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가 바뀌었다. 아니면 설명을 잘못했다. 재정 투입은 정책 수단이기 때문에 정책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설명해야 한다. 세입의 감소가 예측되기 때문에 무상급식의 재정 지원을 삭감하겠다는 경기도의 발표가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양출제입의 재정 원리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한다는 것은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정부는 지출을 먼저 계산(量出)하고 그 다음에 세입을 조정(制入)하는 원리에 입각하여 있다. 공권력으로 세금을 징수하도록 하는 것은 공익을 위해 개인들이 사유재산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출의 정당성이 중요하지 재원은 그 다음이다. 더군다나 필요한 사업인데 당장 돈이 없으면 미래세대에게 양해를 구할 수도 있다. 특히 학생들을 위한 지원이라면 우리 세대가 다 책임을 지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지방채를 발행해서 미래 세대가 갚게 하고 미래에 갚을 세대에게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금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재원은 경기도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부분도 아니다. 2013년 기준으로 경기도 전체의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경비는 7천992억원이다. 인구가 많다보니 전국 최고 수준이고 서울의 3천953억원에 비
남북 이산가족들은 기대와 실망 속에 가슴 졸이며 지난 주말을 보냈을 터이다. 23일 들려온 3년만의 상봉 재개 소식에 이어, 1차 후보 500명 컴퓨터 추첨이 이뤄졌다. 살아 있기는 한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굴 한 번 마주대고 물어보는 게 평생소원인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게는 가슴 벅차고 눈물이 절로 나오는 희비교차의 시간이었을 게 틀림없다. 특히 이번에도 역시 9월엔 100가족씩 대면상봉을 하는 데 불과하고, 10월에 40가족씩 화상상봉을 하는 데 그쳐 아쉬움이 짙을 수밖에 없다. 1988년 이후 이산가족으로 등록한 12만8천842명 가운데 이미 5만5천960명이 기다림 속에 숨을 거뒀다. 생존자 가운데도 80% 이상이 70세 이상 고령자들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려면 상봉을 정례화하고, 서신으로라도 소식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과 북 당국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이번에도 실무접촉 합의서 4항에서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생사확인, 서신교환 실시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2010년 10월 이래 이산가족 상봉마저 끊길 만큼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중국이 이제 ‘화장실 문화혁명’을 이루려 하고 있네요. 한국이 세계 화장실문화운동의 발상지이고 세계화장실협회(WTA)의 본부국이어서 화장실문화의 메카는 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중국이 세계 화장실문화를 이끌어 가려는 것 같아요.” ‘중국 화장실 혁신대회’가 열린 지난 22일 중국 베이징시 동성구 왕부정역 인근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행사장에서 만난 한 한국인 사업가는 대회를 지켜본 후 이렇게 말했다. 중국 화장실 혁신대회는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와 미국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하 빌게이츠 재단)이 공동으로 개최한 행사다.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빌게이츠 재단이 이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 측 참가자들은 ‘관심’ 수준이 아니었다. 참가단은 출발 전부터 긴장한 얼굴이었다. 중요한 것은 빌게이츠 재단이 중국 행사를 주최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자칫 ‘화장실문화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해 온 한국이 그 지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더욱이 중국 측에서는 리샤오린(李小林)씨가 회장인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가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는 중국의 모든 민간국제교류를 총괄하는 거대한 조직이다.…
그 여름의 낮잠 /최기순 장맛비가 석 달 열흘 쏟아지고 앞산이 무너져 붉은 흙이 가슴을 덮고 어머니는 장독대가 떠내려간다고 발을 굴렀다 흙탕물 속에서 닭 벼슬 같은 맨드라미가 깜빡거리며 떠내려갔다 저 맨드라미를 건져다가 어머니의 장독대에 심어드려야 하는데 아무리 버둥거려도 발이 땅에 닿질 않았다 최기순 시집 『음표들의 집』/푸른사상 시선 25 올해는 어느 때보다 장마가 길고 지루했다. 끈적거리고 후텁지근한 것은 둘째고 불어난 빗물로 인해 사람 사는 세상엔 갖가지 사연들이 많았다. 산이 절개되고 토사물이 쏟아진다. 집을 덮쳐 무너지고 불어난 물에 사람들이 속수무책 떠내려가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물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생 가슴에 슬픔을 맞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비는 공포다. 비가 올 때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마조마 안절부절 한다. 비가 어떤 사람들에겐 즐거운 추억이 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평생의 트라우마다. 꿈속에서도 끔찍한 장면은 반복되고 ‘아무리 버둥거려도 발이 땅에 닿질 않는’ 꿈의 표의가 등장하는 것이다. /성향숙 시인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라는 산수유 CF로 잘 알려진 김영식 회장이 최근 모 방송에 출연, 빚 독촉으로 겪었던 고통의 나날을 공개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지금은 스타도 됐고 돈도 번 그는 빚 독촉을 받을 때마다 유서를 쓴 건 셀 수도 없고, 9층 사무실에서 창문을 열고 떨어질 생각도 몇 번이나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빚 독촉에 동원되는 갖가지 방법이 얼마나 악랄한지 죽음만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시달려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모른다고도 했다. 비정한 빚 독촉은 개인의 죽음은 물론 가정까지 파탄에 이르게 하기 일쑤다. 여기서 채무자의 인권은 찾아 볼 수 없다. 방문,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를 통한 독촉은 이미 고전이다. 자녀의 입학·졸업식장, 결혼식장을 찾아가 공개적으로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행위도 다반사다. ‘아이들 학교 못 다니게 하겠다’ 또는 ‘아이들 등하교길 조심하라’며 가족을 들먹여 협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장례식장에 찾아가 무언(無言)의 시위와 위협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교묘함을 동반한 수법을 쓰기도 한다. 봉투에 혐오감을 주는 붉은색 글
