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은 1796년 9월 10일 완공하였노라.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들어 온갖 물건이 무르익고 있다...(중략)...조선 400여 년 역사에 처음 있는 큰 공사를 2년 만에 이처럼 이루었다. 궁실이 거대하고 화려하니 오늘 낙성 잔치를 어찌 성대하게 열지 아니 하리오? 오늘 낙성 잔치를 베풀어 화성 성역에 참여한 모든 장인과 백성들 모두는 풍류를 즐기고 불취무귀(不醉無歸) 하기를 바라노라” 지난 18일 열린 ‘2025 수원화성 축성 장인명패 봉안문화제’ 낙성연 행사 중 화성성역 총리대신 좌의정 채제공 역을 맡은 화성연구회 회원이 낭독한 낙성연 교지 내용이다. 낙성연은 화성 성역에 참여한 이들을 위로한 잔치다. 올해 수원화성 축성 장인명패 봉안문화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 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 회장)가 주최하고 대한불교 (재)선학원 팔달사(주지 각소 스님)가 공동주관하고 있다. 3000만원이 넘는 행사 경비도 화성연구회와 팔달사가 부담하고 있다. 순수민간 단체인 화성연구회가 이 행사를 여는 이유는 세계유산 화성을 축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석수, 목수,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니 공기가 달라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열면 남은 여름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바람 끝에 서늘함이 묻어난다. 거리의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고, 출근길엔 연휴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마음 한켠은 여전히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쉬는 중이다. 연휴가 끝난 뒤 찾아오는 묘한 공허감, 그리고 다시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 잠시 멈추어 쉬었을 뿐인데, 세상은 나만 빼고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쉬는 일조차 조급하게 했나 보다. 푹 쉬었으니 이제는 다시 달려야 한다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쉰다는 것은 단순히 멈추는 일이 아니라, 다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숨 고르기 아닐까. 돌이켜보면, ‘쉼’이라는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쉬는 시간에도 다음 일을 준비하던 습관이 몸에 밴 채로 어른이 되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계획이 없으면 조급해졌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삶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바쁘게 달리던 말도 잠시 쉬어야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듯이, 사람도 그럴…
시를 공부한다는 여성에게서 문자가 왔다. 명절이 끝나는 마지막 날 카페에서 만나고 싶다고. 이어서 그는 수필을 공부하고 싶어 꼭 두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순간의 느낌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풋풋한 야성(野性) 같은 감성이었다. 가을이 되면 강의실도 뭔가 달라져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가요를 한 곡 불러주기도 하고 악보를 나눠주면서 같이 부르며 가을날의 정서를 강의실에 담아내곤 한다.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 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 하고 앉으면/ 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 소리… ” 나는 이 노래 가사에 마음이 끌려 부르게 되었다. 작사가(김지평)의 마음과 내 마음이 포개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지리산을 의무적인 과업으로 알고 오르내리면서도 통나무집 창가에서 밤을 새우며 울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숨어 우는 목소리 같은 바람소리며 젊은 날의 그녀 얼굴이 주름진 내 가슴에 안기는 듯해서 좋았다. 그러한 가슴과 눈빛으로 갈대의 몸동작을 바라보면서 산을 오르고 내리면 또 생각나는 일들이 있었다. 마당가에 첫서리가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정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의 충격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책이 초래한 부작용과 규제 형평성 논란이 정책효과에 대한 기대를 압도하는 양상이다. ‘공급계획’ 없이 ‘수요억제’만 갖고 되겠느냐는 지적이 주류다. ‘현금 부자들만 집을 사라는 얘기냐’는 불만도 나온다. “묶을 곳은 빼고, 풀릴 곳은 묶였다”며 규제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까지 높다. 하루속히 비현실적 조치에 대한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는 여론이다. 정부는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재지정했다. 최근 몇 달 새 아파트값이 급등한 화성 동탄신도시와 구리시는 규제에서 빠진 반면, 거래량이 급감하고 가격이 정체된 수원·의왕 등이 포함되면서 “묶어야 할 곳을 오히려 풀어줬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투자 수요가 엉뚱한 지역으로 쏠리는 ‘풍선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함께 과천·광명성남(분당·수정·중원)·수원(영통·장안·팔달)·용인 수지·안양 동안·의왕·하남 등 12개 경기도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였다. 2023년 1월 해제된 지 2년 9개월 만에 경기권에서 규제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행사가 끝났다. 