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은 거친 폭우와 함께 맞이하게 되었다. 가정의 달 5월을 절반 이상 보낸 지금, 역사가 남긴 상처로 아직 아파하는 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친척인 것이다. 김재홍의 2004년 작 <아버지: 장막 1>은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존재 그 자체를 그린 그림이다.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하며 누워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계신지 갈비뼈는 한껏 하늘을 향해 있고 겨드랑이와 배는 쭈글쭈글하다. 아버지의 몸을 기다란 곡선으로 횡단하고 있는 상처가 안타깝다. 아직 아물지 않았는지 상처는 벌어져 있고 혈흔은 번져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단순히 상처가 아니다. 기다란 철조망 장벽인 것이다. 아버지의 몸은 바위산이고, 기다란 철조망은 바위산 위를 구불거리며 길게 드리어져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서 2020년 기획 전시 <광장>을 통해 몇 년 만에 관객에게 선보였다. 아버지의 몸 위를 횡단하는 철조망은 단연 분단된 이 나라의 아픔을 뜻하는 바이겠지만,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장으로서 남모를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지인의 부친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해남을 거쳐 청산도를 다녀왔다. 해남은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로 유배 문학의 산실이다. 이곳에 문학촌이 필요한 이유이다. 달마산 미황사에서 지낸 49재는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이다. 남겨진 이들의 정성을 모으는 것은 결국 가족 간의 우애를 위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달마산 미황사는 1300년 된 고찰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잘 보존된 보기 드문 완벽한 형태의 고찰이다. 이곳에 와보면 누구나 잘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찰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이어진 달마산 역시 금강산의 기상을 닮아 봉우리가 멋지다. 49재를 마치고 489m인 달마산을 올라갔다. 군부대용 찻길이 나있어 300m지점까지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 바다를 보며 자연스레이 청산도 이야기 나왔고 만장일치로 여수항으로 출발했다. 여수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청산도로 들어갔다. 소요시간은 50분이다. 민박은 행복마을의 한옥을 선택했다. 늦저녁 회 센터에서 광어와 문어, 소라 등을 사서 밤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침 기상 후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둘레길을 걸었다. 청산도는 1993년에 제작된 임권택 감독의 명편 ‘서편제’의 촬영장소이다. 남도의 여
정부가 매년 전국의 토지와 건물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공시가격이 ‘들쑥날쑥’ 엉터리라는 시중의 지적이 사실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발표한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운영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가격 산정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공시가격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재산세 등 각종 세제 부과 기준은 물론 건강보험료와 기초연금 등 사회복지에도 사용되기 때문에 부실산정은 심각한 민심이반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전국 단독주택의 약 5.9%인 22만8천475호의 개별주택가격(토지+주택)이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공시지가가 개별주택가격보다 2배 이상 높게 역전된 경우도 2천419호에 달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가격 역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자체 내의 토지와 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부서가 달라 동일 토지임에도 토지용도 등의 토지특성을 각각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용도지역 정보가 탑재된 국토부의 부동산종합공부시스템(KRAS)이 지자체의 산정 시스템과 연계되지 않아 전국 토지(약 3천300만 필지) 중 12만1천616필지(0.36%), 개별주택(약 390만호) 중 6천698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국민들 가운데는 친환경재배농가와 납품업체도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개학이 연기되고 학교 급식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에 경기도가 경기도교육청, 경기도의회, 경기시장군수협의회, 경기시군의회의장협의회와 함께 친환경재배농가와 납품업체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학부모 부담을 덜기 위해 뜻을 모았다는 소식이다. 경기도내 초·중·고 등 모든 학생(169여만 명)가정에 1인당 10만원 상당의 식재료꾸러미·모바일상품권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개학을 했어야 하는 지난 3월부터 5월 현재까지 사용하지 못한 학교급식경비를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미사용 학교급식경비는 총 1천700억 원(도 교육청 879억, 도 235억, 시·군 586억)으로써 경기도내 초·중·고 등 모든 학생 169여만 명이 1인당 10만원씩 받을 수 있다. 다만 시·군별로 지원 규모가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긴급 돌봄 예산 등으로 학생들에게 이미 지원을 한곳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확보돼 있는 학교 급식 예산을 활용, 친환경농산물을 구입해 학생가정에 배달해주는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선도하고 있는 곳은 전라남도와 경기도다. 더불어민주당도 총선 전 농산물 꾸러미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까지로 연장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를 맞으면서 중년기 이후 삶을 더 풍부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흔히 말하는 월급쟁이인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골드칼라로 있다가 퇴직 이후 재취업이나 자영업자로 변신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필자가 케어하고 있는 사람들 중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평소 잘 알던 분야의 사업을 하거나 잘 모르던 분야라도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자영업이나 창업에 성공한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라스렛(Peter Laslett)은 ‘신선한 인생지도(A Fresh Map of Life)’라는 책에서 ‘생애주기 4단계론’을 주장하면서 ‘제 3기 인생론’의 중요성을 전파시켰다. 사람의 인생을 1기부터 4기까지로 구분하면서 퇴직 이후 건강하게 지내는 노년기(60~90세)를 ‘제3기 인생(the third age)’이라고 하였다. 이 시기는 퇴직하여 자기 적성이나 재능에 맞고 자기가 원하고 바라던 활동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며 삶을 살아가는 개인적 성취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일상에 쫓기는 대다수 사람들은 눈앞에 닥친 은퇴에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서
