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모든 학문의 시원이다. 서양에서는 지혜의 사랑(Philosophy)이었고, 동양에서는 넓게 배우고(博學) 깊이 묻는(審問) 것이었다. 그 대상은 인간과 우주를 포함한 세상만사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철학은 형이상학, 즉 관념론 부분만 남았다. 학자들은 철학의 역사를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의 역사로 정리한다. 물론 과학의 견지에서는 유물론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자연과학의 성과와 발견을 바탕으로 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발전시켰다. 엥겔스는 ‘자연은 변증법의 증거’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관념론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관념론은 이성의 사유와 통찰과 상상이다.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했다. 물론 이성적 사유의 결과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상대성이론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러니 철학자는 관념적 사유의 결과를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검증의 노력까지 해야 한다. 사실에 부합하는 진리를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주장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철학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19세기 산업사회 이후 수많은 분과학문들이 철학
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항상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국감 무용론”이다. 이번에도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국감은 “대장동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임위를 초월하며 대장동 의혹이 핵심 주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중요한 사안들이 묻히고 있다며 다시금 국감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동의하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국정감사란 입법부가 행정부를 “정기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여당이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무기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는, 국정감사와 같은 최소한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도 본인들의 정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런 견제는 필요하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언젠가는 큰 문제가 터져 몰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정 감사는 지난 총선에서 야당을 찍은 적지 않은 수의 유권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일각에서는 “180석을 만들어준 유권자의 뜻“이라며 여당의 독주를 합리화시키고 있지만, 이런 표현은…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화천대유(火天大有), ‘패거리를 경계해야 한다’는 천화동인(天火同人). 때 아니게 《주역》 64괘 중 두 괘(14괘, 13괘)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주식회사 화천대유자산관리는 2015년에 설립된 성남시 대장동 개발 관련 기업이고 천화동인은 그 자회사로 ‘대장동복마전’의 주역들이다. ‘대유평 솔바람에 기세 좋게 날리는...’ 수성고등학교 교가 시작 부분이다. 고교시절 뜻도 잘 모르면서 열심히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유평은 수원시 정자동 지역으로서 지금의 화서역 건너편 수성고와 상공회의소, 연초제조창 일대의 넓은 뜰을 가리킨다. 본래 황무지였으나 정조가 수원 화성을 축조하면서 개발한 국영농장(屯田)이다. 정조에게 화성이 노론이라는 수구기득권 세력을 타파하기 위한 혁명 기지였다면 만석거(萬石渠)와 축만제(서호), 대유평 둔전과 서둔(西屯)은 그 보급기지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부동산 투기전문 ‘도적떼’가 화천대유 운운하지만 ‘정조의 꿈’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화천대유의 돈줄과 투기를 위해 줄을 섰던 자들의 정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정권시절 잘 나가던 법관과 검찰, 언론인과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궁지에 몰
여러 가지 나쁜 일, 즉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나쁜 일을 하기는 매우 쉽다. 우리에게 선이자 행복인 일을 하려면 크게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다) 지혜에 이르는 길은 결코 백합꽃이 피어 있는 잔디밭을 지나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항상 초목이 자라지 않는 낭떠러지를 기어 올라가야 한다. (존 러스킨) 진리의 탐구에는 항상 동요와 불안이 뒤따른다. 그렇더라도 진리는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너는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진리 쪽에서 먼저 나타나면 된다고 너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진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네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진리를 찾아라, 진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 (파스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예수) 끊임없이 선량한 삶에 마음을 쏟는 사람만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통증은 일을 할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심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적 세계를
1980년 가을로 기억한다. 목포 유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반야사’라는 절에 해 질 무렵부터 꽤나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절 정문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반야의 밤”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한 학생이 불량기 있게 보이는 옆 친구에게 나직이 물었다. “야, 오늘 목포에서 한 가닥 한다는 것들 이리 다 모이는갑다.” 친구는 짝다리를 건들거리며 침을 찍 내뱉었다. 한눈에 봐도 불교학생회 다닐 것 같지 않은 불량한 학생들이 절에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부회장 여학생은 못내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실 부회장은 “반야의 밤” 행사에 밴드 부르는 것을 반대했다. ‘아니 절에서 하는 학생들 행사에 웬 밴드란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키만 멀쩡하게 큰 회장은 고등학생 밴드 ‘윙스’를 행사에 초청했다. 드디어 ‘반야의 밤’ 행사가 시작됐다. 반야사 대웅전이 활짝 열렸고 무대는 대웅전 마루였다. 대웅전과 대웅전 앞마당에 학생들이 그득했다. 찬불가도 부르고 반야심경도 외우고 승무도 추고 타령도 했다.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종교행사였다. 그러다 저녁이 깊어지고 드디어 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컬기타, 베이스기타, 건반, 드럼이…
