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날갯짓이 유리벽에 부딪혀 파닥거린다 갇힌 순간 바람과 공기의 흐름을 잃은 새는 계단을 흐르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짹짹, 금세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데 새는 생각을 찢을 수 없다 옥상 문을 열고 빗자루를 들어 새를 몰았다 뿔 없는 작은 짐승이 몸을 돌려 포효하듯 빛을 향해 날아갔다 ▶약력 ▶2009년 정신과표현으로 등단 ▶시집 「침향」,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외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전공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 회원
신을 의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다. 그러나 신을 배워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명하고 겸손한 사람은 인간의 지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한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혼과 자신을 창조한 자에 대한 개념도 결국 순수한 영혼만이 볼 수 있는 것처럼 분명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한계 안에서 찾으려 한다. 그는 그 개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참으로 높은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 속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공허한 관념에 불과하다. 또한 인간의 지성은 항상 감정이 요구하는 것에 굴복하고 만다. (루소) 내 마음속의 빛, 속의 빛이란 말로 하기가 어려운 건데, 있기는 분명히 있지 않아요? 무슨 이상한 걸 봐야만 아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그건 있어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 속이 캄캄 어두울 때가 있고 밝을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건 우리도 환히 아는 일, 우리 정도로도 그것은 아는 거지요. 그런데 밝을 때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힘써 된 거냐 하면 그건 것은 아니에요. 또 캄캄하다고 해서 내가 그러고 싶어
오랜만에 야권의 공식선거 승리가 목전에 와있던 선거 며칠 전,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이기면 뭘 가장 뭘 하고 싶을까?”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예상한 것은 “김어준을 TBS에서 퇴출시키려 하지 않을까?”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승리 후 ‘김어준원정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고발하고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던 순서에 이번은 감사원이 끼어들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익히 보아오던 패턴이다. 장단에 추임새가 빠지면 허전하듯이 언론도 신이 났다. 처음엔 고액출연료로 논란으로 대중의 위화감을 자극하더니 법인명의 수령을 두고 바람을 잡는 꼴이 ‘김어준게이트’를 학수고대 하는 모양새다. 어쩌다 김어준은 이토록 무림의 공적이 되었을까? 야권과 보수언론에서는 지속적으로 김어준의 정치편향성을 문제 삼아왔다. 허구한 날 정부를 씹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는 종편이나, 아예 유가부수를 조작해 정부지원 광고홍보비를 과다수령해온 보수언론들이 정치편향성을 거론하다니.. 마치 미얀마 쿠데타군부가 준법과 질서를 외치는 것과 같은 당혹감을 느낀다. 하긴 미얀마군부가 시민들과 내전 중이라면 우리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쟁 중인데
16세기는 서양 과학사의 일대 전환을 기록했다. 《과학과 근대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를 쓴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가 명확히 짚어낸 듯이 “16세기는 기독교가 서구를 지배한 시대가 깨져나가면서 근대 과학이 출현한 세기”다. 그가 이 시대의 대표적 과학자로 꼽은 인물은 코페르니쿠스와 해부학의 대가 베살리우스다. 우연의 일치처럼 1543년은 바로 이 두 사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된 해였다. 태양이 아니고 지구가 돈다는 주장을 실은 《천체세계의 회전에 대하여(On the Revolutions of Celestial Bodies)》와 인간의 육체 내부를 들여다본 《인간의 육체, 그 구조에 관해》가 그 책들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책 제목에 있는 ‘Revolution’은 회전한다는 뜻을 가진 ‘revolve’라는 영어 단어처럼 “회전(回傳)”을 의미했는데 결국 과학사의 ‘혁명’을 주도한 결과를 가져왔다. 지구가 중심이었던 세계가 태양으로 바뀌었으니 그때까지의 모든 사유의 구조가 뒤집어지고 말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 과학사의 혁명 코페르니쿠스와 베살리우스는 탐구대상의 크고 작음은 있지만 한없이 잘게 쪼개고 한없이 확장하는 무한의
투쟁에 있어서의 참된 용자는 신이 자신의 동맹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이다. 자아를 부정하는 사람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왜냐하면 자아는 우리의 내부에서 신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를 부정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내부에서 행동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아니라 신이다. 한 번은 여왕이 아끼던 보석을 잃어버렸다. 온 나라에 다음과 같은 방을 붙였다. ‘30일 안에 보석을 찾아 돌려주는 사람은 후한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30일이 지나서 돌려주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리라.’ 랍비 사무엘이 이내 잃어버린 보석을 찾았으나 그것을 30일이 지나서야 돌려주었다. “너는 외국에 가 있었느냐?” 여왕이 그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집에 있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온 나라에 어떤 방이 붙었는지 모르고 있었느냐?” “아닙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어째서 30일이 지나기 전에 가져오지 않았느냐? 30일이 지나면 사형에 처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제가 폐하께서 잃어버리신 물건을 돌려드리는 것은, 처형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신이 두려워서임을 보여 드리려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믿으려고 결심한 자는 행복하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히말라야 깊은 산속 가릉빈가 새 청청 수려하다는 그 목청 강화도 보문사 사시예불, 독경하는 젊은 스님의 샘물 같은 목소리가 꼭 그랬지요 그때 나는 대웅전 앞 큰 느티나무 아래 벌렁 드러누워 “아이고 이놈의 절 올라오는 언덕길이 장난 아니네!” 투덜대면서 팔락팔락 나부끼는 잎사귀 사이로 슬쩍슬쩍 엿보이는 흰 구름에게 그 마음을 가만히 내맡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쪽저쪽 처마들이 댕그렁 댕그렁 한 소리 시작하는 거예요 스님도 목탁을 놓고 요령을 흔들기 시작했어요 쨍그렁쨍, 댕그렁댕, 쨍쨍, 댕댕…… 이 소리 저 소리 한가운데서 나무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지요 이렇게 수선스러운 절집은 처음이었지만 마음은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지요. ▶약력 ▶미네르바(2003년)로 등단 ▶시집 《닥터 존슨》, 《동양하숙》 등 ▶현 강원대 교수
