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던 상심의 파편들이 구불구불 숨어 사는 거기 살을 모두 바라낸 시간들이 백골이 되어 뒹굴고 있는 거기 서로 어울릴 수도 없으면서 소중한 척, 서로 컴컴한 냄새가 되어가고 있는 거기 속을 다 열어젖히고 산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벌써 알고 있던 찢어진 깜장 우산처럼 스멀스멀 숨어 들어가 눕고 싶은, 거기 -한보경 시집 ‘여기가 거기였을 때’ / 지혜 /한보경 뒷방은 일상에서 잠시 밀려난 것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조금 어두컴컴하고 그래서 아늑하기도 한 뒷방에서 ‘잠시’의 시간들은 구불구불해지기 시작한다. 이내 서로 엉키어 백골이 되어 뒹군다. 마침내 컴컴한 냄새가 되어 있는 일상의 한 때. 어려서는 무섭기조차 했던 그 뒷방에 스멀스멀 숨어 들어가 눕고 싶은 때가 있다. 그만큼 뒷방은 치열함의 반대쪽에 있다. 무덤, 고향, 어머니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를 뒷방이 문득 그립다. /이미산시인
아름답게 꽃이 피는 계절의 시작인 봄은 춥고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게 해준다. 봄이 되면 활동이 많아지고 밖에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러한 자연적인 욕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금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면 활동에 제한을 받게 된다. 우리는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불안전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자기 자신으로서는 확보할 수 없는 경험을 해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지속된다면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장애인 중 후천적 장애가 90% 이상이라는 통계로 볼 때 취약한 환경과 노화 등으로 언제든지 장애를 입을 가능성이 있어 우리 모두는 ‘예비장애인’이라 할 수 있다. 4월은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면서 지난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팽배해 있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선입견들로 인해 사회통합에 장애가 되고 있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성숙한 시민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장애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는 자신이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이자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꼭 열흘 전이다. 아침 편집회의를 마치자 안산지역 기자로부터 정보보고가 떴다. 대형 사고란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을 태운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 중에 있다는 거다. 현지의 급박한 상황을, 통신사는 속보 형태로, 방송사는 생중계로 보도하고 있었다. 이어 ‘전원 구출’이란 자막이 떴다. 최초 여객선이 기운 상태로 보아 ‘그렇지, 좌초인데’ 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안도였다. 하지만, 안도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대형 인명 피해를 걱정할 정도로 상황이 급변할 거란, 여객선 규모로 보아 그리 빨리 침몰할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언론의 생명인 정보보고는 계속 됐다. 기자는 조심스럽다고 운을 떼며, 한 여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단다. 단원고 학부모들이 사고 현장인 진도로 떠난다는 내용과 함께, 민감한 사안이라 학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채 사실 확인 과정에 있다고 했다. 방송을 통해 접한 현지 장면과 달리 불길함이 엄습한다. 실시간 속보를 검색하면서는 점차 우려가 현실로 이어져서다. <속보> 승객 1명 사망, <속보> 승객 2명 사망…. 전원 구출했다던 2시
절망에 빠졌을 때 먼저 손을 내밀어 위로하고 힘을 보태 주면 거기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용기를 북돋워주고 삶의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때론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 사는 사회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수상록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하느님의 ‘몽당연필’을 자처한 테레사 수녀는 평생 사랑과 봉사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래서 ‘테레사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몇 년 전 미국 미시간주에서 시민들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결과,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한 사람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절반가량 낮았다. 또 테레사 수녀의 전기를 읽게 한 후 인체 변화를 측정했더니 생명능력도 크게 향상됐다. 이렇게 봉사활동에 대한 직간접 체험만으로 면역기능이 높아지는 현상을 ‘테레사 효과’라고 한다. 사랑과 봉사가 정신뿐 아니라 육체의 긍정적 변화까지 이끌어 낸다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이름 없는 천사들의 활동, 자원봉사는
최근 국내에서 급증하고 있는 갑상선암에 대한 과잉진단 및 과잉수술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 의사연대’라는 특정 단체가 언론을 통하여 “의학적으로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갑상선암 검사가 필요 이상 많이 시행되면서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증상이 있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정도만 초음파 검사를 하면 된다”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이에 필자가 근무한 세브란스 ‘박정수 교수’를 포함하여 ‘대한갑상선학회’는 단지 갑상선 암 진단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이를 규제하려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갑상선암, 과연 조기 진단이 필요 없는 암인가? 단지 의사들의 과다 진단으로 암 발생률이 증가한 것인가? 필자는 수원 영통에서 유방, 갑상선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젊은 외과의사이다. 현장에서 매일 갑상선 환자들을 만나고, 검사실에서 묵묵히 초음파를 해오면서, 오로지 빠르고 정확한 진단만이 지상 과제였다. 그런데 이러한 진단이 오히려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에게 매스를 대게 하고, 불필요한 부작용을 겪게 했다 하니, 의사로
