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추위를 아랑곳 않고 술에 취해 비틀비틀 세상사를 잊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슬픔 같은 체온의 벽이 다가선다. 나 또한 여기여기 송년모임으로 분주한 육체를 이끌고 다니며 지역예술계를 돌아본다.
예술이 무엇인지 답을 내놓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대와 공간과 장르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읽히고 긍정적인 통로라면, 존재에 대해, 세계에 대해, 삶에 대해, 피부에 쉽게 다가서고, 인식체계를 각인시킨다는 측면에서 예술은 삶 그 자체다.
지금 경기지역의 예술은 어떠한가. 예술이란 단체의 이름을 걸고 걷는 모양들이 추위 속에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지역문인회만 보아도 하나의 단체면 될 것을 상징적인 명칭을 입혀, 왜 필요한지, 추구하는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지도 불확실한 채 정신적 혼동을 일으킨다.
게다가 무슨 상이니 해서 수상 장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좀더 통합을 이뤄낼 수는 없는 것일까. 좀더 질적인 예술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변화를 던지기에는 너무 깊게 병들어 있는 관행으로 오래 걸어온 길이어서인지 아쉬움만 커질 뿐이다.
새해에는 언론에서 매서운 펜을 들어, 변화를 주는 지역예술인의 모습을 성장시켜주었으면 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자기 경험의 한계로만 이야기 하게 된다. 무엇이든 빠르고 크고 높게, 물리적 효율성으로 가치를 평가받는 현실을 탓할 수 없지만 좀더 부드러운 정서로 대중을 만나야 한다.
천지에 낙엽들이 휘날리더니 완전히 발가벗고 서있는 나무들의 형상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다. 겨울나무는 봄처럼 부활의 희망을 얘기하지도 않고, 여름처럼 성숙의 풍요로움을 말하지도 않으며, 가을처럼 황금빛 결실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스산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지역예술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희망을 기대한다. 예술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