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는다.
산등성이를 넘어온 찬바람을 맞으며 산길을 걷는다. 겨울바람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 차다. 매서운 바람이다. 하늘은 높고 맑다. 맑은 하늘을 닮아가는 것일까. 산길을 걷자 내내 답답했던 마음이 맑아진다. 무거웠던 머리도 가벼워진다. 마음이 투명해지는 듯하다.
산길을 걸으며 많은 생명들을 만난다.
나뭇잎을 본다. 겨울임에도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나뭇잎들을 본다. 나뭇잎들 사이로 겨울의 차가운 햇살이 드리운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쨍-쨍-’소리를 내며 공기를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햇살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차가운 햇살을 맞고 있는 나뭇잎이 얼마나 신비로운 빛깔을 띠는지 알고 있을까.
나무 그늘 아래로 눈이 제법 쌓여 있다. 나무 그늘 아래 있는 작은 눈 언덕에 꽃이 피어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다. 그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눈 속에 피어난 이름 모를 겨울 꽃이 얼마나 눈부신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꽃만이 아니다. 눈물 흘리고 있는 내 가슴을 흔들어 놓는 것이 있다. 눈 가로 제 몸 다 드러낸 이름 모를 잡풀들이다. 겨울 산의 찬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서러움이 인다. 내 가슴은 서러움으로 설렌다. 그 가슴으로부터 눈물이 흐른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알고 있을까. 산길을 걸으며 만나고 있을까. 눈 내린 산길을 걷는 느낌이 얼마나 포근한지 말이다. 겨울 산을 바람 따라 지나다 바싹 마른 나뭇잎 바스러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가슴을 저미게 하는지 말이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활짝 핀 산길을 걷다가 나무들의 지나 온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지 말이다.
겨울 산의 허리 어디쯤인가에서 눈 언덕에 핀 꽃을 바라본다.
꽃도 나를 바라본다. 그 사이로 다람쥐 한 마리 지난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치 나를 알기나 하는 듯 오랫동안 바라본다.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였는지 생각해 보는 것일까. 어느 생의 길목에서 만났었는지, 어느 산의 허리에서 지나쳤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나무 뒤로 사라진다. 참으로 재빠르다. 귀엽다. 먹이를 찾기 위함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지난 가을 땅에 묻어둔 도토리를 찾기 위함이다.
다람쥐를 바라보며 즐거움이 마음에 가득해진다.
눈과 나뭇잎과 꽃과 나무와 바람을 만나면서 마음 가득 따스해진다.
산등성이를 넘어선 찬 겨울바람이 온 몸으로 스며들고 있는데도 마음 가득 따뜻하다.
나는 이런 설렘과 눈물과 즐거움과 따뜻함 때문에 산길을 걷는다. 겨울 산을 지난다. 겨울 산을 지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산의 은총이다. 만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느낄 수 없는 마음의 울림이다. 들을 수 없는 마음의 소리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걷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걷는 일은 힘들어 하고 불편해 한다. 때로는 걷는 것을 잊기라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아닌 것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기계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걷는 것보다 타는 것에 익숙한지 오래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보다는 컴퓨터나 텔레비전의 생각과 결정에 따르는 것에 익숙해졌다.
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아닌 것에 의존하여 살아가게 된 것이다.
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에 의하지 않고 자신이 아닌 것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삶이 온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틀리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왜곡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제 삶을 제 자신이 아닌 것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찌 왜곡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제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삶이 온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온통 제 것이 아닌 것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면서 제 마음의 말을 온전히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마음을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을 나눌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다. 제법 많이 내린다.
나뭇가지 위에 눈이 쌓인다. 이름 모르는 풀과 꽃 위에도 눈이 쌓인다. 다람쥐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내 어깨 위에도 눈이 쌓인다. 일어난다.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걸어가야 할 길을 바라본다. 몇 발자국 걸음을 떼다 뒤를 돌아본다.
풀도 꽃도 없다.
눈만 가득하다.
최창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