이제 2021년이 채 100일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을 보내는 지금 머릿속이 편안한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장동 신도시 사건이 던져준 충격과 상실감은 우리가 아는 어떠한 형용사로도 표현한다 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50억 원의 퇴직금을 두고 “주식과 코인을 하지 않고 성실히 번 돈”이라는 당당함은 많은 소시민의 성실함을 한순간 무능력으로 만들어 버렸다. 차라리 “엄마 빽도 능력”이라던 정유라의 당당함은 솔직하기라도 했다. 연말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기대라는 시기다. 우울함이 지배하는 연말만은 피하고자 2021년 희망의 순간을 찾아보았다. 지난 7월 5일 국회 본청에 있는 국회부의장실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렸다. 기본소득당 용해인 의원이 59일 전 출산한 아이 박단과 함께 김상희 국회부의장을 찾은 것이었다. 용의원의 출산은 현역의원으로 임기 중 출산한 세 번째 사례지만 임기 중 출산한 여성 의원이 아이와 함께 여성 국회부의장을 예방한 것은 최초였다. 국회부의장이 여성이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지난 2020년 김상희 의원은 대한민국 최초 여성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행정부에서는 여성 대통령과 여성 총리가 배출된 바 있고, 사법부에서
노동은 선은 아니지만 선한 생활의 필수 조건이다. 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노동과 걸식과 도둑질이다. 만약 노동자의 몫이 적다면 그것은 거지와 도둑의 몫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 놀고먹는 사람이 한 사람 있으면 다른 한 사람은 가혹한 노동을 하고 있다. 배불리 먹는 사람이 한 사람 있으면 다른 한 사람은 굶주리고 있다. 게으른 자들이 일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줄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노동을 덧붙이는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치스러운 놀이는 모두 그런 것이다. 처음에 노예는 자신의 군주가 권력을 누린다는 사실에 불평하지 않고, 다만 군주의 폭정에 불평할 뿐이다.” (존 스튜어트 밀) 인간을 물질화하는 시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人間像)을 증오한다. (전태일)/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즈음 집단지성이란 말을 찾는 사람들이 드물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유행어였는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국 사회의 큰 에너지로 작동한 집단지성이 왜 이렇게 쪼그라든 것일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집단지성은 SNS 환경에서 태어났다. 손에 쥔 개별화한 디지털 기기로 세상에 참여해 타자와 소통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아닐 수 없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한 마셜 매클루언에 따르면 모바일이라는 새 미디어는 개인의 발견이다. 객체가 아닌 주체, 수동이 아닌 능동. 주체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걸러지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집단지성은 사회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통해 간선이라는 과두 체제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오죽했으면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집단지성을 대놓고 비난했을까? 송 대표가 언급한 속칭 '대깨문'은 어쨌거나 SNS에 기반한 집단지성의 한 흐름이다. 그만큼 정치권에 있어 집단지성은 눈엣가시라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무관하게 집단지성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정치 논의가 활발해지기 마련인 대선 정국에서 새로운, 응집된 논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
‘몸 상해 일한 대가, 50억!’.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아들의 이 발언은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힌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일해야 퇴직금을 50억이나 받을 수 있는지, 몸이 얼마나 상해야 50억이라는 위로금을 받는지, 우리는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곽 의원은 문준용 씨에 대해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근거로 대통령에 대해 저격을 일삼았다. 이제 와서 보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결국에 문준용 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검사출신 국회의원으로서의 경험과 지위를 이용한 곽 의원의 행동은 다른 곳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도 곽 의원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곽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요구하는 무지막지한 자료 요청에 직원들은 퇴근을 하지 못했고 이어지는 고소로 인해 업무 담당자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업무담당자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경찰 조사로 인해 두려움을 호소하였고 심한 두통과 두근거리는 심장 등 심신 이상도 발병하였다. 당연히 경찰 조사 결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무혐의가 결정되었지만 곽 의원의 집요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7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외벽을 청소하던 29세의 일용직 노동자가 추락했다. 49층 꼭대기에서 내려가며 청소를 시작해 15층 높이에서 줄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에게 외벽청소는 그날이 첫 출근일이었다. 처음 외벽을 타는 노동자가 외줄에 의지한 채 49층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몸을 밀어낼 때 어떤 마음일까?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했을 것이다. 두려움을 밀쳐내고 첫발을 내딛기까지 그의 어깨 위에는 여러 이유가 켜켜이 쌓여져 있었을 것이다. 매달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절박한 요구들이.. 신산한 일용직노동자의 삶에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보통사람은 내려다보기조차 살 떨리는 높이에서 그는 그렇게 매달렸고 짧았던 젊음을 마감했다. 우리는 한해 산재로 882명이 죽는 나라, 그중에 37%인 332명이 이처럼 작업 중 떨어져 세상을 떠나는 나라다(2020년 기준). 비슷한 또래의 90년생 청년 한 사람도 산재(?)를 당했다고 한다. 업무상 과부하로 어지럼증을 앓았다는데 회사는 6년 근무한 그에게 퇴직금(위로금?)으로 50억을 지불했다. 모두가 다 아는 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의 이야기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그 대가를 받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