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참여는 미덕이다. 권력구조 변동, 민생 파탄의 지속 여부가 판가름 날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우리 사회가 분주하다. 양대 정당은 저마다 공천 발표로 어수선하다. 게다가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발표는 여권의 불순한 정치적 동기, 의사들의 생존권, 환자의 진료권 보장 등으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켰다. 한국의 이익집단 사회는, 정신이 없다. 공론장이 시끄럽고 복잡하다보니 지역사회의 사건사고 전반이 정치이슈에 파묻히는 경향도 없지 않다. 지난달 6일, 일산서부경찰서는 이모씨를 강도살인혐의로 체포했다. 경기도 고양시와 양주시에서 60대 다방업주 2명을 잇따라 살해한 혐의다. “교도소 생활을 오래하며 스스로 약하다고 느꼈다.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범행”했단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 그것은 국민의 안녕과 행복에 있다. 정권 획득 투쟁의 격화로 인해 연쇄살인 사건은 여론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교도소에서 바로 출소한 이들의 재범 사건. 방지책은 없는 것일까? 범죄 예방, 교화, 피해자 보호 및 지원, 부처 간 협력은 정책의 청사진으로만 언급되는 단어인 것처럼 보이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법무가 아닌, 복지의 시
요즘 항간에 시대정신(Zeitgeist)이 화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운동권 청산’, ‘정권 심판’, ‘3지대 통합’ 등 정치세력 교체가 이슈라면. 영화계는 ‘서울의 봄’, ‘길 위에 김대중’, ‘건국전쟁’ 등 역사인물 재조명이 이슈다. 며칠 후면 우리는 또다시 3·1절을 맞이한다. 1919년 3·1운동은 항일의병운동과 애국계몽·국권회복운동을 계승·발전시킨 대각성 운동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해외독립운동의 확산, 8·15 해방과 새 나라 건설도 3·1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경기를 비롯한 13도 전역을 휩쓸었던 3·1운동은 중국·러시아·미주지역 동포들까지 한목소리를 내게 했고, 중국 5·4운동이나 인도 독립운동과 함께 약소민족 해방운동의 금자탑(金字塔)이 되었다. 특히 지난날 ‘은둔의 왕국’, ‘조용한 아침의 나라’, ‘야만과 미개의 사회’ 정도로 알려졌던 조선(朝鮮)의 이미지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였다. 3·1운동은 어떤 시대정신을 갖고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혁신을 가능케 했을까. 기미(己未) 독립선언서에 그 해답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세계만방에 전파된 선언서에는 “자유 발전, 인류 공동생존권, 동양평화, 인도주의,…
늘 그렇더라. 함께 섞일 것들 말이다. 사람도 그렇고 먹을 것도 그렇지. 된장국이 된장국인 까닭은 주인 되는 것이 된장이기 때문이다. 된장국은 된장의 맛을 가장 오묘하게 살려낼 수 있을 때, 된장국으로서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언제였을까. 글 보따리를 들쳐 매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 적이 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산이 깊어서였을까. 산을 덮은 눈 때문이었을까. 내 발로 걸어 들어간 어느 산기슭 외딴집에서, 나의 고립은 속절없이 홀로 깊었다. 깊은 고립에서 벗어나려 서성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어제 내린 눈을 오늘 내린 눈이 덮었고, 간밤에 깊었던 고립 속으로 새벽에 깊어진 고립이 다시 스몄다. 그런 날이면, 눈 덮인 산기슭 외딴집에서 나는 된장국을 끓였다. 끓인다고 녹아 없어질 겨울은 아니었다. 구들장까지 파고든 겨울은 궁둥이를 오므라들게 하고 발가락 마디마디를 비틀어놓았다. 군불을 지펴도 까딱없을 겨울이 그깟 된장국 한 냄비로 녹아 없어질리 없었다. 없는 줄 빤히 알면서도 푸성귀를 썰고 된장을 풀어 넣는 까닭은 그것 말곤 어찌할 게 없어서였다. 누구 하나 오라고 꼬드긴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겨울 한복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올해로 10년이다. 공영방송 KBS가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은 당연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KBS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방송을 4월이 아닌 6월 이후로 연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전체 제작 과정을 따지면 80%, 촬영도 40% 이상을 이미 진행했다고 했지만 지시는 철회되지 않았다. 총선 전후 한두달을 영향권으로 본다는 윗선의 인식과 판단 때문이라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KBS 사장과 면담하고자 방송국을 찾았다. 준비 중인 다큐가 세월호 생존자의 삶을 다독이고 재난 참사 피해자와 시민의 연대를 꾀하는 내용이었다는데, 이 내용이 대체 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준다고 보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장은 만나주지 않았다. 일정을 다시 잡고 찾아오라는 공허한 답변뿐이었다. 세월호 다큐가 4월에 방송이 된다고 할 때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KBS 본관 앞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2월 21일 열린 첫 촛불집회는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 진행됐다. 120명이 넘게 모인 참석자들은 세월호 다큐를 계획대로 4월 18일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리스 시대와 다른 시대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제네바 선언’을 통해 여러 번 수정돼 왔으며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졸업생들이 하는 선서로 의료인 윤리강령이기도 하다. 이 윤리강령을 어길 경우 논리적으로 비논리적인 사람들이다. 필자는 의사가 파업을 할 경우 그들의 행위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명시된 여러 원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각각 논리적으로 지적해본다. 첫째,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의사의 파업은 환자의 이익보다는 의사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위로 인류에 대한 봉사에 반하는 것이다. 둘째, “나는 환자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다.” ▲의사의 파업은 환자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 서비스 제공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들의 건강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셋째, “나는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존중할 것이다.” ▲파업은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선택권을 제한함으로써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 넷째, “나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최고의 존중을 유지할 것이다.” ▲파업으로 인해 환자들의 생명에 직간접적으로 위험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중학교 동창들이 모여있는 메신저 방이 있다. 