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인 단위이다. 따라서 가정이 건강해야 그 국가가 건강하다. 그럼에도 최근 급격히 가정폭력이 증가하면서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꼭 근절되어야 할 범죄 중 하나로 가정폭력을 선정하게 되었다. 그 심각성과 폐해가 얼마나 심각하였으면 4대악의 하나로 가정폭력을 선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일이다. 최근 우리 경찰서 관내에도 가정폭력이 급격히 증가하여 평균 2∼3일에 1회 꼴로 가정폭력이 접수되고 있다. 술에 취하여 아무런 이유도 없이 습관적으로 가재도구를 파손하며 아내를 폭행하고, 가족 간에 의견차이가 있다고 하여 아내와 자녀들을 향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대와 폭행을 하는 등 그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나마 최근 신설된 가정폭력관련법을 인식한 일부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여 보호를 받고 있지만, 법 자체를 알지 못하는 다수는 여전히 가정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 것이니 아마 드러난 범죄보다는 묻힌 범죄가 훨씬 많으리라 생각된다. 게다가 가해자 남편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향하여 “왜 남의 가정사에 참견을 하느냐?”, &
‘현대 나이 계산법’이란 게 있다. 과거 50년 전 68세가 차지하는 인구비중이, 85세에 0.8을 곱한 68세가 현재 인구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자신의 나이에 0.8을 곱한 나이가 실제 나이라는 것이다. 계산법에 따른다면 50세면 요즘은 40세가 되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저명한 심리학 교수인 버니스 뉴가튼(Bernice Neugarten)이 주장한 실제 나이 구분법은 더욱 젊다. 55세 정년을 기점으로 75세까지를 영 올드(Young Old)로 구분하고 있어서다. 이 구분에 따르면 75세까지의 영 올드 세대는 아직 노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고 건강한 신 중년 또는 젊은 고령자쯤으로 해석하는 게 올바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올드 보이(old boy)가 아니라 하프 보이(half boy·반 젊은이)로 규정하고 있다. 버니스 뉴가튼 교수는 이들을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며,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 부른다.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에서는 시대의 실상을 반영하여 ‘0.7 곱하기 인생’이라는 나이 계산법이 있다. 현재의 나이에 0.7을 곱하면 그 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인생의 나이가…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개성상인의 피를 이어받은 대한민국 전설의 무역상 임상옥(1779~1855)이 남긴 명언이다. 정조에서 철종까지 네번의 왕이 바뀌는 동안 국제무역의 거상(巨商)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의 명언을 곱씹고 있노라면, 신묘하다. ‘장사’ 대신 그 어떤 단어를 넣어도 현대에 적용된다. 정치, 경제, 사회생활, 문화, 종교 등. 이는 ‘한 분야를 꿰뚫으면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한다’는 일관만통(一觀萬通)의 경지다. 또 있다. 그의 문집 ‘가포집’에 나오는 잠언 한 구절.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직역하면 이렇다. 재물은 물처럼 평등하고 사람은 저울같이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그는 재물 역시, 물처럼 흘러야 한다고 선언한다. 고이면 썩기 때문이다. 노자(老子)가 갈(喝)한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임상옥이 현대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면서 /김명수 어느새 자라난 아들의 머리를 뒷마당에 나와서 잘라주고 있다 헌 신문지로 목둘레를 여미고 눈을 덮는 긴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무엇이든지 잘 잘리는 어머니 쓰시던 큼직한 가위 머리숱도 자라면 눈을 가리고 옆머리도 자라면 귀를 덮는데 내가 서투르게 가위질을 하면 아들은 심통으로 눈물 흘리고 나는 우스워 미소짓는다 시집 <하급반교과서/1983년 창작과 비평>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는 아버지와 앉아서 머리를 맡기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정겹다. 아마 어머니가 쓰시던 큼직한 가위로 시인의 머리도 잘려나갔으리라. 서투른 가위질에 심통도 났겠지만 이발소에 가지 못하는 속상한 마음에 눈물 흘렸으리라.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하고도 아픈 한때를 빛바랜 사진처럼 보여주고 있다. /조길성 시인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증세 없이도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복지비용의 충당문제가 최근 우리나라의 화두라 할 수 있다. 복지 확대 문제는 재원부족의 문제이고 국가는 물론 지방 재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이어진 복지공약은 복지사회로 이행을 촉진시키는 작용도 하였지만 국가에도 지방에도 재원부담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되었다. 특히, 지방은 복지가 확대되면 될수록 재정이 고갈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복지가 지속되면 지방은 2017년까지 약 18조원을 추가로 부담하여야 한다고 지방세연구원 세미나에서 밝히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열매로서 다양한 복지제도가 도입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1980년대 국민연금 도입, 1990년대 고용보험 도입, 2000년에 국민기초생활보장, 2008년의 기초노령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그리고 최근의 누리과정 확대, 영유아 보육지원 사업 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이러한 복지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미흡하여 사회안전망을 견고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국가의 복지정책 확대가 지방재정