찜통 폭염이다. 연일 전력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오늘도 전력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최악의 전력수급 상황을 보일 거라 예상하고 ‘순환단전’ 또는 ‘블랙아웃’ 등 최악의 사태를 언급했다. 더하여 긴급 절전 운운하며 폭염주의보 속에서 ‘닥절’(닥치고 절전)을 강요하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칠 최대의 재앙이 될 대정전인 블랙아웃이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에 이르자 나는 지난해 태풍이 들이닥쳤을 때 정전을 대비하여 준비해두었던 양초, 갑자기 벌어진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들어 주었던 양초 한 자루가 생각났다. 사람들은 늘 넘치게 풍부할 때 감사할 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언제든지 스위치만 올리면 켜지는 전등, 아침에 눈만 뜨면 떠오르는 태양이 비추어주는 그 빛, 그 온기의 고마움을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고 요즘처럼 대정전을 떠들어대며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어야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 작은 양초 한 자루를 떠올리니 말이다. 서랍장 구석에서 찾아낸 양초를 촛대에 꽂아 불을 붙여 보았다. 깜빡 깜빡이며 제 몸을 태워 빛을 만들어내고 있는 양초 한 자루, 벽에 제 몸 그림자를 이글거
한때 영어하면 성문, 수학하면 정석하던 시절이 있었다. 꿈에 그리던 명문대 입학과 고성적을 보장하는 수험생들의 바이블로 불린 그 두꺼운 책들과 씨름하던 학창시절에도 성문이건 정석이건 출발은 바로 시리즈의 맨 앞에 오던 ‘기본’에서 시작했다. 이해가 얼마나 어렵던지 며칠 만에 내팽개치고 다시 기초부터 시작하던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지만 중3, 고1부터 고3 끝나는 순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성문과 정석 시리즈의 ‘기본’은 소위 ‘베스트프렌드’였다. 뜬금없는 기초와 기본 얘기는 연일 기세를 떨치는 폭염과 사상 최장의 열대야 속에 에어컨조차 제대로 켜지 못하는 이 여름을 보내는 내내 화두가 됐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전력경보 속에 장관이 직접 대국민담화로 절전을 호소하던 그 3일의 악몽이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전력위기는 바로 기본이 문제였다. 조작된 시험성적서에 각종 부조리가 맞물린 ‘비리종합세트’로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대정전’의 악몽이라는 또 다른 단면은 아무리 참고 이해하려 해도 단단히 맺힌 분통이 쉽사리 풀리지 않
새누리당이 내놓은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사용량 절약은 유도하지 못하면서 저소득층 부담은 오히려 커질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누진제를 현행 6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하는 것은 좋으나, 항상 오르는 추세인 연료비를 요금에 연동하면 저소득층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200~600㎾h 구간을 단일요금으로 하면, 가정용 소비전력으로는 상당히 많은 양인 600㎾h까지 전기를 쓰는 가구가 늘어날 수 있다. 요금 부담을 줄여주면서 전기 절약을 유도하겠다는 개편 취지를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셈이다. 더 큰 비판은 왜 항상 가정용 전기요금만 먼저 문제 삼느냐는 점이다. 전체 전력 가운데 가정에서 쓰는 전력 비율은 15~20%에 불과하다. 사리로 따지면, 절반이 넘는 50~60%를 사용하는 산업용 요금 개편이 먼저 이루어진 다음에 가정용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 더구나 산업용은 가정용 요금의 절반 이하 혜택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은 일단 가정용을 개편한 다음에 산업용을 손질하겠다고 밝혔으나, 순서가 뒤집혔기 때문에 비판이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 전기 절약도 가정 먼저, 요금 개편도 가정용 먼저이니 쌓인 불만이 터져
1950년 10월 2일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전문을 보내고 박일우를 직접 베이징에 파견하여 중국의 참전을 요청했다. 당시 중국공산당의 간부들은 대부분 신정부 출범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옆집에 불이 났으니, 그 불이 옮겨 붙기 전에 나가 싸워야 한다”며 참전을 강행했다. 중국은 240만 명이 참전하면서 엄청난 전쟁 물자를 지원해야 했고, 자신의 장남 마오안잉을 비롯한 40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전쟁지원은 이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더 큰 손실은 미국을 적으로 해서 싸운 전쟁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전후 중국을 철저히 봉쇄했고, 중국은 ‘죽(竹)의 장막’을 치고 한동안 세계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다. 오진용 교수가 ‘김일성시대의 중소와 남북한’에서 표현한 대로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에 중국만이 가난한 아웃사이더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북한은 주체사상의 실현을 위해 중국군의 참전을 은폐해야 했다. 평양의 ‘조선전쟁기념관’에는 김일성이 손을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