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은행나무가 헐렁하다. 가지치기하여 뭉툭해진 은행나무, 제 안으로만 물길을 내는지 좀처럼 새순을 꺼내지 않고 있다. 남겨진 가지 끝에 쪼글해진 은행 몇 알 매달고 있을 뿐 바람이 말을 걸고, 태양이 입질을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은행나무를 보고 있으면 명치끝이 싸해온다. 은행나무를 살림밑천으로 삼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던 일이 엊그제처럼 눈에 선하다. 첫 아이 다섯 살 때 일이니 20년도 더 지난 얘기다. 가을 태풍으로 들녘이 물바다가 되고 물이 집안까지 들어찼다. 허리를 넘긴 물 때문에 마당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정도였다. 태풍이 얼마나 거셌는지 가로수의 은행이 거의 다 쏟아졌다. 물이 빠지자 우리는 널브러진 은행을 줍기 시작했다. 한 가마니는 족히 되게 은행을 주워 씻어 말렸다. 남편은 그 은행을 심자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쉬는 직장을 다니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기에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남편은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것 아니냐며 본가의 밭에다 은행을 심어서 묘목으로 팔자고 했다.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쓰기 때문에 잘 키우기만 하면 큰돈이 될 거라며 이번이 기회가 될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강력히 요구하여 남편 뜻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1809~1865)이 얼마 전 상영되었습니다. 암살당하기 전(1865년 4월14일)까지 노예제 철폐를 위한 수정헌법 13조를 공화당이 열세인 하원에서 표결로 통과시키기까지 정치인으로서의 링컨을 그린 영화입니다. 우리에게 링컨은 켄터키의 오지 농촌 통나무집에서 자라, 60만 명의 사상자를 낸 남북전쟁에서의 승리를 거두고, 노예제를 폐지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공화당이 열세인 하원에서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 반대세력을 포섭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대 입장을 견지하는 의원들에게 자리를 약속하고 매수하거나, 적대자와 비밀리에 거래하거나 때로는 압박을 가하는 링컨의 모습은 참모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나침반처럼 항상 드높은 이상을 지향했던 링컨에게 실망한 보좌관에게 링컨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나침반은 언제나 서 있는 곳에서 정북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늪지대, 사막, 협곡 등 도중에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가리키지 않지요. 목적지를 향해 가다 장애물을 모르고 거꾸러져 늪에 빠지는 정도밖에 못 이루면 정북을…
나에게 /지디마자 오솔길이 없다고 그리움이 없는 건 아니지 별빛이 없다고 온기가 없는 건 아니지 눈물이 없다고 슬픔이 없는 건 아니지 날개가 없다고 거짓말이 없는 건 아니지 끝이 없다고 죽음이 없는 건 아니지 하지만 분명한 건 다랑 산과 내 민족이 없다면 지금의 나, 시인도 없다는 것 -지디마자 시선집 <문학과 지성사, 2009>- 중국 소수민족인 이족 태생이다. 많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소수민족을 대변하며 민족에 대한 사랑과 긍지를 노래하는 시인이다. 쓰촨성 문학상 등 여러 상을 휩쓴 시인이다.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시인이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현재는 칭하이성 부성장을 맡고 있다. 자기 민족에 대한 노래로 우뚝 선 시인이다. 민족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에 신선한 기쁨을 주는 시인이라는 생각에서 소개한다.
직장인이 싫어하는 월요일, 요즘 그 월요일이 기다려진다는 직장인들을 꽤 본다. KBS2에서 방영되는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을 보는 재미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미스 김은 3개월짜리 비정규직 계약직원이다. 그는 점심과 퇴근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타 부서 상사의 지시는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따르지 않고, 회식은 몸과 시간을 버리는 자살테러일 뿐이기에 거부하며, 회사는 주어진 시간에 일하고 돈 받는 곳일 뿐이다. 드라마는 이런 미스 김을 부장님도 쩔쩔매는 직장의 슈퍼 갑으로 묘사하고, 시청자는 그를 보는 것이 통쾌하다. 이 드라마는 매회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 800만 시대에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비정규직의 현실을 코믹하지만 가볍지 않게 다룬다. 비정규직은 임금은 물론, 휴가 사용, 동료 관계, 직원카드에 이르기까지 정규직과의 신분 구분이 확연하고, 무엇보다도 언제 해고될지 몰라 늘 불안하다. 언제라도 대체 가능한 비정규직을 보며 불안에 떠는 건 정규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스 김은 우월감으로 치장한 정규직원들을 살아남기 위해 버둥대는 파리 목숨으로 일축한다
