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는 올 한해 시민과의 소중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쌓아올린 ‘시민제일주의’ 시정기조의 핵심역량을 총 결집, 전국 최고의 지자체로 우뚝 서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일자리 창출과 민생경제 회생, 복지교육 분야의 우선순위를 두는 등 사람중심의 사업들을 대폭 강화한다. 최성 시장은 “고양 역사 600주년의 상징성과 연계한 ‘신 한류문화예술의 중심도시’ 완성과 평화통일 거점사업과 고양의 부가가치 상승 등 고양시의 미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전략적 사업들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고양시 지명이 생긴지 600주년을 맞았는데. 2013년에는 고양 600년과 연계한 신 한류문화의 중심 고양시를 완성할 것이다. 도시브랜드 가치와 고양시민의 정주의식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도록 국제적인 신한류 문화예술도시의 중심에 설 예정이다. 북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벽제관 육각정 환수운동, 북한산 산영루 복원, 고양600년 기념전시관 건립 등을 추진한다. 킨텍스 MICE 관광, 인천국제공항 환승 관광을 숙박·쇼핑·문화·의료와 효과적으로 연계해 그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킨다는 각오다. 아울러 올 상반기 개장 예정인 370개 객실의 대명 특급호텔과 종합레저타운
가평군의 키워드는 ‘에코피아-가평’이다. 이는 지역이 가진 자연환경과 농업, 생태자원에 녹색가치를 부여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가기 위한 발전모델이다. 주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소득증대와 일자리 창출, 생활환경 개선은 물론 녹색가치를 가진 가평만들기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이진용 가평군수와 만나 새해계획을 들어봤다. 지난해 군정을 평가하고 성과를 꼽는다면. 지난해 가평군은 대한민국 3대 관광휴양도시에 선정되고 800만 관광객시대를 앞당김은 물론 재정건전성도 높아지는 등 각 분야에서 고른발전을 이뤄냈다. 뿐만 아니라 경희의료원, 고려대 병원과의 의료협약을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익을 상승 시켰다. 새해 군정 방향은. 새해에는 환경과 경제, 지속가능한 발전까지 담아낸 ‘에코피아-가평’비전을 바탕으로 녹색전략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원을 창출하며 친환경 명품도시로 자리매김 시켜나가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가평의 꿈과 희망을 녹여낸 ‘에코피아-가평’실현을 위해 4대 전략사업의 안정적인 마무리에 중심을 둬 경쟁력을 높임과 동시에 재도약을 위
딸기 /박홍점 딸기는 그냥 맨몸으로 산다 중심에 씨방 만들어 씨를 가두지도 않고 흩어져 있는 씨까지도 달다 터지지 않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러나 한번쯤 쨈을 만들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딸기의 붉고 여린 표면은 일종의 전략이라는 것을 딸기를 매만지는 손은 때로 경건해 보이기도 하다 열을 가해도 잘 풀어지지 않고 국자로 꾹꾹 눌러도 뱉어낸 수면 속에서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완강하고 질기다 꽃처럼 달콤했던 모습 다 허물어져도 쉽게 헐어버릴 수 없는 심지 하나 뼈의 단단함으로 숨기고 있었구나, 견디고 있었구나 맨몸으로 살아가는 오랜 습성은 딸기의 중심이다 박홍점 시인과 만난 것이 90년대이니 시력이 필자와 2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와 시로 만나고 있으니 오래도록 만날 일이다. 고향을 등지고 타향에서 노래했던 세월이 녹록치 않다. 문학사상으로 등단을 하고 지역문학을 떠난 시점에서 그의 시적 진술은 세상과 다시 한바탕 깊은 사연을 만들고 있었다. 내면을 가볍게 드러내지 않고 딸기 속 은유에 잠긴 인생들이 오버랩 된 순간 잔치는 다시 시작 된다. 맨몸으로 살아가는 순간들이 찡한 가슴을 안고 한 중심의 원을 그리는…
예전에는 가정에서 필요한 물품은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급자족을 하거나 동네에서 여러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하면 만들어 냈다. 한 가정에서 가족들이 생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할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 모든 것을 집에서 만들어 냈다. 집을 지을 때에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어렵지 않게 그 많은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다. 아저씨들이 커다란 돌을 무슨 끈으로 묶어 서너 명이 잡고 무슨 노래에 맞춰 높이 들었다 세게 내려치는 동안 땅 다져지고 주춧돌을 놓고 나면 한 쪽에서 커다란 나무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는데 거친 겉껍질을 벗기고 나면 하얀 속껍질이 나왔는데 약간 달착지근한 맛이 있어 아이들이 주변을 떠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나무가 매끈한 속살이 보이고 이때부터 동네에서 목수아저씨로 불리는 분이 활약을 했다. 먹줄을 내고 반듯하게 다듬고 잘라 기둥을 만들었다. 끌로 구멍을 파고 어느새 기둥이 서고 대들보가 올라가면 상량식이라고 해서 고사도 지내고 떡을 나누어 먹었다. 서까래를 얹으면 바로 지붕이 덮이는 줄 알았지만 집을 짓던 어른들이 일은 하지 않고 갑자기 이상한 일을 하기 시작하는 건 바
술자리에서 누군가 파지 값이 너무 떨어져 괜히 심란하다고 했다. 그의 동네 박스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들었는데, 요즘 파지 시세가 작년 절반이란다. 그래, 파지 줍는 분들 참 많이 늘었어. 그 분들과 함께 할 일을 고민해야 하는 거 아냐? 돈 몇 푼보다 운동 삼아, 소일 삼아 나오는 분들도 많대. 겨끔내기로 한마디씩 했다. 묵묵히 듣는 동안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나오는 송이뿐(윤소정) 할머니가 떠올랐다. 박스를 줍던 이뿐 할머니가 해피엔딩을 맞았던가? 노인이라든가 할아버지 할머니 대신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일반화 된 지 오래건만, 왜 파지 수거하는 분들에게 어르신이라 하면 좀 어색하지? 자신의 얄팍한 휴머니즘을 반성하면서 막걸리 잔이나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돌아와 검색해 보니 정말 파지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는 글이 여럿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략 상자는 ㎏당 30~50원, 폐신문지는 90~120원이라 한다. 