사실 1945년 10월에는 당의 전신인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창립됐고, 김일성은 그 직후 평양 군중대회에서 첫 대중연설을 한 뒤 연말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이듬해 초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북한의 지도자로 커갔다. 조선노동당은 그 뒤 1949년 6월 조선공산당의 후신인 남로당과 합병 창립됐다. 노동당은 북한의 헌법과 당규약을 통해 국가의 모든 활동과 군의 모든 정치군사활동을 영도한다. 잘 알려진 대로 1990년대 경제위기 때 선군정치 체제에서는 군이 앞장서기도 했지만, 2011년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 이후 김정은 체제에서는 당대회 등 당기구가 정상 운영되면서 그 위상이 회복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달 9일 북한의 노동신문·군보·청년보 공동사설은 당의 영도를 강조하면서 군이 “무한히 충직한 최정예강군”이 될 것을 요구했다. 이번 당 창건 기념행사에서 내외의 이목을 집중한 것은 역시 10일 심야에 펼쳐진 열병식이었다. 김정은은 행사 축하차 방북한 중국의 리창 총리,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또 럼 베트남공산당 서기장 등과 나란히 섰고, 이는 북한의 요즘 국제 위상과 지향성
내 집 주소의 도로명은 ‘태봉안길’이다. 이때 ‘안길’의 의미를 귀촌인인 나는 잘 몰랐다. 알고 보니 그 길은 예전 지게 지고 다니던 좁은 길이 소유자의 동의로 보상 없이 넓어진 길이다.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가지만, 그 비약적 확대는 1970~8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다. 새마을노래 2절 가사에 ‘마을 길도 넓히고’라는 가사가 나오는 이유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함께 농사를 짓던 시대였으니 마치 논물을 같이 쓰듯이 마을 길을 공공사업으로 만들겠다는 공동체와 정부의 요구를 당시 땅 소유주들이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태봉안길’은 ‘태봉마을’의 ‘안길’ 즉 예전 논밭 지겟길이 차나 트랙터가 다니는 길로 바뀐 길이다. 이렇게 사유지가 공공 도로로 사용되는 길이 이른바 ‘마을안길’, ‘비법정도로’, ‘사실상 도로(현황도로)’, ‘미지급용지(미불용지)’ 등으로 불리는 길이고 새마을운동이 휩쓴 전국 농산어촌에 엄청나게 산재해 있다. 그렇게 40~50년 전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무료로 내놓은 길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의 집을 짓지도, 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숱하게 이 길을 이용하면서도 한번 사용료를 낸 적도 없으니, 길을 다닐 때마다 지금은
경기환경운동연합 등 기후·환경단체가 도내 26개 시·군청의 일회용 컵 반입·사용 현황을 모니터링한 결과 일회용 컵 사용 비율이 결정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다. 일회용 컵 사용률은 오염으로 급속히 망가져 가는 지구촌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다. 일선 시·군청 직원들의 환경 의식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모순은 하루속히 개선돼야 한다. 이 정도 인식 수준으로 어떻게 민간의 환경 인식 전환을 견인해낼 수 있나. 경기환경운동연합과 11개 기후·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22일부터 30일까지 도내 26개 시군청의 일회용 컵 반입·사용 현황을 모니터링했다. 다만 수원시·고양시·파주시·하남시·포천시 등 5개 곳은 지자체 내부 사정으로 모니터링 대상에서 제외됐다. 모니터링 결과 반입된 음료 컵 중 일회용 컵 사용 비율이 평균 92.07%로 시군청사의 직원 10명 중 9명꼴로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거의 모든 직원이 거리낌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안양시·의정부시·여주시·연천군은 일회용 컵 사용률이 100%였으며 용인시(수지구청)·시흥시·양평군·가평군은 사용률이 67~79%대로 비교적 낮은 수치를 보
“아빠, 전세계에서 전쟁이 터질 것 같애” 며칠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아들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20대 후반인 아들이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요즘 온통 전쟁위기란다. “우크라이나, 가자지구도 그렇고, 중국이 대만을 곧 침공할 것이라 하고요. 지금 미국 안에서도 난리가 아니잖아요. 북한도 요즘 심상찮데요. 아.. 난 아직 동원예비군인데..” 한참을 고민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급발진하는 청년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것이 능사일까? 문제는 더 위험해지는 세계를 공포로만 대하지 않고 원인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할텐데 말이다. 역사적으로 극우파시즘은 공포와 분노를 먹고 자란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결정하고 젊은이들은 전장에서 쓰러진다. 내가 보기에 정작 전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전쟁을 대하는 반지성주의이다. 트럼프가 방위비를 GDP대비 5%까지 올리라고 압박하면서 K-방산이 호황이란다. 여기에서 돌아보자. 전쟁위기가 커질수록 가장 덕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군수산업이다. 그중에서도 국방예산에 관해선 압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에게 가장 큰 파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2025년 미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