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서 부모의 자양분으로 성장한다. 또 행복한 삶의 일환으로 직장과 창업의 일원이 된다. 직업은 삶과 직결된다. 저마다 삶의 목표가 필요하듯 직업을 통해 인생을 그리며 희망을 심어가고 있다. 그래서 행복발전소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경기악화와 경제부진으로 높은 실업률에 반실업자 신세에 놓인 이들이 부지기수다. 성남시만 해도 어림잡아 4~5만 명이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불안정스럽다. 요즘 일자리 창출이 화두다. 그런데 갈 길은 멀다. 각 지자체가 지역주민들 일자리 마련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자리 마련은 시민 섬김의 으뜸이다. 위민 구호보다 작은 일자리 창출이 무게를 더한다. 성남시도 이에 집중하고 있다. 관내 관급공사장에 성남시민 고용 의무제가 시행되고 있다. 최근 본격 시행되며 현장서 볼멘소리도 들린다. 그렇다고 시민고용 의무제(?)를 후퇴할 순 없다. 지역주민 참여는 필수다. 지역에서 추진되는 온갖 사업 등에 주민 참여는 지당한 일이고 주민참여가 지방자치의 근본이기에 그렇다. 특히 관급공사는 혈세인 만큼 지역주민 참여는 숙명이다. 시는 보다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갈 것이다. 또 하나는 지역 등록업체가 상대적으로 많이
문화란 역사적,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항상 변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와 저 나라의 문화는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문화의 중요한 일부인 예술의 높 ,낮음이 그 나라의 국격을 좌우할 수도 있는데……. 숫자로 계량화 할 수는 없지만 대강 답은 나오는 법이다. 백범 김구 선생 어록에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문화”라는 말씀도 있다. 지난주 중국 북경(北京)을 다녀왔다. 하여간 여러모로 엉뚱한 나라, 호감과 비호감이 겹치는 나라여서, 솔직히 평소에는 별로 탐탁지 않다. 그러나 북경에 가면 즐겨 들리는 곳이 있다. 다산스798- 흔히들 북경예술구라고 불리는 곳인데, 서울의 인사동쯤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도시라고 해야 할 만큼 규모가 크다. 과거 냉전시절에 소련과독일의 지원을 받아 모택동시절에 대포나 총기류를 만들던 군수품공장이다. 외벽은 붉은 벽돌이며 건물자체가 낡고, 주위의 초고층빌딩 가운데 납작 엎드려있어 어쩌면 흉물스럽다. 한때 북경 당국에서 이 건물들을 없애자는 결론을 내렸는데 전국의 유명 예술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왜 역사를 부정하려고 하느냐? 낡고 불편한 것도 엄연한 역사! 오래된 것에 새로움을 입히자고 주장했다.
1776년 3월 조선조 제22대 왕으로 즉위한 정조가 비운에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1789년에 수원부 화산(현 화성시 태안읍)으로 옮기고 지극한 효성으로 이곳을 자주 참배했다. 참배시 행해진 왕의 행렬은 수원시가 매년 치러지는 화성문화제 행사에서 재연하고 있다. 모두 13차례 화산 능행차중 가장 대규모로 시행된 1795년 2월 능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반차도 그림에 나타난 사람이 1천505명, 말이 516필이다. 그림에 생략된 사람과 본 행사에 동원된 전체인원은 사람이 5천661명, 말이 1천417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975년은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태어난지 60년이 되는 해이며 정조가 즉위한지 20년이 되는 경사스런 해였으며 이해에는 수원행궁에서 혜경궁홍씨 회갑연, 노인잔치, 과거시험 등이 치러졌다. 수원시는 이 행렬을 세계최대의 가두 퍼레이드로 발전시키기 위해 세계문하유산인 화성축성 2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96년부터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정조대왕의 효심을 배우려고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 250명이 24일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화성 융건릉에서 참배하는 정조의 능행차길 62㎞ 순례에 올랐다. 순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이 되었지만 지방재정은 거꾸로 가고 있다. 즉 말로만 지방자치이지 지방자치의 실질적인 기반인 지방재정의 중앙 의존 및 재정부담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방분권이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재정이 악화돼가고 있다면 크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경기개발연구원이 발간한 ‘지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재정현실’(이슈&진단 10호)을 보면 정부가 지방자치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더욱 중앙으로 종속시키려는 것인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자료에 따르면 1992년 69.6%였던 재정자립도는 2011년 51.9%로 하락했다. 지방세수와 세외수입 등 ‘자주재원’ 비중은 줄고 보조금과 지방교부세 등 ‘의존재원’ 비중은 크게 늘었다. 1995년 41.8%와 24.6%였던 지방세수와 세외수입 비중은 2011년 각각 35.3%와 21.0%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보조금(8.8%→ 21.7%)과 지방교부세(15.5%→ 19.4%) 비중은 증가했다. 이에 더해서 급증하고 있는 사회복지 예산도 지방재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정치권에서 포퓰리즘 논란이 일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복지분야 예산이 증가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고 복
과천 지식정보타운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과천시민들이 여인국 과천시장 주민소환에 착수했다. 시민들이 지자체장 주민소환 절차에 들어간 것은 2007년 하남시, 2008년 시흥시, 2009년 제주도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보금자리주택 정책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위는 과천시 선관위에 여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해 지난 19일 서명부와 증명서를 교부받았다. 주민소환 청구 이유는 여 시장이 보금자리주택 계획에 동의해 과천시의 ‘가치’를 훼손하고 정부청사의 세종시 이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하는 등 무능해 그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고 한다. 비대위는 19일부터 60일 동안 주민소환 서명을 받을 수 있으며, 과천시에 등록된 유권자 5만4707명 중 15%인 8207명의 서명을 받으면 주민소환 투표를 할 수 있다. 주민소환 투표제는 2007년 7월 1일 시행됐다. 지방자치에 문제가 있을 때 지역 주민들이 일정 수의 서명을 받아 해당 선출직 공직자의 소환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를 실시, 그 결과에 따라 탄핵하는 제도다. 그렇다면 과연 비대위가 주민소환의 이유로 내세운 ‘보금자리주택 계획에 동의해 과천시의 ’가치‘를 훼손하고’의 ‘가치’에 대해 그 본질이 무엇
