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 서구 공촌정수장의 수계전환 과정에서 이물질이 유입되면서 서구와 강화·영종지역 주민들이 붉은 물 피해를 3개월 넘게 겪었다. 적수사태 발생 이후 7월 25일 구성 운영된 인천광역시 상수도 혁신위원회 활동이 끝났다. 인천에서 발생한 수돗물 문제는 운영자의 운영 잘못이 직접적인 원인이기는 하지만, 수돗물을 공급하는 각종 시설과 관망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와 아울러, 관계규정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제도상의 문제가 함께 있다. 특히, 통합물관리 명목으로 안전한 물 공급을 책임져왔던 상하수도국과 수도정책과를 폐지한 환경부와 상수도 시설 유지보수에 충분한 예산을 반영하지 않은 당국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상수도 보급률이 98%를 넘어선 현재 상수도 정책은 공급자 위주의 수량관리 중심에서 과불화물이나 미세플라스틱 등의 오염물질 제거를 위한 정수시설 개선과 관망개선을 통한 수질관리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하는데 환경부는 물환경정책국과 상하수도정책관, 그리고 국토교통부의 수자원정책국 등 기존 체계를 물을 총괄하는 물통합정책국과, 수질 및 생태를 중심으로 하는 물환경정책국, 수자원을 중심으로 하는 수자원정책국 등 3국으로 바꾸며 수도정책과를…
용인시가 인터넷 등 일부 언론들의 횡포에 맞서 자구책을 마련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적절한 대응이어서 적극 환영한다. 그동안 시를 출입하는 일부 기자들은 보도자료가 없으면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런 기자일수록 공무원들에게 위압적이거나 심지어 육두문자까지 사용했다. 정론을 추구하는 기자들의 명예도 함께 훼손됐다. 급기야 취재무능력을 스스로 고백하는 광고관련 정보공개도 청구했다. ‘정보공개 전문가’라는 별명이 붙은 기자님(?)도 있다. 이들은 여러 명분을 들어 정당성을 외치지만 속내는 광고다. 지급여부와 액수 타령, ‘누구는 주고 나는 왜 안주느냐’는 식의 막무가내까지 다양했다. 여기저기 ‘적반하장(賊反荷杖)’에 ‘주객전도(主客顚倒)’였다. ‘빌려준 돈 내놓으라는 식’의 생떼를 부렸다. 시가 빚쟁이냐는 항변이 속출했다. 몰상식한 행위들을 시는 오래 참았다. 그러다 이번에 뽑은 칼이 ‘용인시 광고시행 등에 관한 조례’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조례에 합당한 언론에만 광고비 등을 집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소위 말하는 ‘기레기들’의 숨통을 쥐겠다는 강한 무기다. 기레기들의 취약점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인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수원시청 상황실에서 수원시 매교동 일대 재개발지역의 도로변 전선 선로 지중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식이 열렸다. 매교동 일대 4개 재개발조합(113-6구역, 115-6구역, 115-8(팔달8)구역, 115-9(팔달10)이 선로를 지중화하는 공사에 필요한 사업비를 부담하고, 수원시는 이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이들 4개 재개발사업은 오는 2023년에 완료되는데 모두 1만2000여 세대가 입주한다. 또 하나의 작은 신도시가 생기는 것이다. 광명시도 지난해 9월 19일 한국전력 광명지사를 비롯한 6개 통신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광명동 원도심 거리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전신주 지중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간 수정·중원 원도심의 13.6㎞에 달하는 공중선을 지중화한 성남시는 올해 수정구 탄리로와 중원구 둔촌대로 3구간의 전선을 지중화했다. 전선이나 송전탑 지중화 문제로 인한 갈등도 발생한 바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안성시민과 한전 간의 갈등이었다. 안성시민들은 2014년부터 5년 동안 서안성~고덕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라고 요구했다. 한전과 삼성전자가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전력을 안성에서 끌어오려
약방에 감초가 없으면 약을 처방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감초 하나로 보면 별것 아닌 약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약의 효능과 전체 구성에서 보면 뺄래야 뺄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나라에서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은 ‘약방의 감초’와도 같이 현대산업사회의 성장가치 창출을 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을 더하며 긴 세월을 국가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대한민국의 예술인으로 살고 있거나 혹은 살아온 것에 대해 충분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한 국가나 지방정부의 가치체계를 규정짓는 척도는 예술문화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진국의 척도가 경제지표(1인당 GNP) 외에 그 구성원의 삶의 질을 대변하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평가하는 것 또한 이에 다름 아니다. 이는 경제적 독립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의 동반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외국과 중산층의 개념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그것은 경제적 관점으로 규정짓는 데 반해 유럽과 미국은 페어플레이정신 및 예술문화를 즐길 줄 아는 예술
균형 잡힌 관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매우 어렵다. 인간이 행동을 하기 전에 올바른 관점을 갖지 못한다면 인간의 행동은 의미가 없거나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균형 잡힌 관점과 열린 사고는 인간 행동의 기준이며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개인은 나름대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 관점은 소중한 경험들이 쌓여 자신만의 관점과 세계를 형성하고 있고 고착화되면서 특징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균형을 잃을 수 있고 자신만의 틀 속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즉 이러한 균형 접힌 관점과 닫힌 사고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타인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곤한다. “균형 잡힌 관점”과 “균형 접힌 관점”은 글자 하나만 다르지만 내용면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자신의 동공에 투영되어진 것만을 믿고 본래 온전한 모습의 일부만을 받아들여 해석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일한 것에 대해 개인들이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관점의 차이를 갖으며 균형이 없는 사고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의 관점이 균형이 없는 닫힌 사고라고 할 수 없지만 모
