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애인아 /김선우 바람에 출렁이는 밀밭 보면 알 수 있네 한 방향으로 불고 있다고 생각되는 바람이 실은 얼마나 여러 갈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배가 떠날 때 어떤 이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어떤 이는 물을 바라보지 그러니 애인아 울지 말아라 봄처럼 가을꽃도 첫 마음으로 피는 것이니 한 발짝 한 발짝 함부로 딛지나 말아주렴 시집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 지성 2007> 우리는 얼마나 여러 갈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못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수많은 갈등 속에서 질문을 생략하기 일쑤다. 일상생활에서 그럴진대 우리들 내면에서는 얼마나 많은 갈등의 싸움이 있을까. 하물며 사랑이라는 이름의 벅찬 무엇이 밀물 썰물처럼 드나들 때 돌아누워 베개를 적셔 본 사람은 알지도 모르겠다. 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얼마나 여러 갈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막 흐드러지는 꽃에게도 함부로 말 붙이기 힘든 봄이다.
거제도에 ‘애광원’이라는 중증장애우 요양시설이 있습니다. 1952년 한국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데서 시작해서 지금은 중증장애우의 요양과 직업훈련을 하는 기관입니다. ‘애광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중증장애우들의 어머니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임순 원장님은 그 헌신을 인정받아 1989년 막사이사이상을, 2007년에는 제6회 유관순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이 ‘애광원’ 안에 독일인과 관련된 두 채의 집이 있습니다. 하나는 ‘애빈의 집’입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교목을 역임한 애빈 쿠루제 목사님이 세운 집입니다. 1980년대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애광원’을 위해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유리 온실집을 지었고, 이 집에서 중증장애우들이 직업재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우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크게 공헌한 공로로 그는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십자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애빈의 집’에 들어가면 아직도 그의 털털한 웃음과 유머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었고, 한국을…
짝눈 /김승기 세상엔 도다리와 광어 밖에 없더라 아무리 창을 넓게 열어 젖혀도 오로지 두 방향 너무나 섹시하게 얇디얇은 시각 좌측! 우측! 세상은 온통 찢어져 나부끼고 당신은 도다린가? 광어인가? -시와사람 가을호에서 저들이야 세상에는 오로지 도다리와 광어뿐인 줄 알고 있겠으나 어디 그 너른 바다에 도다리와 광어뿐이겠는가. 두 눈 정상적인 어류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좌광우도라고 한다. 비정상적인 눈을 가진 저들이 바다를 온통 지배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 아닐까. 좌측, 우측으로 삐뚤어져 박혀 일방통행인 눈으로 세상을 얼마나 바로 볼 수 있을까. 좌측이든 우측이든 여지없는 한쪽이다. 저들은 텅 빈 한쪽이 전혀 부끄럽지도 않다. 세상은 굳이 넓게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족속들인 것이다. 오로지 한쪽만 보고 달려가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논리라는 것은 만들면 생기는 것이다. 주장하면 옳은 것이 된다. 당신은 광어인가, 도다리인가, 좌인가, 우인가, 가운데 서면 안 되는 것인가.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들녘에 모내기할 무논을 써리는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다. 농가월령가 4월령에도 ‘맹하(孟夏)가 되니 입하(立夏), 소만(小滿)의 절기로다’. -중략- ‘무논을 써을이고 이른 모 내어 보세’라고 하였다. 자연절기(節氣)는 어김없이 순환하며, 인간은 자연에 기대어 삶을 영위한다.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로 나간 사람들이 이제는 풍광(風光)이 좋은 자연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근래에는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로 전원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이는 자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회귀(回歸)본능 때문이 아닐까? ‘장자크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 삶이 가장 이상적이고 평등한 삶이라 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 하였다. 우리 선인들도 낙향하여서나, 유배지에서조차 전원생활의 여유를 즐기며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나 또한 전원을 꿈꾸다, 수도권의 한적한 농촌에 작은 집을 지어 자리 잡았다. 소담한 들꽃들이 산책길을 반기며, 무논의 개구리 울음은 전원의 평화로움을 전한다. 탐스런 꽃들이 피어나고 신선한 야채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진정한 힐링을 느끼게 된다. 초록 들을 스쳐 느티나무 가
우리나라는 한 해 25만명이 죽음을 맞고 거의 대부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들 중엔 살아야 한다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죽음을 맞는 이도 있다.또 생명의 유지를 중지시킬 권한마저 본인이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도 있다.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한다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이다. 중환자실에서 피하고 싶은 것은 죽음뿐이 아니다. 환자 의식이 없고 다시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이 죽음에 임박한 생명을 연장, 유지시켜 주는 경우다. 이럴 땐 죽음의 질은 고사하고 인간의 존엄성조차 논하기 힘들다. 오히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의 정신적·경제적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사실 우리나라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은 매우 후진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죽음의 질 국제비교(2010년)에 따르면 OECD 30개국을 포함해 조사대상 40개국 중 하위권인 33위였다. 임종과 관련한 법 제도, 임종 환자의 치료 수준과 비용 부담 등 27가지 지표로 얼마나 품위 있게 죽음을 맞는가를 비교한 결과다. 선진국에선 잘 죽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이 보편화 되어 있다. 생전에 미리 써놓는 이 의향서에는 무의미
