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년에 가야불교가 전래? 다시 가야불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가야 불교의 전래시기를 452년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아래 기사를 근거로 삼은 견해다. “원군(元君:수로왕)의 8대손 김질왕(金銍王)은 정치에 능력이 있고 부지런하며 또 참된 것을 매우 높였는데 세조모(世祖母) 허황후를 위해서 그의 명복(冥福)을 받들어 빌고자 하였다. 그래서 원가(元嘉) 29년 임진(452)에 원군과 황후가 혼인한 땅에 절을 세우고 왕후사(王后寺)라 하였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근처의 평전(平田) 10결을 헤아려 삼보(三寶)를 공양하는 비용으로 삼게 하였다(《삼국유사》 〈가락국기〉)” 김수로왕의 8대손인 김질왕이 시조모 허황후를 위해서 452년에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혼인한 땅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왕후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을 근거로 452년 가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452년에 가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아니라 가야에 사찰, 그것도 시조모를 위한 왕실사찰이 세워졌다는 기록이다. 가야에 언제 불교가 전래되었는지를 추적할 때 파사석탑을 빼고 말할 수는 없다. 《삼국유사》 권3 〈금관성 파사석
왜 그럴듯한 남성조차 여성존중에 실패하는가?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은 당대표가 자신을 성추행한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국민들에게 발표한 글에서 위와 같이 물었다. 사실 나도 계속 그것이 오래동안 궁금했다. 왜 그럴듯한 그들이 여성을 존중함에 실패하는가? 선한 가치의 추구, 인간 진보에 대한 희망과 그것에 대한 실천을 표방하는 이들이 왜 바로 옆의 여성을 존중하는데 성공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그것을 물을수도 없었고 행여 아주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물어도 대답은 석연치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니가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많도 많이 들었다. 그러던차에 나의 오랜 내적물음을 표면화시킨 장의원의 글들은 나만 아팠던 것이 아니구나 나만 궁금했던 것이 아니구나 위로가 되었다. 문제제기를 하는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국회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희망을 보았다. 급진적 여성주의를 표명하던 한 여성의원은 한 한의사모임에 참여해서 그 모임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나에게 건배를 청하며 자신이 여성주의를 내세우며 핍박을 받은 역사를 알려 주었다.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과거에 어떤 시선을 받았는지 알기에 그녀의 용기에 지지를 보내었다. 그 말들 이
대한민국의 하수처리 시스템이 갖추어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하수처리시스템이 도입되어 30년을 갓 넘겼다. 100년이 넘는 유럽의 하수도 역사에 비하면 늦은 편이지만, 현재 국내 하수처리시스템은 전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엄격한 기준에 따라 관리하고 또 잘 운영되고 있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여러 선진국에 비해 한층 강화된 방류수 수질기준 관리로 더 이상 전국의 어떤 하천과 바다에서도 예전의 오염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하수도 통계를 살펴보면 전국적으로 현재 3% 남짓인 30년 이상된 하수처리장이 2030년 이후에는 전체의 30%까지 대폭 늘어난다. 노후화에 따른 시설개선 또는 재건설 수요가 함께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환경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기존의 경제성장 기조에 기반한 인프라 구축 위주였던 하수도행정을 최근에는 노후시설의 효율적 개선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식으로의 정책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성남시 복정동에 위치한 성남하수처리장은 1992년에 완공, 올해로 30년을 맞는다. 100만 인구의 하수를 처리하는 큰 규모로 노후 진행이 빠르게 진행돼 운영비와 별도로 매년 수십억…
4.7 재·보궐선거는 부동산 정책 실패 등 여권심판론이 대세를 갈랐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국민의 선택에 ‘겸손’과 ‘경외감’을 표했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은 씁쓸하고 허전하다. 성추행으로 시작돼 진흙탕으로 끝난 싸움에 국민들의 공간은 아예 없었다. 역대 선거의 과정과 끝난 이후를 보면 국민으로서는 흑역사다. 5년마다 4년마다 국민의 혈세 꼬박꼬박 받아가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갑’ 행세를 하다가 선거 전후해서 잠시 대국민 립서비스를 한다. 이번 선거 이후는 다른 모습이길 기대한다. 이제 대한민국과 정치권은 어쩔 수 없이 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대선국면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갈 것이다. 11개월 남았다. 이번 재보선은 강요된 정당 투표였다. 정책이나 인물론은 실종됐었다. 앞으로는 정치권이나 후보자, 국민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당이나 이념,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인물과 정책, 미래비전 등 원칙에 충실한 상품을 내놓고 거기에 합당한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가 내려지는 선거가 돼야 한다. 선거구도가 적폐니 심판론 등 과거를 가르키면 미래를 열 수 없다. 군부정권이 끝난 1993년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심판론 중심
