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하일통 금계국 아침저녁으로 걷는 반석천엔 시방 금계국과 개망초 천국이다. 노란 금계국에 하얀 개망초가 제법 근사한데, 볼 때마다 끌탕 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금계국 때문이다. 북미가 원산지인 이 꽃은 이르면 오월 중순부터 팔월까지 오래도록 노란 꽃을 피운다. 국화과 식물이 대개 그렇듯이 해열 효과가 있고, 부종을 제거하고, 간열을 내리는 데도 쓸 수 있지만, 한약재로 널리 쓰이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 금계국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는 점. 한반도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월동해 다음 해에도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라서일까, 번식력이 강해서 아무 땅에 심어도 잘 자라기 때문일까, 남도 해안가에서 경기도 천변, 강원도 국도변까지 금계국 천지다. 그야말로 야생화 끝판왕으로 전국을 뒤덮고 있는데, 실은 우리나라 식물 생태계에 큰 위협이다. 일본에선 이미 2006년부터 생태계 위협종으로 지정하고 퇴치 중이며,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는 돼지풀보다 더 위험한 종류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처럼 민관에서 아무 곳에나 금계국을 무분별하게 심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꽃도 화사한 데다 관리할 필요가 없고, 한 번 심기만 하면 잘 자라고 번식력
해마다 맞이하는 호국보훈의 달 6월이지만 올해 6월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의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지도 2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자유롭게 활동할 날은 멀기만 느껴진다. 70여 년 전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인 수많은 호국용사들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국토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우리 삶의 터전에서의 자유로운 일상 생활이 그립다. 정부는 1956년부터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한 이후 매년 범정부적인 추모 행사를 전국적으로 거행해 오고 있다. 이런 추모행사를 통해 온 국민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그 위훈을 기려 국민의 애국정신 고취로 국민통합을 이루려 노력해 왔다. 경기북부보훈지청이 담당하는 우리나라 중서부 지역은 6.25 때 수많은 전투가 일어났던 곳으로 가는 곳마다 전적지가 많다. 지금도 전적지 곳곳에서는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 사업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이 활발이 일어났던 지역이었고 6.25 때는 곳곳에서 6.25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그 몇 가지 사례를 들면 1951년 4월 22부터 25일까지 파주 적성면 설마리 일대에서 영국군
이웃에 살고 계신 이중길 전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지요. 오래전에 퇴임하신 선생님은 트래킹 마니아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에요. 지난 2012년 칠순의 연세에 유럽을 가로지르는 5600㎞ 어마어마한 길을 걸어서 완주하신 놀라운 기록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랍니다. 매일 25~67킬로미터씩 걷는 불가사의한 도보의 결과였다고 하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지요. 선생님이 들려주신 유럽횡단 에피소드에는 신기한 내용이 많지만,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파이팅(Fighting)!’이라는 응원 구호 이야기예요. 굳이 비유하자면 중국의 ‘짜유(加由)!’ 정도가 될 텐데요, 유럽 여행 중에 아무 생각 없이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써먹었다가 상대방이 정말 싸우자는 건 줄 알고 표정이 새파래지는 바람에 곤경을 겪었다더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우리는 ‘파이팅!’을 아무 데서나 남발하고 사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무심코 쓰고 사는 언어습관 중에는 ‘전투적’이거니 ‘적대적’인 게 적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틀리다’라는 말은 참 심각해요. ‘다르다’라고 말해야 할 때 ‘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예요. 텔레비전 속에서도 그렇고, 길거리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오는 2050년쯤이면 미세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해 서해의 4분의 1 이상이 해양생물들이 살기 어려운 ‘죽음의 바다’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와 주목된다. 불과 30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계자연기금(WWF)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1인당 매주 평균 5g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신용카드 한 장과 맞먹는 미세플라스틱을 매 주일 섭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세플라스틱 공해의 심각성이 극에 달해 드디어 말로 떠들기만 해도 되는 시간이 다 지나간 것이다. 대책을 세우고 즉각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벨기에와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환경학자들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말 전 세계 바다의 미세플라스틱 위험도를 평가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환경오염(Environmental Pollution)’에 발표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지름 5㎜ 미만의 플라스틱 입자로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잘게 부서지거나 합성섬유 의류 세탁·타이어 마모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 미세플라스틱 오염으로 심각한 위험에 빠질 징후가 발견된 바다는 지중해와 서해였다. 연구진은 2050년쯤 서해는 27.1%, 지중해는 44.6%가 미세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해 해양생물이 생
