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은 질서유지로 형성된다. 서양사상에서는 개인주의가 강조되었지만 동양사상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부분으로 보고 주어진 자연의 질서에 만드는 사회질서를 일치시키려고 했지 않았나 싶다. 자연질서 핵심은 생명법칙으로 조화와 균형이다. 자연질서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격(格)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질서는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보장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경찰에서 주관적으로 펼치는 4대 사회악 뿌리 뽑기는 질서유지를 위한 행위들이라고 보인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납치·감금, 실종, 성폭력, 학대, 음란물 등 범죄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 경찰은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 그리고 불량식품을 뿌리 뽑고 법이 사회적 약자에 방패가 되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 데 핵심적 역할을 부여받아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그 일과 수고가 경찰만의 임무인가. 제복을 입었지만 무겁게 고단하게 짊어져야 하는가. 가정과 사회공동체 우리 모두의 일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가 아니겠는가. 경찰은 현재 체계적인 성폭력 대응을 위해 ‘특별수사대’를 설치·가
낮이 가장 긴 하지가 곧 온다. 점심 식후에는 으레 눈이 감긴다. 나른하고 따뜻한 날씨에 한 시간 정도의 낮잠은 꿀맛이지만 운전자에게는 최대의 적으로 경계대상이다. 졸음을 이겨내지 못해 순간의 방심은 모든 것을 잃게 한다. 특히 고속도로 졸음운전은 절대금물이다. 눈을 감고 질주하는 것과 매한가지며, 사고 시 연쇄추돌은 다반사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고 또 환자 대부분은 중상을 입게 된다. 사고현장은 마치 전쟁터와 같이 참혹하다. 졸음운전 사고가 빈번해짐은 경계 대상이다. 고속도로 사망자의 23%가 졸음운전이 원인이며, 해마다 200여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치사율이 일반사고의 4.5배며 초여름의 운전사고가 겨울보다 무려 50%가량 많고, 점심 먹은 후부터 오후 4시 사이에 높은 사고율을 보여주고 있다. 고속도로 상에서 2~3초 졸았을 때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는 차는 100m, 80km는 60m 정도로 질주해 정면충돌이나 중앙선 침범으로 대형 교통사고를 초래한다. 졸음운전은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일반적인 생체리듬이다.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한 지방도나 복잡한 시내보다는 도로가 잘 정비되고 직선으로 이어진 고속도로에서 사고 빈도가 높다. 단조로운 운전 환
극장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서양 예술은 왕족, 귀족, 부유계층 등 특권층의 전유물로 출발했으며, 이들의 취향에 맞는 궁정음악, 오페라, 순수미술 등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니 대중의 예술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고급예술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는데 복지국가 이념에 따라 예술도 공공재의 하나로 인식해 대중이 저렴한 가격으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이 적극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의 개념은 건물 중심의 제도권 공간에서 소수의 예술가와 참가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방적 소통과 교류를 넘어서 새로운 소통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예술에 대한 인식, 예술과 사람의 관계, 예술가와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 사회변화를 위한 예술의 역할 등을 새롭게 모색하고, 주류 예술세계의 대안을 제시하는 공동체 예술의 개념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거리로 나선 예술과 축제가 큰 특징 중 하나다. 우리 공연예술은 근대화 과정에서 실내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공연예술에 주도적인 자리를 내어주기는 했지만 전통예술인 연희나 의례는 공간 활용과 담아낸 철학이 매우 현대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셈이다. 제의와 놀이 결
집 근처 동사무소 앞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6·25 전쟁과 그동안 북한의 도발로 희생된 분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프고, 전쟁의 위협이 없는 땅에서 살고 싶은 바람이 간절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쟁을 겪어 본 사람도 아니고, 가족 중에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도 없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 나고 자라면서 받은 간접적인 피해는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나는 내 인생 최초의 악몽은 일곱 살 때쯤 꾼 간첩 꿈이었다. 우리 집에 간첩이 들어 왔는데, 바들바들 떨며 숨을 곳을 찾던 공포감이 생생하다. 만나 본 적도 없는 누군가를 뿔 달린 도깨비라 못 박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은 어린 시절이었다. 탈북자 연구를 하며 만난 북한사람들은 뿔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랑 비슷한 게 많았다. 어린아이에게 단지 어떤 배경 때문에 누군가를 무조건 배척하라는 것은 좋은 교육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적대감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것, 내가 통일 세상을 꿈꾸는 이유이다. 분단국가에 살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을 크면서 많이 보았다. 월북…