유비쿼터스(Ubiqitous) 멀티미디어 사회로 지칭되는 21세기 사회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고, 사회 각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왔다. 특히 디지털관광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급격한 확산에 따라 관광산업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관광산업이 인터넷을 활용해 보다 창의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고 고객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 빠른 성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SNS 시대적 흐름은 더욱더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이며, 관광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 트렌드 변화에 발맞춘 능동적 대처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미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2006년 LogIn Tourism을 통해 관광문화와 최신 IT기술을 융합한 관광산업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인터넷과 연결되는 관광산업에 관한 장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모든 국가에서 관광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의 표현이었으며, 좀 더 관광중심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의 한 일환으로 보여졌던 게 사실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대중매체에서 소셜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향후 가
담장을 기어 오른 새빨간 넝쿨장미가 사랑을 토하는 아침나절이다. 오늘도 바쁜 일로 정신이 없는데 현정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지금은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이따 다시 걸라고 하고 얼른 끊었다. 현정이는 하루에 한 두 번씩 나에게 꼭 전화를 한다. 무슨 일이 있어서 할 때도 있지만 그냥 할 때가 더 많다. 그래도 나는 현정이의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기쁘다. 오늘은 나더러 통화를 해도 괜찮겠냐고 묻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무슨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현정이와 말을 더 하고 싶었으나 전화를 오래 붙들고 있으면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스스로 조심을 한다. 어떤 날은 일이 너무 바빠 전화를 하거나 받을 시간조차 없을 때도 있다. 눈치 빠른 현정이도 아빠의 이런 사정을 알아차린 듯 긴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이 직장에 입사를 한지도 어느덧 1년 반이나 됐으니 세월은 정말 빠르다. 이곳은 내가 건강 때문에 선택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일터다. 입사를 했을 당시에는 처음 해 보는 일이라 힘도 들고 실수도 많아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럴 때 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참고 또 참았다. 하루…
2002년 10월 19일 부산 사직구장. 가을비로 그라운드는 촉촉이 젖어 있었고, 관중석은 썰렁하기만 했다. 한화와의 경기를 앞둔 롯데 프런트에선 경기시작 시간이 다 되도록 텅 비어 있는 관중석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사직구장 입장관중은 69명. 시즌 최소관중 기록이었다. 그러나 롯데는 그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다. 롯데는 이날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기념해 롯데 로고가 찍힌 옷이나 모자를 착용한 관중을 무료 입장시켰으나 입장관중 가운데 롯데 로고를 보여준 관중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날의 사직구장 관중은 역대 두 번째 최소 관중수로 기록됐다. 역대 한 경기 최소 관중은 1999년 10월 7일 전주구장에서 열린 쌍방울과 현대의 경기로 54명이다. 1991년 프로야구 8구단으로 시즌에 합류한 쌍방울은 IMF이후 모기업이 위기를 맞으며 상황은 날로 어려워져갔다. 1999년 들어 KBO에 의한 위탁 관리가 이뤄지고, 설상가상으로 팀의 주전들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였다. 쌍방울은 1999년 시즌단일 시즌 최다 패 기록인 97패(28승 7무)를 기록하면서 프로야구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롯데는 이날의 패배로 97패를 기록하며 쌍방울과 같은 한 시즌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대문구장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이 치러졌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지금 프로야구는 30번째 시즌 개막을 기록하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성장했다. 초창기 2천400만원에 불과했던 선수 최고 연봉은 7억원으로 치솟았고, 연간 140만 명이었던 총 관중 수도 올해 600만 명 시대를 열어젖힐 태세다. 출발 당시 6개 구단이던 국내 리그는 최근 제9구단 합류가 결정됐고 중계권료와 마케팅 수입이 대폭 늘어나는 등 월등하게 성장한 선수들 덩치만큼이나 수많은 외형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야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즌이 개막되면 시민들은 열광한다. 경기도지역을 연고로 하는 구단이 없다는 것은 1천만명이 넘는 도민들을 슬프게 하는 일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원을 연고로 하는 현대 유니콘스가 있었지만 이 구단은 그룹의 해체라는 쓰라린 경험을 겪은 뒤 현재는 서울연고의 넥센리어로즈로 운영중이다. 당시 현대유니콘스는 수원이 홈이라고는 하지만 경기때마다 방문구단의 팬이 더 많을 정도로 지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현대유니콘스가 서울의 큰 시장만을 노리고 연고지인 수원에는 등을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