봄나물과 보리밥은 입맛을 돋우는 최고의 단짝이다. 갓 지은 보리밥에 향긋한 봄나물을 잔뜩 넣고 참기름 한 방울을 더하면 고소한 참기름 향이 맴돌아 밥을 채 다 비비기도 전에 입에 고인 침이 꿀떡 넘어간다. 고추장을 넣고 슥슥 잘 비빈 보리밥을 입에 넣으면 보리밥 알갱이 하나하나가 탱글탱글 쫀득쫀득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보리밥은 수북하게 떠 볼이 미어터질 듯 입에 밀어 넣어야 제 맛이다. 이게 진짜 보리밥의 맛이다. 언제 먹어도 맛이 좋지만 중요한 모임을 앞두고 보리밥을 먹을 때면 늘 긴장하게 된다. 바로 보리방귀 때문이다. 보리밥을 먹은 날의 방귀소리는 왜 또 그리 용감무쌍한지 얼굴이 발그레해지기 일쑤다. 그래서 애써 참거나 궁둥이를 살짝 들고 소리 없이 뀌려고 내심 신경을 쓰게 된다. 보리밥을 먹으면 방귀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보리에 많은 식이섬유가 대장 내 미생물에 의해 급속히 발효되면서 여러 가지 휘발성 물질을 만들고, 이것이 장 내 가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변비가 있는 사람들에게 약 대신 권할 정도로 보리의 섬유질은 장에 좋다. 또한 보리에는 탄수화물 외에도 단백질, 비타민B, 섬유질 무기질과 성인병과 암 예방에 좋은 베타글루칸
최근까지 지하철 안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문구를 등 뒤에 대자보로 매달고 승객 틈바구니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당과 지옥은 피안의 세계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신심을 놓치지 않고 살아온 것은 나름 약간의 과학적 지식과 이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하신 구순의 모친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천당과 지옥의 실재를 한없이 믿고 계신다. 유럽 중세기에는 국민 대다수가 문맹인 탓에 교회는 그림으로 교리교육을 시켰다. 고딕 노트르담 성당 서쪽 출입문 위의 팀파눔에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최후의 심판 부조를 설치했다. 과학과 철학으로 무장된 현대 고등지식 국민들 대다수는 천당과 지옥이란 개념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신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촌스럽게 천당과 지옥의 실재를 믿는다. 천당, 지옥의 실재를 믿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이성적이며 도시적인 고등지식인처럼 보인다. 심판은 하느님께서 하신다고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를 목도한 국민들은 분명히 지옥의 나락에 떨어져야 할 인간
포장된 슬픔 /구순희 바다 변두리만 기웃거리는 게는 그 단단한 껍데기 속 물컹물컹한 슬픔 태산 같을지라도 창자가 없어 창자 끊어질 일 없다 하지만 아니다 곧장 앞으로 가지 못하는 숙명은 이미 창자 다 끊어져 더 이상 문드러질 게 없다 생의 부채에 허덕이는 사람이 무심코 걷어차는 바다 모래더미 속으로 어린 게가 어미 게 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간다 바다는 밤낮 집채만 한 파도로 게를 덮친다. -구순희 시집 ‘내려 놓지마’에서 포장된 슬픔이라는 시어가 재미가 있다. 게는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결국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속살이 아니라 고뇌이자 슬픔이다. 그러나 그 속에 꽉 찬 채 껍질로 포장된 슬픔의 그 힘으로 살아간다. 슬픔의 몸체가 커지려고 껍질 벗기를 한다. 이것이 삶의 아름다운 과정이자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파도가 아무리 집채만 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 게 껍질이다. 슬픔으로 꽉 찬 게이다. 게도 덮쳐오는 파도 속에서 희열을 느낄 것이다. 파도가 거세고 높을수록 살아있음의 노래를 끝없이 부를 것이다. 삶을 진지하게 살아온 시인의 혜안으로 읽어낸 세상의 일면이 힘차면서 아름답게 다가온다. 늘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는 좋은
‘나는 집으로 돌아갑니다’라고 시작하는 팝송명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고향의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가사를 무시하고 노래를 듣는 사람도 이 곡만큼은 가사가 무슨 내용을 말하는지 알 정도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감옥에서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아직도 자신을 사랑한다면 마을입구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달라고. 마을로 돌아오던 남자는 나무에 매인 100개의 ‘노란 리본’을 보게 된다는, 1973년 이 노래가 발표된 이후 ‘노란 리본’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또는 ‘무사 귀환’이라는 희망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다. 희망을 상징하는 리본(Ribbon)은 질병과 관련된 것들도 많다. ‘핑크리본’은 유방암 예방의식 향상을 위한 상징물이다. ‘레드리본’도 있다. 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지지의 표현이다. ‘오렌지 리본’은 백혈병 심벌이다. 또 백혈병뿐 아니라 기아, 다발성경화증, 자해에 대한 인식, 문화의 다양성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뼈의 색과 구조를 본떠 골다공증을 극복하겠다는 강
신기술로 농업 새 미래 연다 DNA 활용 품종판별 시스템 구축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다.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농업은 인류가 지구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시작한 ‘원시산업’으로, 그 생산물을 다시 가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 옛부터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농업은 그 나라 산업의 기본 주체였다.특히 온전히 인력만을 사용해 농사를 짓던 인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구를 사용하거나 가축을 이용했으며, 마침내 농업용 기계를 발명하는 등 농업기술은 발전을 거듭해왔다.그리고 농업기술이 발전되면서 우리 사회의 산업도 발전을 계속해 왔다.이처럼 농산업에 있어 기술은 곧 경쟁력이다. 이에 최근 농촌진흥청에서는 우리 농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신(新)성장 동력 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정보기술(IT) 등 각종 기술을 농산업에 접목시킨다면,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도시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경기신문은 농촌진흥청의 연구로 우리 농산업에 큰 도움이 될 ‘미래 농산업 신성장 동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