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에는 신성이 있다. 모든 진리의 근원에는 신이 있다. 진리가 인간 속에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은 진리가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에게 진리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 빗물이 홈통을 따라 흐를 때 마치 홈통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성자들이 우리에게 얘기하는 신성한 가르침도 그와 같아서, 성인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라마 크리슈나) 자신의 정신력을 신의 힘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에 의하면 풀무 그 자체가 공기를 만드는 독자적인 원천이며, 진공 속에서도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만일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보잘것없는 ‘자아’를 떠나 악을 생각하지 않고 빛을 반영하는 맑은 거울이 된다면, 우리가 비추지 못할 것이 뭐가 있을까! 만물은 당장 밝은 빛이 되어 우리의 주위에 펼쳐질 것이다. (소로) 이 땅에서 인간이 해야 할 진정한 일은 자기 존재를 영원한 것과 조화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사랑과 이성의 힘이 맑은 운하를 흐르듯 그를 통해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다. 참다운 예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꿈을 꾼다. 모든 사람이 고루 행복해지는 꿈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누군가는 유토피아(Utopia)라고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토피아는 없다.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는 공상소설이다. ‘어디에도 없다’라는 뜻의 유토피아도 그가 만든 말이다. 지은이조차 없다고 고백한 유토피아를 소설 밖에서 찾는 건 무리다. 낙원이나 천국 혹은 이상향이나 파라다이스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없지만, 아니 어쩌면 없어서 더더욱, 유토피아라는 꿈을 현실이라는 종이에 그리고 싶은지 모른다. 꿈을 현실로 바꾸려는 시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물론, 시도하거나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명칭과 내용은 서로 다르다. 다름에도 우리가 그 꿈에 애정을 쏟는 것은, 그들이 그리려는 꿈의 배경이 ‘누구나 행복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 누구나 행복한 사회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꿈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이 꿈꾸는 누구나 행복한 사회는 어떤 세상일까. 나는 그들의 꿈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전에 ‘누구나 행복한’이라는 어감의 완벽함에 압도당하고 만다. 고백하건대 나는 너무도 불완전한 사람이
지난 4월 말 인천 부평구에서 야간 배송 중에 배송지 건너편 건물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119에 신고해 대형 화재를 막은 배송 업체 직원이 화제가 됐었다. 그는 소속 회사로부터 표창과 상금을 받는 자리에서 “화재 피해를 막는 게 중요하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엄밀하게 본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화재 발생을 감시하거나 화재 진화를 돕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하고 겸손했다.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 본보기가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에 대한 평가가 잘 나왔다면서 알리고도 머쓱해지는 일도 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정확히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꼭 1년 앞둔 6월 1일부터 며칠 동안 비슷한 내용을 담은 기사들이 이어졌다. ‘○○○ XX시장이 전국 기초단체장 공약 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서 우수 등급에 선정됐다.’ ‘□□□ △△시장이… 최우수등급에 몇 년 연속 선정됐다.’ 내용인즉슨, 지방선거 당시 내걸었던 공약을 충분히 또는 어느 정도 수준 이행한 것으로 평가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공약을 얼마나 이행했는지와 연간 목표 달성도, 주민‧웹 소통, 공약 일치도 등 모두 5개 분야로 평가한 결과에 따
가족 이기주의는 개인 이기주의보다 훨씬 더 맹렬하다. 자기 한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희생시키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가족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과 곤경까지 이용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긴다. 인색, 뇌물, 노동자의 탄압, 부정한 상술, 이러한 것들은 모두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다. 가족이니 조국이니 하는 것이 우리의 영혼을 제약할 수는 없고, 또 제약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태어난 날부터 몇몇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데, 그 사람들의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가족애와 조국애가 배타적인 것이 되어 그것 때문에 인류의 보편적인 요구를 물리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양육자가 아니라 그 무덤이 되고 만다. (채닝) 가족에 대한 사랑은 결국 자기애의 감정이며, 그렇기 때문에 부정하고 나쁜 행위의 원인은 될 수 있어도 결코 그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예수) 가족에 대한 사랑 속에는 자아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의미의 선악이 들어
‘도둑을 만날 수도 있고 납치될 수도 있어요’ 20여 년 전, 배낭여행 중 들른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앞. 궁전 건너 보이는 하얀 동굴같은 집들이 궁금해 묻는 내게 현지인은 집시마을 사크라몬떼라며 위험을 경고했다. 호기심이 두려움에 앞서 결국 마을로 들어갔다. 반쯤 문 연 집이 보여 노크했더니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나온다. 한 세 평 될까 싶은 흙바닥에 예닐곱 살 여자아이들 서너 명이 엉켜 놀고 있었다. 누더기 같은 옷차림도 반 벗은 채였다. 인기척에 돌아보는 아이들 얼굴에 잠깐 숨이 멎었다. 치렁치렁 긴 검은 머리, 커다랗고 검은 눈, 붉은 입술이 뿜어내는 매혹이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별점과 도둑질을 일삼고 바이올린 하나로 집단가무를 즐기며 유랑하던 집시의 피가 만들어낸 것일까. 아이들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 것은 여행에서 돌아와 들은 한 곡의 음악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플라멩코 피아니스트인 다비드 페냐 도란테스(David Pena Dorantes)의 앨범 속 오로브로이(Orobroy). 