국가대표 축구팀 새 감독으로 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거론되고 있다. 터키 출신 세놀 귀네슈 감독과 아르헨티나의 마르셀로 비엘사 등 외국 감독 영입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국내파 홍 감독 발탁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의 아시아예선 A조 마지막 경기가 끝나자마자 한 언론이 ‘홍 감독 확정’이라고 성급하게 보도할 만큼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홍 감독이 사령탑을 맡아 국가대표팀을 일신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홍 감독이라면 안정된 리더십과 선수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대표팀을 새롭게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이미 2009년 U20 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통해 지도력을 충분히 입증했다. 지금의 대표팀 선수 가운데 기성용 박종우 김보경 등은 홍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선수들이다. 국민들이 홍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란전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대표팀은 강력한 새 바람이 필요한 상태다. 골 결정력 부족이나 수비불안 등 고질적으로 따라다니는 병폐도 문제지만, 무엇엔가 짓눌려 전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송탄관광특구는 평택시 신장동 주한미군 주둔지인 K-55 기지의 주변지역으로 면적은 49만1천316㎡이다.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래 주한미군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매월 2차례 관광특구의 특색을 살려 각종 문화행사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 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군-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송탄지부(이하 송탄지부) 소속 업주와 관련 종사자들-K-55 기지 주변 상인들 간에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갈등은 먼저 미군 측과 송탄지부 소속 업주와 관련 종사자 사이에 빚어졌다. 업주들은 현재 부대 앞에서 무기한 집회를 열고 있다. 송탄지부와 업주, 종사자들에 따르면 “미군 측이 업소 측에 여종업원 고용금지, CCTV 설치 등을 요구하며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미군부대 주변에서 외국인 전용 클럽 50개 업소 가운데 최근 8개 업소가 오프 리미트(출입금지구역)처분을 받았다고 말한다. 업소출입금지 처분을 통보받은 6개 업소의 경우 ‘여종업원과 야한 춤을 췄다’, ‘여종업원이 인신매매에 연루돼 있다’ 등 미군 측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근거로 미군 지휘관으
필자가 정명희 시인을 만난 것은 오래되었지만 가까이 뵙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줄곧 화성시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었던 시인은 수원의 정자초교 초빙공모제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했다. 시인이란 직업을 가진 탓일까? 시인은 인문학에 대한 열정이 깊다. 사람은 모름지기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좋은 인성을 쌓을 수 있는데, 정 시인은 인문학적 좋은 학교를 만들어가는 교직자로,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 시인은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지만 문협 행사에 꼭 참석한다. 동료 문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함도 있지만 정 시인은 항상 자신의 몸을 낮추고 진솔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면하신다. 얼마 전, 필자는 정 시인의 학교에서 시화제 행사가 열려 참석했다. 교실에는 아름다운 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어린 학생들의 작품이 액자에 담겨 시선을 끌었다. 시인 교장선생님이 시의 향기를 학교 곳곳에 퍼뜨리고 있구나 싶었다. 교직원들이 곱게 액자에 담아 놓은 것도 참 인상적이었고, 시낭송회 때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시대가 변하다 보니, 학생과 교직원들을 관리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행
1969년 8월 15일 미국 뉴욕 북부 베델 근처 화이트 레이크의 한 농장에서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지금도 록페스티벌의 상징이자 전설로 불린다. 당시 히피, 반전이라는 이유로 당국이 개최를 제재했지만 50여만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진흙 펄을 구르며 ‘사랑’과 ‘평화’를 외쳤다. 기타의 신 지미 핸드릭스, 포크의 여왕 존 바이즈, 그룹 산타나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무대에 섰고 거의 모든 장르의 록 음악이 연주된 한바탕의 잔치였다. 당시 록페스티벌은 음악 공연이라기보다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겐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고, 기존 체제에 대한 반감을 마음껏 표출하는 해방구였다. 「우드스탁」이 1960년대 카운터컬처와 반전운동을 상징하는, 20세기의 가장 큰 문화적 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 1970년대 이후 록페스티벌의 중심은 영국으로 이동했다. 영국에서 개최되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유럽을 대표하는 꿈의 무대고 일본에서 열리는 ‘후지록’과 ‘서머소닉 페스티벌’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록페스티벌로 꼽힌다.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대 록페스티벌 중 하나로 불린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이 축제는 1999년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후략-’ 이 노래를 아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나 잊혀가는 전쟁, 6·25로 수백만명이 죽었고 1천만 이상의 이산가족이 생겼다. 남·북한은 물론 중국동포까지 무사한 가정이 없었다. 우리가족도 이 전쟁에서 막내삼촌을 잃었다. 1950년, 중학교 3학년이던 삼촌은 학도병으로 참전하셨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 후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그해 여름, 먼 메아리처럼 쿵… 쿵 하는 소리와, 보퉁이를 이고 진 사람들이 신작로를 따라 줄지어 가고 있었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당산나무 아래에도 낯선 사람들이 빼곡 차, 누워 있거나 밥을 지어 먹던, 바랜 흑백사진 같은 유년의 토막기억들이 남아있다. 삼촌은 입대 후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 막내를 전쟁터에 보낸 할머니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장맛비가 내리고 두꺼비가 엉금엉금 마당으로 기어 나오던 날, ‘홍두야’ 삼촌을 부르며 통곡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문풍지가 파르르 우는 한겨울, 화롯불 앞에서는 ‘이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