해병대 창설 72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해병대 발전을 제언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 등 상륙 작전을 수행할 부대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해군 초대 총장인 손원일 제독에 의하여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창설됐다. 창설한지 불과 1년 만에 6·25전쟁으로 북한군 제6사단은 마산을 거쳐 부산을 점령하려는 북한군을 진동리전투에서 막았으며 전 장병 일계급 특진하였고, 통영 상륙작전에서는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영원한 애칭을 불리고,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고 서울 탈환 작전을 통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수은을 세웠다. 도솔산 전투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월남전인 1965년 베트남 전쟁에 전투병력으로 첫 파병하여 짜빈동전투에서는 “신화를 남긴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여 해병대 용맹성을 발휘했다. 2011년에는 연평도 포격전을 적의 포탄 속에서도 적의 기습 포격에 응징하는 해병대의 용감성을 발휘하여 “싸우면 이기는 자랑스러운 해병대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였다. 4월 13일 신임 김태성 해병대사령관 취임사에서 "다양한
16세기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출발한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 명제로부터 21세기의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는 욕망충족의 소비형 인간 명제에 이르기까지 이 사이에는 수많은 인간 명제가 존재할 수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명제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까뮈의 명제와 ‘나는 반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브레히트의 명제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다움의 정체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삼 년 전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얘기만 들었을 때는 헛웃음으로 넘겼지만, 영혼을 끌어서라도 아파트와 주식에 매몰하는 ‘영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왠지 모르게 명치 끝이 심하게 저렸다. 그런데 부동산 관련 뉴스가 남한 사람들의 모든 대화를 잠식하는 오늘에 이르러서 나는 맨붕이 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욕망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남보다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적인 행위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정신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가는 쾨테가 파우스트에서 예언한 ‘영혼팔이’ 곧 인간성의 타락 내지는 파멸을 보면서는 자포자기하지 않을 수 없다. 뭐 그렇게 내가 뛰어난 사
사물을 대하는 데는 사랑이 없어도 괜찮다. 즉 사랑없이 나무를 베고 벽돌을 만들고 쇠붙이를 쳐도 괜찮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데는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 그것은 함부로 벌을 다뤄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벌의 성질로 보아 만약 이를 함부로 다룬다면 벌도 다치고 인간도 다친다. 인간은 일할 생각이 있으면 일할 수 있지만, 사랑의 실천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가만히 앉아 자신을 돌아보는게 좋다. 배가 고플 때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유익한 것처럼, 사람을 대하는 데는 오직 사랑이 뒤따라야 유익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 한번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하기 시작하면 결국 사람들에 대한 잔인함과 냉혹함의 한계가 사라지고, 너 자신의 고통에도 한계가 사라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계율인 ’원수를 사랑하라‘가 실제로 지켜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나는 절대로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기독교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 (레싱)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 즉 온갖 종류의 폭력과 강제, 형벌, 심지어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이 일어났다. 유튜버가 직캠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 게재했고 이것이 군생활의 추억을 소환해 단숨에 브레이브걸스를음원차트 1위에 올렸다. 이후 jtbc 아는형님, SBS 런닝맨 등 방송무대의 핫한 출연자가 되었다. 디지털 공간에서 소비자가 만들어낸 사회현상이다.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상위에 올라야 음원 차트를 장악하던 과거와 확실히 다른 현상이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지상파TV 못지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지상파 방송이나 신문을 레거시 미디어라 부르는 학자들이 많다. 레거시란 유산,잔재 등 낡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레거시 미디어란 과거의 매체이자 유산이란 말이다. TV와 신문이 헐값에 폄하되고 있다. TV와 신문을 자주보는 나도 레거시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철지난 꼰대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까치는 항상 정겹다. 어린시절 설날 노래에 등장하는 까치는 세뱃돈을 물어다 주었기 때문이다. 까치가 포악하고 매우 전투적인 조류란 생각이 안든다. 비둘기는 평화와 온건함이고 매는 강경하고 전쟁도 불사한다. 매와 비슷한 독수리는 용맹의 상징일 뿐인데 언어의 상징이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로 구체화되고 소통된다. 반대로 이렇게 사용하는 언어는 인간사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