대한민국 경기도-러시아 연해주 간 우호협력 MOU가 27일 체결됐다. 러시아 연해주청사에서 두 지역 지사들이 교류협력, 개발과 지역 내 경제주체 간 교류, 무역·경제 및 문화행사에 대한 정보교류 등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연해주 일대는 발해의 일부 영토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지키던 녹둔도는 조선 땅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말 이래 우리 동포들의 망명지로 이용돼 많은 교포가 이곳에 이주해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다. 특히 1910년 연해주 교민이 독립군을 결성했으며, 1914년 대한 광복군 정부가 활동했다. 대한 광복군 정부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영향을 끼친 단체로서 이상설, 이동휘, 이종호, 정재관 선생 등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웠던 망명 정부다. 이처럼 연해주는 만주의 북간도와 함께 특히 항일무장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다. 지금도 19세기 말 정착한 ‘고려인’ 후손 3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어 비록 러시아 땅이긴 해도 우리와 심정적으로 아주 가까운 지역인 것이다. 이번 협약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유럽을 연결하는 러시아 극동지역의 중심지로 경기도내에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글로벌 제조기
MB정부에서 막대한 혈세를 낭비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제는 MB 교육부가 426억원이나 들여 개발했다는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이 결국 물거품이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교육부가 시험 개발 취지를 뒤엎고 이 시험과 수능을 연계시키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수험생 60만명을 대상으로 오류 없이 시험을 치르기 어렵고,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면 2008년 NEAT 개발 당시엔 이런 문제를 전혀 몰랐다는 얘기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소위 교육 전문가들이 이런 초보적인 예상도 못하고 일을 추진했다니 기가 막힌다. 교육부는 앞으로 일반 활용도를 찾아보겠다고 밝혔지만 토플, 토익 등과 경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더 한심한 점은 예산 낭비가 교육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2012 회계연도 결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자원개발, 한식 세계화, 농어촌 뉴타운사업, 여수세계박람회, 개도국 경제발전공유사업 등 5개 핵심사업이 전부 막대한 예산을 허비한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한다. 이들 사업은 최소 1천억원에서 최대 몇 조원을 투입한 사업들인데, 사업성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올해는 유난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위대한 이름을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문인들이 많다. ‘무녀도’와 ‘등신불’로 유명한 소설가 김동리(1913~1995), 평론가 김동석(1913~?), 시인 김현승(1913~1975), 시조 시인 이태극(1913~2003), 시인 양명문(1913~1985), 시인이자 작사가 조명암(1913~1993), 소설가 박계주(1913~1966) 등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들이다. 한국에서 근대문학이 태동하기 전에 태어난 1913년생 문인들은 우리말로 창작할 수 없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서 우리의 언어와 민족의식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서로 다른 이념을 놓고 갈등해야 했다. 김동리와 김동석은 해방 후 순수문학논쟁을 벌였다. 북으로 간 김동석, 조명암과 남으로 간 양명문 등은 첨예한 좌우 대립을 벌이긴 했지만, 그런 가운데 대립을 넘어 진정성 있는 세계관을 전개했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와 ‘등신불’은 필자가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공부했던 소설이지만 오래도록 그 감동은 더하다. 그는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의 문학사상으로 일관
공직생활 20여년 동안 바쁜 일상 속에서 직장과 가족을 먼저 챙기느라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볼 여유가 없던 나에게 중국연수의 기회가 주어졌다. 너무 기쁘고 ‘정말 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복잡했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뒤로 하고 6월17일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중국 랴오닝성의 심양 공항에 도착하니 랴오닝성 정치경제학원 관계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비로소 중국에 왔다는 실감이 났고, 환영해 주는 그들의 모습 또한 인상 깊었다. ‘당교’라고 불리는 교육원에 도착한 후 기숙사에 짐을 풀고 식당으로 갔다.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향채’를 거의 넣지 않은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랴오닝성과 경기도가 10년 넘게 교류하며 연수생들을 위해 하나하나 배려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입교식과 함께 공식 일정이 시작됐다. 첫 일정은 백두산 방문이었다. 6월18일 아침 일찍 백두산을 향해 출발, 장장 9시간의 긴 여행을 했다. 한반도를 통해서가 아닌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는 현실, 이름도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 부르는 곳을 오르며 분단의 아픔을 실감했다. 중국어 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중국어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