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오피니언의 필자로 원고의 한 지면을 맡았을 때 새해에도 이어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쓰려했으나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을 돌아보며 우선 경기신문에 감사드리며 2022년에는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다는 것을 다짐한다. 그동안 겪었던 좌절을 여기에 모두 적을 수 없지만 2021년은 특별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절망했을 때, 원하는 길은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행동에 옮기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어떤 해보다 값지고 보람 있는 것들을 얻었다. 귀한 경험을 얻었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생업을 포기해야 했고 그만큼 가난해질 용기가 있어야 했다. 반듯한 길을 가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만들어가야 하는데 아무리 수고롭게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없으니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이 없었기에 잘하려고 노력한 것뿐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20년 비영리 단체인 ‘내고향만들기공동체’를 설립했을 때 경험도
매클루언의 통찰 가운데 어쩌면 가장 논쟁적이고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의 구분일 것이다. 미디어 연구자들은 미디어를 핫(Hot)과 쿨(Cool)로 구분하는 발상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엉뚱한 발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까? 국제학술지 《유럽공중보건저널》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39개 나라 10대 청소년들의 음주량이 부모 세대의 젊은 시절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스웨덴의 연구진은 여러 나라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를 토대로 청소년 음주 감소에 영향을 준 4가지 요인을 확인했다.(한겨레신문 2021년 12월 27일자) 그중 하나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과 교제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교제하기보다는 소셜 미디어 등 인터넷 공간의 정보와 콘텐츠를 이용하며 홀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의 지배적 미디어와는 차원이 다른 미디어의 존재가 주요 요인 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매클루언의 논지는, 미디어가 바뀌면 감각비율과 지각비율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는 것과 문자로 기록한 글을 읽을 때의 느낌이 다
개인방송과 블로그, 짹짹이와 얼굴책에다 무슨 튜브까지 어마무시 많은 매체(미디어)들이 대중매체(매스미디어)의 왕년 역할을 잠식한다. 돈벌이 짱짱했던 방송사 신문사들 얼굴 샛노래진다. 상상이나 했을까. ‘시민 모두 기자다.’ 외친 오마이뉴스를 넘어, 할 말 있는 모두가 언론사가 된다. ‘언론과의 전쟁’이랄 만큼 일부 매체, 특히 조선일보와 맞짱 뜨기 마다않는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모두 언론사가 되어 도와 달라.’고 호소할 정도다. 정치까지, 개벽 같은 변화다. 내 뜻, 내 권리 으르는 집회 많아진 것도 비슷한 맥락일 터. 그 앞줄의 ‘약방의 감초’가 이것이다. 보기 중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귀하는 무엇을 고르실까? △플랭카드 △프랭카드 △플랜카드 △프랑카드... 실은 10년 전 쯤 필자가 ‘미디어오늘’에 썼던 글의 주제다. 말과 글의 시비(是非) 다룬 연재기사였다. 또 이를 쓰는 이유, 우선 아직 ‘이것’이 혼동의 와중(渦中)에 있다. 둘째 할 말 많은 사람, 영향력 큰 (개인)매체 많아지며 ‘이것’의 정치력도 함께 커졌다. 시위나 행진 때, 사람 수는 적어도 이건 커야 한다. 없거나 작으면 ‘그림’이 안 된다. 추상적이지만, 힘은…
"하루 여행 경비는 10달러를 넘지 않는다" ‘10달러 원칙’은 청년 시절 나만의 여행 방식이었다.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 긴 시간 방랑생활의 규율이기도 했다. 숙박지는 대개 싸구려 도미토리였는데 침구는 때에 찌들어 불결했다. 게다가 벼룩과 빈대의 습격은 고역이었다. 적도의 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벌레에 물려 밤새 가려움에 박박 긁어댔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김장용 비닐이었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비닐을 깔아 해충이 침구를 뚫고 올라오는 걸 막았다. 바스락대는 촉감이 거슬렸지만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시달리는 것보다 나았다. 대형 비닐은 내 장기 배낭여행 필수품이었다. 도시에서 도시로의 이동은 밤 버스를 이용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웅크린 채 앉아서 잠을 청해야 했지만 선선한 밤하늘 아름다운 별들 사이로 길을 만들며 지나는 별똥별은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자연은 두려움을 내려놓으면 기적 같은 선물을 무심히 던져 주곤 했다. 10달러 원칙으로 호사를 누릴 기회도 만들었다. 먹고 자는 돈을 아껴 중국 병마용, 인도 타지마할, 이란의 페르세폴리스처럼 입장료가 비싼 유적지를 경험하거나 현지에서의 식도락을 즐겼다. 빈곤을 감내한 풍요는 여독을
상반신의 여인 모나리자. 그녀의 살짝 머금은 미소는 백만 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그 미소를 찾아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모여드는 세계인은 하루 평균 2만 명이 넘는다. 500살이 넘는 그녀. 하지만 여전히 젊고 찬란하다. 이 신비의 여인을 탄생시킨 장본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éonard De Vinci). 다 빈치는 프랑세스코 델 지오콩도(Francesco del Giocondo)의 부인 플로랑틴 리자 게라르디니(Florentine Lisa Gherardini)를 보고 이 유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불어 이름은 모나리자가 아니고 조콩드(Joconde)다. 이 조콩드를 프랑수아 1세는 매우 사랑했다. 예술의 왕 프랑수아 1세에게 스카우트된 다빈치. 조국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 뚜렌느(Touraine)로 왔다. 그는 여기서 말년을 보내며 왕의 수석 화가이자 기술자·건축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직업은 이 밖에도 과학자, 발명가, 해부학자, 조각가, 도시계획가, 식물학자, 음악가, 시인, 철학자, 작가 등 어마어마하다. 인간이라기보다 신에 가까웠던 다 빈치. 그의 수많은 예술작품과 발명품은 혁명 그 자체였다. 그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는 물론 지금까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무한한 접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 그 시간이 없는 한 점에서, 인간의 진정한 생활이 영위되고 있다. “시간은 흘러간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본래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이다. (탈무드) 시간은 우리 뒤에 있거나 우리 앞에 있지,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나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 육체에는 모든 것에 차별이 없다. 물질에는 뭔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혼에는 영혼에서 나온 것 외에는 역시 차별이 없다. 영적인 생명은 자주독립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생명은 과거와도 미래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 모든 중요성은 오직 현재에 집중되어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간은 가장 큰 환상이다. 그것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존재, 우리의 생활을 분해하는 프리즘이며, 우리가 초시간적인 것, 이념의 세계의 것을 탐구하기 위한 형식이다. 공은 전체로서 존재하고 우리의 눈은 한 번에 그 전체를 다 볼 수 없다. 둘 중의 하나, 공이 눈앞에서 구르거나, 우리가 공 주위를 한 바퀴