지인의 말대로 2011년 평균의 절반 값이란다. 파지를 일부 원료로 하는 골판지업체들이 수거 파지의 수분과 오염 차감률을 크게 높였고, 이에 따라 중간수십상이 매입 단가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2003년 10월 전주는 활력이 넘쳤다. 84회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해외동포를 비롯한 전국의 선수들이 전주에 집결했다. 전국체전 경기성적은 가물가물하지만 친절했던 시민들의 웃음은 새록새록 쌓여있다. 전주 하면 비빔밥과 한정식 등 맛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당시 전주를 찾았던 필자의 기억에는 마을마다 걸린 감이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시 외곽을 따라 펼쳐진 마라톤 코스는 감나무 코스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담장을 이루었고, 꺾어질듯 위태로운 나무 가지마다 탐스런 감이 열려 낯선 이들을 맞았다. 흐드러지고 맛깔스런 민요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딱 그 모습이리라. 전주와 전라북도가 침울하다고 한다. 부영그룹과 함께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위해 온 힘을 쏟았으나 안타깝게 ‘수원-KT’ 팀에 밀렸다. 마지막 힘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가 허탈하고, 맥이 풀렸을 만하다. 밀린 이유야 언론이 한껏 호들갑을 떨었으니 다시 이야기하지 말자. 그러나 전북이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다. 전북은 이번 건곤일척을 통해 전북만의 뚝심을 보여주었다. 인구 1천200만으로 전국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가 합세한 수원시를 끝까지 위협했다. 전북도민들의 일
쌍용자동차 사측과 회사 내 기업별 노조 측이 무급휴직자 455명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지난 주 전해졌다. 일터로 복귀하게 된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우선 축하부터 건네야 할 터이다. 2009년 8월, 1년 후 복직 희망을 품고 공장을 나선 지 3년여 만이다. 여전히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는 정리해고자, 희망퇴직자, 철탑 농성자를 비롯한 금속노조 쌍용차지회도 일단 이들에게 박수부터 보냈다. 엄밀히 말해 2년 전에 지켜져야 할 약속이 이제야 지켜졌는데도 환영이 쏟아지는 것은 지난 세월이 지극히 고통스러웠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23명이 목숨을 버렸다. 쌍용차 사측과 회사 내 노조 측은 이것으로 사태를 일단락 짓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제 더 이상 회사를 둘러싼 논란과 싸움이 이어지는 것을 그들은 결코 원치 않고 있다. 십분 이해가 간다. 그들의 이해관계를 헤아려볼 때 당연히 여기서 끝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별개로 박근혜 당선인 측이 공개 약속했던 국정조사를 회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아직 명확히 입장을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새누리당은 노사 양측이 국정조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방패막이로 앞세우는 모양새다. 분명히 선거
본보 지난 9일자 22면에는 ‘천년 써온 마을이름 돌려줘!’라는 기사와 함께 소를 탄 농부와 이를 저지하는 공무원의 사진이 실려 있다. 수원사람들은 소를 탄 농민의 이 외침에 공감할 것이다. 사진의 주인공인 농민 정면채씨는 ‘법정동’인 장안구 광교산 광교동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이다. 정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광교신도시가 생긴 데 이어 이곳의 행정동 명칭마저 광교동으로 정하고 8일 광교동주민센터를 개소하자 항의 차 개소식장을 방문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주민들은 ‘조례무효 확인소송’을 수원지법에 제기하기도 했다. ‘조례무효확인소송’은 광교동 신설을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광교동이란 행정동을 신설하고 광교동주민센터까지 개소하자 분노한 것이다. 장안구 광교동 주민들은 영통구 광교동주민센터 개소식장에 찾아가 “1천년 넘게 썼던 마을 고유이름을 주인 허락도 없이 가져다 쓰는 것은 주민들의 삶과 역사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광교동이란 행정동의 명칭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들의 당연한 분노를 충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광교동은 광교산이 있었음으로 해서 탄생된 지명이고, 이들은 조상들의 뒤를 이어 그곳에 대대로 살아왔기
올해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된다. 訓民正音(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은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제정 당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그러다가 1991년에 ‘국군의 날’과 함께 어려운 경제 여건 등을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그로부터 22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일단 慶事(경사)를 축하하면서, 한글날 부활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訓民正音(훈민정음)’의 반포는 없었다. 오늘날 訓民正音(훈민정음)을 만든 날로 기념하는 10월 9일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世宗(세종) 28년(1446년) ‘九月上澣(구월상한)’에 ‘是月訓民正音成(시월훈민정음성)’이라는 대목을 근거로 훈민정음을 頒布(반포)했다고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頒布(반포)’라는 말은 없다. 그러니 世宗大王(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했다고 하는 말은 근거 없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訓民正音成(훈민정음성)’이란 “訓民正音(훈민정음)이란 글자를 만들었다&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