여야 국회의원들이 갑의 횡포를 근절하겠다며 앞 다투어 강도 높은 대책을 제시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 모임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을이 입은 손해액의 최대 10배까지 갑이 보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키로 의견을 모았다 한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문화한 법률안을 발의했고, 민병두 의원도 불공정 갑을 거래를 광역지자체장이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주 배상면주가 대리점주와 CU 편의점주가 잇따라 자살하면서 ‘을의 분노’가 계속 커지고 있는 데 대한 정치권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거면서 지난 임시국회에서는 왜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를 미뤘는지 따져 묻고 싶지만, 그보다는 어떻게든 갑의 횡포에 강력 제동을 거는 일이 먼저이므로, 향후 정치권의 행보를 일단 지켜볼 것이다. 서민들의 고통을 뻔히 알면서도 미적거리다가 불행한 사태가 연이어 터진 뒤에야 ‘해결사’인 양 나서는 행태에 대한 비판은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갑을관계를 떠나 을을 죽음으로 내모는 현저한 사회적 부정의와 불평등을 바로잡는 일에 우선은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여야 의원들이 중지를 모으면 이번에는 최소한
내일부터 2013 수원화성국제연극제가 열린다. 어느덧 17회째다. 1996년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화서문 일대에서 첫 번째 행사가 열렸고, 2년 후인 1998년 8월 1일부터 9일까지 화홍문 일대에서 열렸다. 이 행사가 시작될 당시 국내외 언론은 큰 관심을 갖고 대서특필했다. 왜냐하면 우선 행사가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배경으로 개최되는 데다 작품의 질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화서문에서 열린 첫 행사 때 수원시가 지원한 예산은 겨우 3천만원 정도였지만 국내 유수의 언론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9월 4일자 한 언론의 글은 지금까지도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연상시킨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모든 행사의 주체가 시민이라는 것이다. 수원지역의 예술가와 환경운동가, 시민들이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행사를 추진한다. 시민들이 직접 재활용품을 이용한 공동창작을 하고 걸개그림을 걸기도 한다…(중략)…수원시민들이 ‘자연·성·인간’을 행사의 주제로 삼고 성곽을 도시개발의 장애 요소가 아니라 시민행사의 무대로 활용하는 것은 정조의 민본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 제2회 때는 되살아난 수원천에 수상무대와 객석을 설치하고 연극제를 진행했다. 수천명의 관객들은 맑아진 수원천에 발을
며칠 전 한 지인이 성년의 날(5월 셋째 주 월요일)을 맞아 올해 법적 성인이 된 아들에게 성인이 되는 것의 의미와 성인된 것을 축하하는 글과 함께 콘돔을 선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성인으로서의 자유를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라는 의미에서 그리했다고 한다. 자식에게 콘돔을 선물하는 아버지를 보며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과 더불어, 성인기로 진입하는 청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동안 민법상 성년 기준은 만 20세였으나, 올해 7월부터는 그 기준이 만 19세로 낮춰진다. 법적 성인이 되면 투표권을 갖고, 음주, 흡연, 19금 영화 관람이 가능하고, 개인신용카드 가입도 할 수 있고, 물론 결혼도 할 수 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성인기, 그러나 우리사회 청년들은 과연 얼마나 성인으로서의 자유와 책임을 만끽하며, 자신의 삶과 미래를 희망적으로 일구어 나가고 있는가? 한국 역사에서 청년이라는 용어는 1900년 전후로 잡지·신문 등의 근대적 인쇄 매체를 통해 등장하다가 점차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청년의 출현 과정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조명한 한 학자는 청년을 “흩어져 가는 균열의 경
지난달 영사모 발기인 모임을 갖고 필자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장을 맡게 되었다. 직장과 원고 집필, 장편소설 <그림자밟기>와 시나리오 곽재용 감독과 각색을 거듭하는 가운데도 가슴 따뜻한 지인들과 이 모임의 회장을 맡게 되어 사실 마음의 부담이 크다. 하지만 유년시절 영화배우 오디션 합격 등 지나온 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보내왔던 세월을 보면 필자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고, 그만큼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영화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영화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영화관에서, 집에서, 잠시 틈나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영화와 만나고 있다. 우리 곁에서 영화가 떠난 적이 없고, 늘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영화의 위상이 새삼스럽게 보인 적은 없었다. 옛날에는 외국영화를 쳐다보며 우리 영화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작품성이 뛰어난 다양한 장르의 우리 영화가 새로운 기운을 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의 놀라운 약진에 기쁨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영화 같다’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새롭고 놀랍거나,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만날 때 하곤 한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