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김치를 참 싫어했다. 맛도 없었고 영양가도 없는 풀떼기를 먹는 어른들이 이해가 안 갔다. 반면 고기를 좋아했고 고기가 없으면 밥을 안 먹을 정도였다. 커서 카투사로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니 미군식당은 천국과 같았다. 스테이크와 같은 다양한 고기 요리를 마음껏 원없이 먹었다. 인근 부대에서 근무하던 한동현 사촌형이 면회 와서 카투사 스낵바에서 한턱 쏘려고 했다. 나는 왜 맛없는 한식을 먹느냐며 미군식당을 고집했다. 부대 내에 불량스러운 흑인 병사들이 있었다. 신병인 나에게 김치는 변 냄새가 난다며 놀렸지만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엄청난 모욕감에도 거대한 체구의 흑인에게 주눅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간혹 김치를 즐기는 미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미군들은 강렬한 냄새 때문에 혐오했다. 그들은 라면도 면이 부드럽고 담백한 맛의 일본 제품을 좋아했다. 한국 라면은 면도 거칠고 너무 매워 대부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워낙 고기를 좋아해서 소련과 러시아에서 10년 유학 중에도 먹는 거에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포유류 중 유독 인간만이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은 직립 보행의 치명적인 부작용 때문이다. 인간만의 특징인 직립 보행으로 과호흡, 과식, 수
영화 '서울의 봄'이 대흥행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 정해인은 짧은 배역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해인이 연기한 특전사 소령 오진호의 실제 인물은 김오랑 소령이다. 경남 김해 출신인 김오랑 소령은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한 해 늦게 졸업했지만, 김해농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시 수재들이 모이던 부산대 공대에 합격하고도 학비가 없어 들어가지 못했다. 학비가 무료인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제2보병사단 수색대 소대장으로 근무한 그는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후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 중대장을 시작으로 특전사령부 작전장교와 정보장교를 지냈다. 군의 엘리트 코스인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제5공수특전여단 중대장을 거쳐 1979년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1979년 12월 13일 00시15분, 전두환을 수괴로 한 반란군에 가담한 제3공수특전여단 최세창 준장 일당이 급습한 특수전사령관실을 끝까지 지킨 군인이 김오랑 소령이었다. 정병주 특전사사령관을 지키던 다른 장교들은 반란군의 회유와 협박에 모두 넘어갔지만 김오랑 소령은 반란 가담을 거부하고 자신의 사령관을 사수했다. 가진 무기라고는 권총 1정에 불과했던 그는
경기도의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추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달 중순까지 주민투표안 처리를 결정해 달라는 경기도의 요구를 행정안전부가 결국 묵묵부답으로 거절했다. 갖가지 불리한 여건으로 발전이 가로막힌 북부지역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경기도 분도’ 여망이 또다시 여야 정치 셈법의 희생물로 전락해가는 양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생하는 경기도민의 민생이 걸린 이 절박한 문제를 정쟁의 제물로 삼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주민투표실시 및 특별법 제정 촉구 결의안’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78대78 여야 동수로 구성된 경기도 의회에서 96%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채택됐다. 40년 묵은 화두인 경기도 분도론(分道論)은 이제 경기도민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가야만 할 길로 인식돼가는 추세다. 경기도 분도론은 정치권에서 지난 1987년 대통령선거 때 노태우 후보가 처음 제기했다. 그 후 주요 선거 때마다 등장했고 지방선거에서는 단골 메뉴처럼 빠진 적이 없는 이슈였다. 2002년 경기도 인구가 1000만 명을 넘기면서 분도론에는 더욱 힘이 실렸다. 파주·고양·양주·연천·동두천·의정부·포천·남양주·가평·구리가 대상이다. 경기도가 지난…
아이들의 언어 정서에 비상이 걸렸다. 비속어와 욕설이 뒤범벅된 청소년들의 언어 습성을 정상화하는 일이 난감한 숙제로 떠오른 가운데, 상당수 경기도 초·중·고 학생들이 언어폭력의 그늘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대로 된 가정교육과 학교에서의 인성교육 시스템 붕괴가 불러온 참사로 해석된다. 아이들의 비뚤어진 언어 정서를 바로잡는 일만 가지고는 안 된다. 언어폭력이 상시로 흘러 다니는 사회·문화적 환경 개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이 도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언어폭력’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교육청이 지난 4월10일부터 한 달간 초4~고3 학생 112만여명(전수)을 대상으로 ‘2023년 1차 학교 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해 88만2000여 명(78.7%)으로부터 답변을 받은 결과다. 조사에서 나타난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36.8%)’이 가장 많았다. 다음이 ‘신체 폭력(17.4%)’, ‘집단따돌림(15.3%)’, ‘강요·강제 심부름(7.6%)’, ‘사이버폭력(7.4%)’ 등의 순이었다. 피해 발생 장소는 대부분 학교 안(66.8%)이었는데, 지난해보다 10.2%포인트나 늘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지난 3~4/4분기 동안 전라북도 8개군 6개 도시를 다닌 적이 있다. 작은 극장을 순회했다. 8개 군이라 하면 부안 고창 순창 임실 장수 진안 무주 완주군을 말하고 6개 도시라면 전주 군산 익산 김제 정읍 남원시를 말한다. 전라북도는 다른 지차체에 비해 면적이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대체로 전주에 머물며 하루 일정으로 동쪽 지역의 군을 다니고 또 다른 하루 일정으로 서쪽 지역 군을 다니곤 해도 됐을 정도다. 그렇게 다니면서 뛰어난 지역 풍광(마니산 같은)이나 지역 발전의 모티프(임실 치즈 같은)때문에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충격을 받았다. 인구 때문이었다. 8개군의 평균 인구는 대체로 2만명 안팎. 거의 절멸 수준이었다. 특히 젊은 층 인구는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전북 도와 각 군, 시가 의지를 가지고 40석~60석 수준의 지역 극장을 만들어 영화 문화의 확장을 꾀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음에도 불행하게도 그 선의의 역할이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유일하게 극장 문화가 극장 문화답게 유지되는 곳이 무주 군으로 보였는데 그건 순전히 이곳의 무주산골영화제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