각자 바빠지면서 예전만큼 자주 얼굴을 보진 못해도, 메신저 방에서 종종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 일상 속 힘든 일을 겪은 후 메신저 방에 올리면 모두가 입을 모아 ‘그거 다 경험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만의 유행어인 셈이다. 나는 이 말에 많은 위로를 받곤 한다. 내가 겪은 힘든 일이, 곧 경험치가 되고 나를 성장시키는 좋은 발판이 된다는 말이니까. 이러한 말로 위로를 받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상에 비슷한 유행어들이 도는 것을 보았다.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잖아 한잔해' 등이 있다. 위 말들의 원래 뜻이나, 출처는 잘 모르겠으나 이 말들이 부정적인 상황들에 대해 웃음과 함께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해주는 주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나와 친구들만의 유행어와 같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비슷한 뉘앙스의 말들이 유행어, 사자성어, 격언 등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시대에 존재해 왔다. 이런 종류의 말들이 존재해 온 이유는 당연하다. 인생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상황으로 가득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불행과 시련들이 늘 우리를 방문한다. 게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시작된 지 138일째이다. 138일 동안 쏟아부은 폭격으로 2만 9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중 60%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으로 추정된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이 비극은 하마스와의 전투는 찾아볼 수 없고, 병원, 학교, 피란민 시설들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달 26일, 집단 학살로 판결하며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즉시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이번 판결을 반유대주의적 편향이라고 비난하며, 끝내 가자지구의 마지막 의료 시설과 대학교까지 폭격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도 이후로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에서는 평균 5년에 한 번씩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매번 이스라엘의 영토는 점점 커지고 팔레스타인 영토는 점점 줄어든다. 전 세계 인권법 전문가들은 물론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이스라엘의 국가 창설 과정과 국가 운영 방식을 ‘정착민 식민주의’적 프로젝트로 비난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충돌도 전쟁이 아닌 인도주의적 위기, 즉 대량 학살로 보는 견해가 대다수이다. 우리 문명은 지난 몇십 세기를 거쳐 유럽계 백인들의…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이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 있다. 반면에 생각만 해도 수치스러워 기억 속에서 모조리 지우고 싶은 추억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혹자는 ‘추억도 추억 나름’이라고 하지 않았든가. 그중 하나가 추억은 항상 아름답고 좋은 기억만 간직하기를 원하는 징후(sign)가 있다. 그것이 곧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과거의 일을 회상할 때, 나쁜 기억은 빨리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은 증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수치스럽거나 가슴 아픈 기억은 모두 빼버리고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려 한다. 현실이 힘들고 고달플수록 과거로의 회귀본능을 보이며, 행복했던 지난날의 자기 모습을 되찾고 아픈 현실을 조금이라고 잊으려고 한다. 아름답고 평안한 행복을 현재보다는 과거의 추억 속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딱히 과거가 현재보다 더 나은 것이 없어도 의도적으로라도 지나간 삶은 아주 행복했다고 여긴다. 그것은 분명 착각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무드셀라 증후군과는 달리 순교자 증후군(Martyr Syndrome)은 과거의 기억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쁜 감정만 떠올리는 징후를 말한다.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는 예로부터 학문과 덕망이 있는 지도자를 ‘선비’라고 말하였다. 선비는 교양, 인품, 지조 등을 갖추며 도덕적 실천을 중요시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이러한 ‘선비사상‘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가서 자신의 이념과 도학을 실천하며 일생을 살았다. 그러나 세상이 어수선고 혼란스러울 때, 또는 자신의 뜻을 펼 수가 없다고 여길 때 선비들은 고향에 내려가 학문에 전념하면서 향촌사회의 풍속을 진작하며 제자를 양성하곤 했다. 이처럼 높은 학문을 하였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뜻을 지키며 떳떳하게 살았던 선비를 ’처사(處士)’라고 불렀다. 처사의 예로 꼽을 수 있는 이는 남명 조식(曺植) 선생이다. 남명은 16세기 지리산 근처 덕산에서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학문하며 숱한 제자를 양성했다. 퇴계 이황(李滉)과 동갑이었던 그는 “경상좌도에는 퇴계요, 경상우도에는 남명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둘은 쌍벽을 이루었다. 남명은 60세가 되었을 때 김해를 떠나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마을인 덕산으로 옮겨 왔다. 그곳 산천재에서 남명은 학문과 제자 양성에 전념하면서 국가의 안위(安危)와 고통스런 백성의
유인촌 장관님. 저는 영화평론가 오동진이라고 합니다. 프리랜서 라이터입니다. 프리랜서 생활을 한 지는 20년쯤 됩니다. 생면부지(라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장관께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원고료 좀 올려 주십시오. 원고료가 너무 낮아 프리랜서들의 생계를 이어 가기가 너무 힘든 지경입니다. 프리랜서 원고료 만이 아닙니다. 대학 강사들의 강의료도 좀 올려 주십시오. 여기도 굉장히 열악한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 분야 중 한 곳입니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값이 너무 쌉니다. 지식의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돼 있습니다. 프리랜서들이 받는 원고료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200자 원고지 장당 8000원~1만 원 수준에서 요지부동, 고착화 된지 오랩니다. 원고 청탁은 대체로 원고지 10장, A4 용지로 한 장 반, 자수로는 2000자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0만원을 받을 때 3.3% 심지어는 8.8%까지 세금을 원천 징수 합니다. 결국 9만 원 남짓을 받는다는 얘깁니다. 한달에 원고지 300장, A4 17장, 글자 수로 6만 자 정도를 써야 300만원을 벌까 말까 합니다. 도시 노동자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 가는 사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