계모 왕비가 마법의 거울에 묻는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지?” 그러자 마법의 거울은 “왕비님도 아름다우시지만, 백설공주가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분노한 왕비는 사냥꾼을 시켜 공주를 죽이고 증거물로 심장을 가져오도록 명령한다. …1937년 미국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만든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라는 애니메이션 도입부의 한 대목이다. ‘볼록거울’이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도 그렇고, 미래통합당(새누리당)의 잇따른 선거패배도 마찬가지다. 최근 민심을 들쑤시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의 파장에도 ‘볼록거울’의 저주가 스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력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인사나 집단은 어김없이 오만방자(傲慢放恣)의 역병에 걸린다. 그들에게 되돌아오는 죗값 또한 반드시 가혹하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살던 예순 살의 한 남자가 막냇동생뻘 되는 입주민 남자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해 억울하다며 목숨을 끊었다. ‘아파트 입주자’가 무슨 대단한 권력이라고 가해자는 힘없는 경비원에게 그런 고약한 슈퍼 갑질 행패를 저질렀을까. 고인이 남긴 육성 녹음 내용으로 유추하자면, 가해자는 최소한 방자한 가치관의 노예임이 분명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서구사회에서 근대 신문은 절대왕정과 대립하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을 대변하면서 시민혁명에 앞장선 자랑스러운 역사를 구축해 왔다. 존 밀턴은 1644년 <아레오파기티카>에서 진리와 허위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대결할 때 진리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며 영국정부의 검열에 반대했다. 언론의 자유주의 이론의 뼈대가 된 기념비적 논문이다. 17~18세기 카페나 살롱이라는 공간에서 시민사회의 토의내용이 신문을 매개로 의회를 통해 입법화되고, 정부정책 집행으로 선 순환했다고 커뮤니케이션 학자 유르겐 하버마스는 분석하고 이 시대를 ‘공론장’이 제 역할을 한 시기로 정리했다. 유럽언론은 프랑스혁명을 잉태했고, 미국 신문은 독립운동의 전위에 섰다. 우리나라도 개화기 서재필의 독립신문을 필두로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중심에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도 민족계몽운동 역할을 담당했으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언론인은 지사(志士)로서 국민을 계몽하는 훈민적(訓民的)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21세기 신문은 정보화기술의 혁신에 따른 경쟁 매체 영향력이 줄어드는 동시에, 생존과정에서 발생한 상업화 문제를 안게 되었다. 신문은 언론 출판의 자유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문 즐기는 얼굴”이란 음성 유서도 남겨 충격을 주고 있다. 특정입주민 한 개인의 폭언폭행과 비인격적인 행위로 빚어진 일이라고 돌리기에는 우리사회가 지닌 병폐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공동주택은 경비원, 미화원의 역할을 꼭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입주민의 노예가 아니며 함께 살아가는 상호의존적인 공동주택의 구성원이다. 험하고 힘든 일을 한다고 해서 멸시의 대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전 국민의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분쟁을 조정할 제도적 장치는 미비한 상황이다. 이처럼 제대로 된 문제 해결 기구와 대안의 부재는 공동체의 훼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원의 상당수는 아파트 또는 공동주택의 ‘관리주체’와 주민간의 불신과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입주자대표회의, 선거관리위원회, 관리주체, 그리고 입주민과의 관계에서의 분쟁과 알력이 원인이 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현장에서 이들의 분쟁해결은 안개속처럼 희미하고 아득하
아침에 산에 오르니 아까시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 아까시꽃이 피면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아까시나무를 심은 곳은 고종황제 때 미국회사에서 경인 철로를 놓을 때였다. 철길을 내기 위해 산기슭을 잘라내니 산사태가 날 염려가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당시 중국에서 번식하던 아까시나무를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그 아까시나무가 강한 번식력으로 이 나라 산천을 뒤덮었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 가도 아까시나무가 없는 곳이 없다. 그런 아까시나무가 이제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아까시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다른 수종을 심고 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아무리 제거해도 그 끈질긴 생명력을 완전히 몰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땅 자갈밭에서도 잘 자란다. 뿌리에서 스스로 자양분을 만들어 그 뿌리를 넓고 길게 뻗쳐 나간다. 산소 주변에 아까시나무가 있으면 그 뿌리가 무덤 속까지 파고든다며 꺼려했다. 심지어는 불길이 드나드는 구들 아래까지 아카시아 뿌리가 뻗는다고 집 주변에는 아까시나무를 심지 않는다. 사실이 그러하다. 본래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땅에 심는다. 아까시나무는 번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밟아도 솎아내도 일어서는
4·15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의 ‘개헌’ 열망이 간단없이 부상하고 있다. 당선자들 사이에서 시나브로 불거지던 ‘개헌’ 이야기가 문재인 대통령의 “5·18정신을 담는 개헌” 필요성을 강조한 5·18 기념사를 기점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올 조짐이다. 개헌은 필요하다. 여야는 동상이몽하고 있는 당리당략적 접근을 모두 제거하고 오직 ‘국가백년대계만’을 놓고 정직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비록 ‘개헌이 논의된다면’이란 조심스러운 전제를 달긴 했으나 ‘개헌’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 셈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호응하고 나섰다. 안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5·18의 역사적 사실과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자”며 “국가 권력의 사유화를 막을 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때맞춰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맞장구쳤다. 다만 제1야당인 통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