이번 대선에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후보에 대해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의 흠집이 너무나 많고 치명적이라고 서로 공격하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지닌 흉터는 흠집이 아니라 상처를 입은 흔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상처는 흠이 생겨 온전치 못한 흠집과 다르다. 흠집은 결락을 지닌 하자다. 하지만 인간이 지닌 상처는 그가 무엇인가를 한 흔적이다. 일하거나 싸우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는 없다. 상처가 많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많은 일과 싸움을 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상처가 많다는 사실이 하자가 될 수는 없다. 그가 한 일과 싸움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오히려 그것은 영광일 수도 있다. 지금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이렇게 말했다. ‘상처는 빛이 인간에게 들어오는 통로다.’ 루미의 문장을 빌리면 상처가 많다는 것은 그의 안에 그만큼 많은 빛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된다. 두 대선 후보가 지닌 육체적 상처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열두 살에 소년공이 되었던 이재명 후보는 함석을 다루는 공장에서 찔리고 베여 100곳이 넘는 상처를 입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을 모르고 자란 윤석열 후보는 그런 상처를 입을 일이 거의…
다사다난했던 2021년을 보내는 이즈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집결시키고 미국과 NATO에 사실상의 최후통첩장을 날리면서 일촉즉발 결전의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자국의 외교부 홈페이지에 요구조건을 공개하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을 택함으로써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심지어 1997년 이전의 NATO로 되돌아가는 요구조건은 너무 과하여 미국과 NATO가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리미아 병합 및 우크라이나 돈바스 반군 지원 사건 등 러시아의 과거 행동은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감을 높인다. 과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까? 필자는 감히 예단컨대 대규모 침공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주된 이유는 푸틴의 대외 정책의 기조가 군사력을 앞세우는 ‘지정학 전략’보다 비용효율성을 중시하고 군사력을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지경학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와는 달리 푸틴은 비용효율성을 중시하는 지경학 전략을 영리하게 운용함으로써 상당한 대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것은 그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 중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 당시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법무부 장관 가족을 수사했다고 주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정의 아이콘으로 떠올라 제1 야당 대선 후보까지 되었다. 하지만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는 ‘동양대 강사 휴게실 PC’라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기소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았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 재직 시절 입에 달고 다녔던 “법과 원칙에 따라”는 도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그런데 최근 윤 후보는 그 의심에 기름을 붓는 발언을 했다. “이런 확정적 중범죄,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는 후보”가 그것이다. 지난 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칭해 한 말이다. “법원 원칙에 따라”를 입에 달고 다녔던 검찰총장 출신 제1야당의 대선 후보 입에서 나온 발언인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만약 윤 후보가 검찰 재직 시절, 특히 검찰총장 재직 시절에도 사건에 대해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는” “확정적 중범죄”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가 맡았거나 지휘한 모든 수사는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시콜콜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이며 평등하다는 의식은 인류에게 점점 확산되어 가고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예수께서 이 말을 하는 목적은, 모든 사람을 통합하여 국경을 초월한 형제자매로 만드는 것, 그들을 신과 합일하게 하는 것,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영원한 생명인 사랑의 계율 아래 그들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라므네)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는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지금처럼 상대를 거의 동물로 보는 한 그들은 사람들을 동물처럼 다루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고, 폭력 또는 계책을 이용해 인간을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이 하느님의 딸과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생명의 가치를 깨닫지 않는 한 새로운 관계는 형성되지 않을 것이다. (채닝) 네가 두려워하는 사람도 너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는 있다. (키케로) 도덕을 얘기하면서 너희의 의무를 너희 가족과 조국의 범위 안에 한정하는 사람들은, 그 범위의 크기와 상관없이 너희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로운 자기애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가족과 조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