창업활동은 경제성장정책과 산업정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성장동력이며, 여기에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이 곁들여져 국가 경제의 역동성이 결정되게 된다. 창업활동의 강력한 엔진이라 할 수 있는 혁신활동을 기반으로 창업 스토리를 잘 정리하고, 조직의 정체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고 사회적가치와 경제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사업화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 기업 경영에 있어 전략적 선택과 균형잡기는 창업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될지, 회피 대상으로 위험을 바라볼지 아니면 기회로 삼을지, 사회적경제와 자본주의경제 또는 전통적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사이 어느 위치에 자리매김할지, 공공시장과 민간시장 어느 곳을 주력 시장으로 삼을지 등 선택과 균형을 잡아가는 동안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적경제기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요소 몇 가지를 살펴보면 가격경쟁력, 제품(서비스) 품질과 기술경쟁력, 자본(자원)연계, 마케팅, 고용유지 등을 들 수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사회적기업 제품에
파블로 피카소 탄생 14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110점이 서울에 왔다. 이번에 전시된 진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그림은 단연 ‘한국에서의 학살’. 이 작품은 피카소의 ‘반전(反戰)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널리 알려진 ‘게르니카’의 한국판이라고나 할까?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양민학살을 그렸다.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해 주민의 4분의 1이 떼죽음을 당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나? 남과 북의 ‘공식 기억’이 서로 다르다. 남한에서는 공산당을 지목하고, 북한에서는 미군에게 책임을 돌린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저항해 프랑스로 망명한 피카소는 1944년에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런 그가 1951년 1월에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으니, 여기 묘사된 학살의 주체는 미군으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해서 이 그림은 미국의 환대를 받지 못했다. 피카소가 죽은 뒤 한참이 지난 1980년이 되어서야 처음 미국 전시가 허용되었다. 이런 이력을 지닌 ‘한국에서의 학살’이 드디어 대한민국에 상륙한 것이다. 가로 210㎝, 세로 110㎝의 대작이다. 왼쪽에는 임신한 여인들과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알
부자 그리스도인이란 발 없는 경주마라는 말과 같이 모순된 말이다. 세상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은 그 사람의 가진 부에 정비례하며, 인간의 내면적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진정 깨달은 사람은 이성적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존경심에서 재물과 돈을 부끄러워한다. (에머슨) 이번에는 부자들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당신들에게 닥쳐 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통곡하십시오. 당신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 많은 옷가지들은 좀먹어 버렸습니다. 당신들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고 그 녹은 장차 당신들을 고발할 증거가 되면 불과 같이 당신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나는 도처에서 사회복지라는 이름하에 자신만의 이익을 좇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부자들의 음모를 보고 있다. (토머스 무어) 부는 오만과 잔인, 자만으로 인한 난폭, 부패와 타락의 뿌리이다. (퓨지) 차라리 부자의 냉담함이 그들의 동정심만큼 잔인하지 않다. (루소) 부자를 존경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가엾게 여겨야 한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획득은 자본(판돈)의 크기에 달려 있다. 이는 일종의 도박장에서의 카드놀이
‘강함’의 정의는 무얼까. 이기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남는 것일까. 승자와 패자의 관점으로 바라봐선 답이 없는 질문이다. 펜과 칼의 강약(强弱)은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죽이려는 자에게는 독이지만 살리려는 자에게는 약인 것, 그것이 펜과 칼이다. 펜과 칼의 두 얼굴은 역사가 증명한다. 펜과 칼이 백성을 위할 때 세상은 흥(興)했고, 펜과 칼이 권력을 탐할 때 세상은 망(亡)했다. 펜과 칼의 본질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에 기록된 펜과 칼은 백성을 위하지 않았다. 숱한 역사 속에서, 펜과 칼은 권력을 빼앗거나 탐하는 흉기로 쓰였다. 칼을 겨누며 협박하고 펜을 갈기며 조롱했다. 진짜를 밀어내고 가짜를 내세웠다. 가축을 죽이듯 칼이 춤을 추면 흘린 백성의 피를 펜이 지웠다. 다 죽이고 다 지울 때, 백성은 백성이 아니고 개 돼지였다. 일제와 결탁한 친일파들이 그랬고, 이승만을 앞세운 친일잔당이 그랬고, 군부독재와 놀아난 온갖 나팔수들이 그랬다. 칼이 앞에서 북을 치면 펜이 뒤에서 나팔을 불었다. 황국신민, 유신헌법, 정의구현, 떠들썩한 구호가 활개 칠 때마다 세상은 눈이 멀고 백성은 귀가 막혔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을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