오늘은 옛날 세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국가라는 조직은 있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으로서 세금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을 것이다. 먼저 서양에서의 세금의 역사는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 제국의 세금에 대한 문헌들이 더러 남아있고, 그 중에서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와 방대한 인구를 다루기 위해 세금 제도의 정비와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로마제국의 세금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에 세리가 등장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후 중세에 들어서는 유럽 역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만큼 세금과 관련해서도 뚜렷한 체계나 제도에 의하지 않고 봉건 영주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영주와 국왕들의 세금 착취와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로빈훗의 모험’이다. 이후 근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조세 제도가 형성되는데, 당시에는 국가 간 전쟁, 식민지 확장 및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한 재원 조달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자 그러면 옛날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게는 세금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사 실력이
지난해 9월 24일 미국에서는 ‘전진당(Forward)’라는 정당이 창당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뉴욕시장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탈당한 앤드루 양과 공화당 출신인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전 뉴저지 주지사가 주도해서 만들었다. 이들은 미국 정치의 뿌리깊은 양당 구도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에게 대안 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알리면서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스스로를 급진적 중도로 규정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대표적인 정책으로 내세웠으며, 오픈 프라이머리와 선호투표제를 미국 전역에 도입하는 것 등을 내세우고 있다. 나름의 정책비전과 양당제 폐해 극복이라는 대의명분을 제시하면서 제3당에 대한 지향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제와 소선구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 의회내 제3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전진당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있다. 창당을 했음에도 2022년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별도의 후보를 내지 않았고, 민주·공화 양당의 중도파 의원들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별도의 후보를 내지 않을 계획이며 의회 및 주지사 선거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길은 사람의 발에 밟힌 낙엽이 으깨져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왔던 그 길이나 그곳으로 가는 것인가! 내 나이 적지 않은데 나의 갈 곳은 어디며 언제쯤일까. 12월의 가슴은 무겁고 축축하다. 청주에 사는 수필가에게서 수필집을 보내왔다. 꽤 오랜 인연 속에 한 번도 인사를 거르지 않은 작가다. 그와의 인연은 J신문사 신춘문예 심사를 내가 맡았을 때 그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결과로써 시작되었다. 그런 그가 내게 금년을 마무리하는 결실의 의미로 보낸 선물 같았다. 존경했던 고하 선생님은 얼마 전 고인이 되었다. 생전의 선생님은 누가 책을 보내오면 꼭 편지나 우편엽서로 ‘잘 받았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연말연시의 인사나 덕담을 편지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휴대폰 문자 때문에 우체국에서도 경조카드 자체를 없앴다. 을유문화사에서 낸 『동국세시기』 12월을 보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믐날 밤(除夕)에는 2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이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 문안을 드렸다고 적혀 있다. 사춘기를 벗어난 성인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을 체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언론은 내년 총선 얘기로 뜨겁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언론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는 선거에 더 관심이 크다. 바로 이장 선거다.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이장이 있는 마을에서 요즘 선거가 한창이다. 다양한 복지행정 수요 등을 파악하고 행정 서비스를 원활히 민생의 현장에 전달하기 위해서 이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마을의 발전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마을 이장이 누구냐가 마을 발전에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마을 발전을 잘 이끌던 이장이 바뀐 후 마을이 침체하는 예도 봤고 그 반대의 경우도 봤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면서 마을이 소멸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장을 보면서 많이 개탄스러워하기도 했다. 이장은 촌 기초지자체의 말단 직책이다.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이장이 움직이질 않으면 그 정책은 주민들에게 전달되기 힘들다. 이토록 중요한 이장은 주로 누가 될까? 일단 이장 일 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시시때때로 행정 일을 봐야 하고 주민의 민원에 응해야 하기때문에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수 있는 주민이어야 한다. 그러니 고정된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맡기 어렵고 주로 마
킬러(killer)는 살인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의미가 무시무시해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할 용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 대상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능에서 정답률이 극히 낮은 문항을 ‘킬러 문항’이라고 언론이 써왔다. 대통령이 ‘킬러 문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유명세를 치뤘다. 지난 6월 15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던 윤 대통령이 수능의 어려운 문제를 지칭해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했다.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사업이 카르텔이냐”고도 했다. 특유의 과한 용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교육부 대책이 이어졌다. 이 장관은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은 수능 관련 이슈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부와 총리실은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사에 착수했다. 평가원장은 나흘만에 사임했다. 5개월이 지난 11월 16일, 2024학년도 수능이 치러졌다. 언론은 시험난이도를 ‘킬러 문항은 없었지만, 국·영·수 다 어려웠다’는 기조로 보도했다. 정문성 출제위원장은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 문항’을 배제했고,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변별력을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