아이들을 만났을 때처럼 잠깐 숨이 멎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처럼 한 단계 한 단계 상승해가는 피아노 음이 판타지의 세계로 이끄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나는 벌레를 싫어한다.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짠 음식을 싫어한다. 나는 열려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나이를 들먹이며 서열을 따지는 사람을 싫어한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때로는 주체하기 어렵듯이 혐오와 증오 역시 의지로 누르거나 피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누군가 토해 놓은 길거리의 오물이나 고장 난 변기 속 배설물을 좋은 마음으로 마주하기는 어렵다. 식민주의자, 독재자, 연쇄살인범을 혐오하는 건 당연하게 여겨진다.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를 선인으로 만들었다가 악인으로 만들기도 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게 한다. 그러나 마음의 영역은 타인이 들여다볼 수 없기에 표현하지 않는 한 처벌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혐오’ 자체가 아니라 ‘혐오 표현’을 문제 삼는다. ‘혐오 표현’의 반대는 ‘사랑 표현’이 아니라 ‘혐오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으로 따지면 혐오 자체가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때로는
북한은 어떻게 여름 나기를 하고 있을까? 북한에서는 우선 삼십 도가 훌쩍 넘는 기록적인 폭염에 대처하기 위해서 평양에 물 뿌림 차(살수차)가 등장하고 농촌지역은 농작물에 대한 물 주기에 총력 집중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북한 노동신문은 폭염을 나기 위한 보양 음식도 소개를 하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음식으로 소개된 단고기 음식은 개고기 음식으로 김일성이 고깃국 중에서 가장 달고 맛있다 라고 해서 단고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국제사회 부정적 인식을 감안해서 식당 영업 등 상행위에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그리고 닭을 찹쌀과 통마늘 인삼 등과 함께 푹 삶은 삼계탕을 여름 보양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여름을 나기 위한 북한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름이 없다. 분단 칠십여 년에 기간으로 인해 남북한이 이질화되었다고 하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음식과 생활 풍토 등에 있어 남북한 간 유사성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남북한 이질화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자는 공직자 시절 북한 당국자와의 대화와 교류협력 과정에서 심각한 의사소통의 장애를 경험한 바가 없다. 장기간 분단으로 인해 문제 되
- 지질학의 등장 암석(巖石)을 읽는 과학이 세상에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인 건 1830년 영국에서였다. 찰스 리엘(Charles Lyell)이 쓴 <지질학의 원리 (Principle of Geology)>는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땅속에서 역사를 발굴하는 지침서의 고전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런던 지질연구모임(Geological Society of London)”이 창립된 것이 1807년이니 20년이 채 넘지 않아 학문적 결실이 이루어진 셈이다. 찰스 리엘은 그의 책 첫 장에 지질학에 대한 규정을 다음과 같이 밝혀 놓는다. “지질학이란 유기물, 무기물로 구성된 자연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를 탐구하는 과학이다. 또한 이런 변화의 원인을 비롯해서 그 변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행성의 표면과 외부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연구한다.” 지질학으로 지구가 얼마나 오래된 별인지, 그리고 그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이 지구를 거쳐갔는지를 알게 되었다. 무려 40억 년의 시간이 담겨 있는 기록이 지구의 암석에 새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시작이었다.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간한 찰스 다윈이 “런던 지질연구모
명파 캠핑장에서 송정마을 캠프장까지 20킬로. 길을 떠나기에 앞서 근 10년 만에 동해에 몸을 담가보았다. 민통선 입구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부터 공식적인 출발을 했다. 중간중간 쉬면서 걸었지만, 뜨거운 태양열 아래 걷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단 어깨에 배낭이 없으니 할만했다. 발바닥이 아파오는 게 심상치가 않다. 두 시간 반을 걷다 보니 어제저녁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던 이상중 목사께서 시무하는 초댁제일교회를 지나가게 되어 쉴 겸하여 연락을 드렸더니 쾌히 허락하시어 잠시나마 에어컨의 찬 바람을 맞으면서 잘 쉬었다. 행복이란 이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오후 중간에 수박화채를 먹으니 절로 기운이 난다. 두세 분이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여 주시니 사실 따지도 보면 그동안 내가 네팔이나 스페인에서 걸었던 순례길에 비하면 거저먹기나 다름이 없다. 걷게 되면 차로 갈 때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경치를 보게 된다. 루소는 걷는 일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고 할까. 시골 풍경, 계속 이어지는 기분 좋은 전망, 신선한 공기, 왕성한 식욕, 걷는 덕에 좋아지는 건강,…
이번에는 꼬꼬마 한의사일 때, 특히나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수많은 중환자들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인턴 시절의 기억의 한 자락을 꺼내볼까 한다. 그 병원은 중풍전문병원으로서 엄격한 관리시스템 덕분인지 항상 전국에서 오는 중풍환자들로 풀 베드(full-bed;입원실이 빈 곳이 없는 상태를 그렇게 불렀다)인 곳이었다. 중증의 중풍환자들은 마비가 심하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항상 침상에 누워있게 된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한 방향으로만 누워있으면 눌려있는면 살이 체중의 무게를 받기에 욕창이 생기기 쉽다. 한마디로 살이 짓물러 상처가 나고 곪아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를 수시간마다 바꾸어주기를 지도하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잘 안되어 욕창이 심한 반신마비의 중증 중풍의 노인환자분이 입원하게 되었다. 꼬리뼈 부근의 엉덩이살이 짓물러서 탁구공 반개 정도로 파여 있었다. 인턴인 내가 드레싱(소독)을 담당했었는데 드레싱 할때 마다 너무 안쓰러웠다. 문제는 열심히 드레싱을 해도 낫지 않는 거였다. 나이도 많고 병도 중하고 하니 치유력이 저하되어 낫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부위가 넓어지는듯했다. 그때 레지던트들이 침 치료를 하자고 했는데. 전체적으로 기혈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