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은 긍정과 부정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1982년 출간된 ‘배짱으로 삽시다’라는 책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쓴 것이다. 배짱을,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소신이 동반된 행동으로 보고 이를 긍정적으로 풀어내 당시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것을 보면 배짱은 역시 갖추고 싶은 필수 인성(人性)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선천적 강심장을 빼고는 배짱을 갖추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닌가 보다. 대부분 사람들이 두둑한 배짱을 동경하니 말이다.
정치가 중 배짱이 가장 두둑한 사람은 아마도 농사를 짓다가 하루아침에 국상(國相)이 된 을파소(乙巴素)가 아니가 싶다. 최초의 사회보장제도인 진대법을 시행했던 그는 191년에 고구려 국상이 되어 12년간 고국천왕과 산상왕을 섬겼다. 삼국유사는 그의 발탁과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국천왕이 하루는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라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를 너희가 책임지고 추천해라.” 이에 신하들이 농사를 짓고 있던 을파소를 왕에게 추천했다. 면담한 결과, 왕은 그를 인재 중의 인재로 판단했다. 하지만 왕은 관직경험이 전무한 을파소를 국상(현재 국무총리)으로 발탁한다는 것이 큰 모험이라 생각하고, 요즘 장관급에 해당하는 중외대부로 임명하려 했다. 그러자 을파소는 정중히 거절하며 ‘이왕 맡기려면 더 높은 관직을 달라’고 배짱 있게 요구했다. 왕은 그의 포부가 원대함을 눈치 채고 국상으로 임명했다. 그 후 을파소는 진가를 발휘,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었다고 한다. 소신 있고 두둑한 배짱이 그를 명재상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으로 돌아가 보면 배짱처럼 고약한 것도 없다. 뻔뻔한 버티기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빗댄 속담도 있다. ‘뱃가죽이 땅 두께 같다’(염치가 없거나 배짱이 지나치다). ‘망나니짓을 하여도 금관자 서슬에 큰기침한다’(나쁜 짓 하고도 벼슬아치라는 배짱으로 뽐내며 도리어 남을 야단치고 횡포 부린다). 소속당의 자진사퇴 요구마저 거부하고 있는 윤화섭 경기도의회의장 버티기가 또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배짱부리는 사람에게 흔히들 “뭘 믿고 저러지”라고 한다. 진짜 뭘 믿고 저러는지 궁금하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