죄로 공개 사형에 처했다. 이 소식을 보도하면서, 북한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 패당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해 북한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려고 악랄하게 책동해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장성택사건 이후 향후 남북관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의 장성택 사건 이후 앞으로 남북관계의 방향을 어떻게 접근해 볼 것인가?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로부터 추적해 들어가 보자. 첫째,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이 자신의 장기독재권력체제 구축을 위해 사형의 칼을 빼어들었듯이 김정은 정권도 그 칼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우선 김일성 정권은 6·25전쟁 이후 남로당 거물인 이승엽과 박헌영, 연안파 거두인 최창익과 소련파 거두인 박창옥 등을 사형시켜 자신의 독재권력 기반을 튼튼히…
2006년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현충일 기념식을 하루 앞두고 청와대 경호실이 발칵 뒤집혔다. ‘한 여자가 현충원에 이상한 가방을 두고 사라졌다’는 첩보를 입수해서다. 경호관들은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방을 찾아 X-레이 촬영을 해보니 폭발물로 의심되는 배터리가 눈에 띄었다. 유사 폭발물로 의심됐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 즉시 현장을 통제하고 가방을 폭파했다.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사전 위험요소를 제거한 것이다. 물론 비밀리에 진행된 것은 당연했다. 광복절을 닷새 앞둔 지난해 8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대통령이 독도를 찾은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처음이었다. 암호명 ‘동해일출’ 작전을 2년에 걸쳐 준비한 경호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이 독도에 머무른 시간은 1시간 남짓, 이를 위해 2년을 준비하는 ‘완벽함’의 추구가 곧 경호다. 오직 국가원수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던지는 것이 경호실 요원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대통령의 살아있는 인간방패로 부르기도 한다. 해서 공사(公私)생활에서 한시도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 한때 ‘팬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