잿빛으로 채워졌던 산하가 파릇파릇한 색채로 변색되어가고 있다. 봄날의 햇살이 고운 모래처럼 내리던 날, 문인들이 집필실에서 벗어나 야외로 나섰다. 필자는 문인들과 함께 정지용문학관과 육영수 생가를 다녀왔다. 생가를 소개하기 전에 우선 육 여사의 생애를 살펴보자. 육 여사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시대의 거울이다. 충북 옥천의 교동집에서 작은 아씨로 불리던 육 여사는 1925년 아버지 육종관 씨와 어머니 이경령 여사 사이에서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엄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난 그는 항상 예의가 바르고 침착한 성격이었다. 1938년 옥천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배화여고에 입학하였는데, 학창시절 재봉과 수예솜씨가 뛰어났으며, 요리에도 남다른 솜씨를 발휘하였다. 1942년 배화여고를 졸업한 후 교동집으로 돌아와 집안일과 아버지 사업을 도왔으며, 1945년 옥천여중 교사가 돼 학생들에게 수예와 미술 등을 가르쳤다.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란 와 송채천 소위의 소개로 박정희 소령과 처음 만나 그해 12월 대구에서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어 서울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건립하고,…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구아동 교육인권 개선사업을 위한 협약서를 체결했다. 이번에 협약서를 체결한 기관 및 단체는 NH농협 경기지역본부,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며 사업 명칭은 ‘지구아동 교육인권 지원프로젝트’다. 그리고 계획의 일환으로 아프리카 말라위 학생들의 기본적 교육인프라에 대한 구축 지원을 위해 오는 8월 중에 봉사단을 파견, 3개동 총 6학급 규모의 조립식 학교 건물과 학생용 책걸상 600조를 지원키로 했다고 한다. 협약에 따라 도교육청은 자체 설계 및 전문인력과 재활용 책걸상을 지원하고 농협경기본부는 재정 지원을,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는 현지 운영을 담당할 예정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의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인프라를 제공한다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린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들이 받는 교육을 통해 잠재적 능력을 개발하여 전인적인 인격체로 성장함으로써 가정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지구아동 지원 프로그램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특히 이번 지원이 2011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재활용 책걸상 3천조 지원에 이어 지난해 말라위에 봉사단…
수원시와 용인시 경계에서 환경권과 자치권의 본질을 묻는 대립이 벌어져 주목된다. 영통과 기흥을 가르는 청명산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난개발 말라”고 목청을 높이고, 다른 쪽에서는 “우리 일에 왜 간섭하냐”며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본보 24일자에 따르면 영통 주민들이 엊그제 기자회견을 갖고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용인시가 청명산의 용인 쪽 자락에 아파트단지와 자동차 매매단지를 허가하려는 데 대한 반발이다. 이에 대해 용인시와 기흥 주민들은 아직 환경영향평가 중이어서 결정도 나지 않았고, 설령 허가를 내준다 해도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며 오히려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영통 주민의 입장도, 기흥 주민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영통 쪽에서 보자면 아무리 행정구역이 다르다 해도 주민이 아끼는 청명산의 환경이 훼손되는 데 대해 안타까움이 없을 수 없다. 기흥 입장에서는 현행법상 도시계획이 행정구역 단위인데다 자치행정권이 엄연히 용인에 속해 있는데, 산 너머 다른 도시 주민이 이래라 저래라 하니 속이 상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은 모든 경계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피하면서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나가느냐다. 일
눈물에 금이 갔다/김이하 남의 집 한 칸을 빌어 십수 년을 살면서 이게 어디냐고 가끔은 걸레질 비질도 했는데 (중략) 술에 치여 보낸 밤도 많았고 화가 나서 뜬눈으로 보낸 날도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놈이 참 듬직한 걸 보았다, 거미란 놈 눈이 시려 실눈을 뜨고 새벽처럼 일어나 전동 칫솔을 돌리는데, 이제는 쩍쩍 금이 가는 남의 집 그 틈새에 끼여 거미줄을 치는 그놈은 실은 제 집을 짓는 게 아닌가 남의 집 한칸을 빌어 사는 내 삶의 한켠에 번듯하게 제 집을 짓는 저놈 흐릿한 거미줄 틈으로 멀리 사라지는 내 등이 보인다 더 이상 걷어 낼 거미줄은 아닌 것이다 출처 - 따킨 꼬더 마잉 外 시집 『멀리 사자지는 등이 보인다』 - 2008년 화남 사월이다. 봄철마다 이사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햇볕 아래 더 남루해 보이던 이불과 살림, 내 집 마련이 지상의 과업처럼 생각되던 나날, 세입자라는 이유만으로 집주인 앞에서 주눅 들던 경험. 그런데 세든 집에 “번듯하게 제 집을 짓는” 거미를 보면서 그 “듬직한” 모습에서, 당당함에서 “내 등”을 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주의 한켠에 세
햄버거 빅맥(Big Mac)의 가격을 이용한 ‘빅맥지수’가 경제지표로 개발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아름다운 광택으로 인류의 사랑을 받은 금(金)이 세계 어디서나 환영받았기에 화폐의 기준이 됐음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정 제품을 거론해서 민망하지만 요즘에는 ‘신라면지수’, ‘라떼지수’, ‘코카콜라지수’ 등 세계적으로 보급된 음식료를 기준으로 경제를 쉽게 이해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빅맥지수가 언급된 것은 1986년으로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의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지구촌 곳곳의 체인망을 통해 팔려나가는 빅맥이 크기, 재료, 품질 등의 표준화로 세계 어디를 가나 동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1967년에 태어난 빅맥은 높이 9cm, 직경 11cm에 달하는 대형 햄버거로, 한 끼 식사용이어서 경제지표로서의 의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환율이나 어려운 경제통계보다 누구나 체감할 경제지표라는 특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빅맥 한 개의 가격을 달러로 환산해 각국의 물가를 측정하고, 빅맥 한 개를 구입하는 데 투여되는 노동시간을 분석해 구매력을 평가하는 식이다. 최근 빅맥지수로 본 한국과 일본의 물가가 역전됐다. 아베 일본총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