1. 기적은 없었다. 충격적인 것은 단순히 패배의 외형이 아니라 내용이다. 부산 시장선거의 경우는 거의 더블 스코어로 졌다. 이번 선거는 극우정당의 대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대 패배인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은 역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른바 MB의 정통 후계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정부와 민주당이 싫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나온 사람들은 반대정당에 몰표를 던졌다. 탐욕이 승리한 선거라고 평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언론과 검찰이 문제라고까지 말한다. 패배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시각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청와대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 실망하고 분노한 철저한 응징 투표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적 거부에는 백약이 무효였던 게다. 지난 지선, 대선, 총선과 비교해서 가장 극적인 민심이반이 일어난 곳이 2, 30대 청년 계층이다. 특히 20대 남성 유권자의 경우 70퍼센트 이상이 국민의힘 후보에 표를 던진 걸로 나온다. 서울과 부산 모든 지역구 단위에서 처참한 패배는 청년층의 이 같은 투표 결과로 봐야 한다. 2. 선거 전 여론조사를 통
그해 겨울은 모질게 추웠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여수 돌산대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을 맞으며 이젠 더 이상 우리 관계에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해가 저무는 돌산대교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연인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수배생활이 4년차에 접어드는 시절이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몇 달 후 나는 전해 들었다. 그녀는 나랑 헤어지자 말자 처음 맞선을 본 남자와 한 달 만에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나에겐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당시의 나는 사람 마음이 변했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음을.. 희망이 없으면 흔들림이 당연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냐고.. 시간이 흘려 YS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신분정리가 되면서 나는 철도기관사가 되었다. 처음 기관차를 타던 90년대 지방의 철길 건널목에는 차단기도 없는 곳이 많았다. 반면에 어떤 건널목은 차단기에 건널목 안내원까지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널목에는 대부분 기관사들끼리 부르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예를 들어 ‘김철*건널목’, ‘박영*건널목’ 식으로.. 알고…
오 하느님 나이는 먹었어도 늙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햇살은 발끝에 기울었는데 내 몸이나 구하자 하고 굽은 마음 어쩌지 못해 얼굴을 숨기기도 합니다 몸 안에 가득 들여놓은 꽃은 붉은 조화 나부랭이였습니다 어찌 고요를 보았다 하겠습니까 ▶약력 ▶청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현대문학](1964)으로 등단. ▶시집 [떠돌이 별] [사랑굿] 1·2·3 [멀고 먼 길] 외 6권. ▶수필집 [하얀물감] [그대 하늘에 달로 뜨리라] [생의 빛 한줄기 찾으려고]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사랑하며] ▶한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공초문학상 수상.
시간의 수레바퀴는 벚꽃이 피는 봄인 시점에 도착해 있다. 코로나 사태로 온 세상이 뒤숭숭한 가운데 맞이한 올해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올해 4월 11일은 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이다. 이날을 기억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1990년 4월 13일 제71주년 기념식부터 정부주관 행사로 거행하는 국가 기념일이다. 그런데 왜 2019년 4월 13일에서 11일로 기념일이 변경되었을까? 그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 중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내용에 기인한다고 명시돼 있다. 역사학계에서 발견한 추가 자료를 비롯해 학계의 전반적인 의견 따라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임시헌장이 공포된 날인 4월 11일을 기리기 위해 2019년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4월11일로 기념을 변경하였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새로운 백 년 희망을 짓다” 라는 모토로 서대문독립공원 인근의 서대문형무소 전체가 보이는 현저동 산 5-5 부지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 중으로, 오는 11월 23일 개관을 앞두고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개관이 기다려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