1960∼70년대 암 진단을 받고 나서 5년 후까지 살아있으면 완치라고 보았다. 반면 5년이 지나기 전에 사망했다면 치료 실패라고 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5년 생존율’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암 환자에 대한 통계를 얘기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 역시 ‘완치율’ 대신 ‘5년 생존율’로 통계를 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엊그제 ‘암’에 대한 반가운 통계를 발표했다. 암 사전검진과 치료기술 발달로 우리나라 암환자의 ‘생존률’이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2~2016년 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일반인과 비교해 5년간 생존할 확률은 70.6%로 2001~2005년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 54%보다 1.3배 증가했다. 특히 국가암검진사업 대상인 위암, 대장암, 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의 2012~2016년 생존율은 우리나라가 70.6%로 미국(69.2%), 캐나다(60%), 일본(62.1%)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다. 암종별 생존율은 갑상선암(100.2%), 전립선암(93.9%), 유방암(92.7%) 순으로 높았고 간암(34.3%), 폐암(27.6%), 췌장암(11%)의 생존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암종별 생존율은 100%에
“정말 오랜만이지? 우리 밥 한 번 먹자.” 참으로 오랜만에 전화로 들어보는 친구의 음성은 상기된 듯 낭창거리고 있었다. 어린 날의 추억을 함께 품은 친구였기에 소식 뜸한 동안에도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다. 그렇게 한 삼십 분을 떠들다 전화를 끊은 친구가 열흘이 지난 오늘 ‘평택역’이란다. 정말 한 이십 년 만에 밥 한 번 먹게 되는 것이다. 미리 도착한 커피숍, 키 낮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아기자기한 조명등 사이로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 날, 청송에서 포항에서 부모를 떠나 공부를 하러 온 객지. 나는 혼자였지만 친구는 오빠내외와 조카들까지 함께 살고 있어서 오순도순 잘 지냈다. 나는 늘 왁자한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아마도 그 때마다 고향에 두고 온 남매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간절히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시누이의 친구까지 드나들었으니 친구의 올케가 오죽 귀찮았을까 싶어 새삼 얼굴이 붉어지긴 하지만 그 때는 참 눈치도 없이 해맑게 드나들었던 것 같다. 계산 없이 정을 줄줄만 알았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학교를 며칠씩이나 빠졌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오빠 내외가 받는 전화가 어려워…
부부로 사는 모든 사람은 행복할까? 만약 부부의 삶이 행복을 보장한다면 모든 사람이 그 삶을 선택할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부부의 삶을 선택하고 있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부의 삶이 혼자의 삶보다 더 힘들고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 이유다. 소우주(小宇宙, microcosm). 동양과 서양, 철학과 과학 등 과거부터 인간을 소우주라 표현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인간을 우주와 비교할 정도로 완전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것에 의해 완전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전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배우자가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갖고 있다. 혼자가 둘이 되든 둘이었다가 다시 혼자가 되든 우리의 완전함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나의 행복은 나의 책임이다.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배우자의 책임이 아니다. 이것을 잊는 순간 부부 아포리아(난관)에 빠져 힘들어진다. 부부의 삶에서 행복을 기대한다면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한다. 특히 ‘확인’과 ‘인정’은 나에게 주어진…
몸짓 /박원희 버스를 탔는데 앞에 두 사람이 수화(手話)를 한다 유창한 말의 몸짓 버스는 달리고 버스는 시끄럽고 소통할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한 혼돈의 세상 속 침묵으로 일관된 몸짓 말 잘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저 몸짓으로 세상의 말을 짓는 침묵의 언어 이미 세상에 없어진 말들을 불러 모아 몸짓으로 남아야 할 것들을 써야지 온몸으로 써야지 하는 저 소리들 - 박원희 시집 ‘몸짓’ 소통이 화두가 된 지 오래되었다. 인간이 인간의 입장에서만 볼 때,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소통일 것이다. 그러나 소통을 위해 떠들어대는 이런 저런 시끄러운 소리들이 오히려 불통을 부채질하는 것도 같다. 지금은 막말이든 품위가 있는 말이든, 말 잘하는 것이 때로는 장애가 되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만이 어깨에 힘을 주는 세상. 침묵의 언어는 무시될 대로 무시되는 세상. 가벼운 입술로만이 아닌,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진정을 다해 말할 줄 아는 이는 누구인가. ‘아니면 말고’만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온몸으로’ 글을 쓸 줄 아는 이는 누구인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때는 몰랐다. 하늘로 올라간 풍선이 터져서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게다가 산과 바다, 들판에 떨어져 쓰레기가 되고 야생동물의 먹거리로 변신(?)해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냥 내 꿈을 실현해 줄 매개체로만 여겼던 시절이었다. 특히, 한 해의 끝자락이나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절정을 이뤘다.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국가 대부분에서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앞장서기란 쉽지 않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힘든 일을 경기도가 또 하기로 해 주목된다. 연말연시를 맞아 도내 곳곳에서 의례적으로 치러졌던 ‘풍선날리기 행사’를 전면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풍선’이 축제와 행사에서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저비용 고효율’ 때문이다. 적은 비용으로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도내 곳곳에서 지역축제와 새해맞이 소망기원 등 다양한 행사에서 빈번하게 실시됐다. ‘비용 감소’ 만을 추구하며 두드렸던 얄팍한 계산기가 시나브로 환경에 악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