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난다. 겨울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힘든 계절이다. 숲에 사는 생명들에게도 겨울은 혹독하다. 먹을 것도 없고 몸을 뉘일 곳도 마땅치 않다. 겨울 숲의 살을 에는 바람에 몸을 숨길 곳도 마땅치 않다. 뼈 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을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겨울은 모든 생명들에게 힘들고 모진 날들이다. 곰이나 다람쥐나 새들만 힘든 것이 아니다. 나무들도 힘들다. 나무들도 모진 날들을 온 힘을 다하여 견뎌낸다. 숨조차도 쉬지 않는 듯 쉬며 견뎌내는 것이다. 땅으로부터 영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땅 속을 흐르던 물이 얼어있기 때문이다.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는 겨울이 오면 성장하지 않는다. 아니 이미 겨울이 오기 전 나무는 성장을 멈춘다. 가을이 오면 나무는 여름날 거센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던 나뭇잎들을 제 스스로 떨어뜨리며 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수 있는 몸을 갖춘다. 곰이나 다람쥐나 새 뿐만 아니라 나무도 모진 겨울을 지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다가올 모진 날들을 견뎌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이는 이 겨울 숲 속에서는 나뿐인 것 같다. 그러니 어긋난 제 인생길로 인해 마음 저려하며 찬바람 가득한 겨울 산을 지나는 것이다. 나무도 풀도 아는 것을 나만 모를 뿐이다.
겨울 숲은 가난하다.
모든 것이 사라진 듯 고요하다. 지난 여름 온 산하에 가득했던 풍성함은 바람에 꽃잎 떨어지듯 사라져 버렸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시끄러울 정도로 재재거리던 수많은 나뭇잎들도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빈가지에는 쓸쓸한 바람만 걸려 있다. 그 뿐이랴. 산기슭을 지나기만해도 귀를 따갑게 울려대던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들 떠났다. 겨울 산을 지키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몇몇 새들의 울음소리를 간간히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 울음소리마저 없다면 겨울 산이 얼마나 외로울까. 겨울 산을 지나는 이들 또한 얼마나 외로울까.
겨울 산이 가난하기 때문일까. 겨울 산을 지나는 이들의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일까. 겨울 산에서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위로가 된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위로가 된다. 바람도 마른 나뭇잎도 새들의 노랫소리도 빈가지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나무 그늘 아래 남아 있는 눈이라도 만나면 더욱 마음이 밝아진다. 맑아진다. 보잘것없어 보일 뿐이지 보잘것없는 생명이란 없기 때문이다. 모두 나와 같은 생명들이다.
산에서는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보잘것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수 백 년 수 천 년 수 만 년을 지내오며 태어나고 자라난 자연의 생명들이다. 자연의 창조물이다. 햇빛과 달빛과 바람과 공기와 새벽이슬과 죽어 썩어가는 나뭇잎들을 통해 태어난 위대한 자연의 위대한 걸작품들이다. 숲에서는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먹을 수 없는 버섯조차도 중요하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버섯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들도 너무나 중요한 존재이다. 이들은 숲이 생명을 다한 동물들이나 나무들의 시체로 가득 차는 것을 막아준다. 생명을 다한 것들을 저들이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낸다. 그들을 분해하여 흙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보잘것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오직 사람의 눈에만 보잘것없는 생명이 보일 뿐이다. 숲에서는 보잘것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오직 사람 사는 세상에서만 보잘것없어 보이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슬픈 일이다. 마음이 아프다.
자연은 모든 생명들에게 똑같이 은총을 베푼다. 생명들의 모습이 다르고 나무들의 모양이 다를 뿐이다. 다르다고 해서 자연이 다른 은총을 베푸는 것은 아니다. 다르게 자랄 뿐이다. 자연은 버드나무에게도 상수리나무에게도 소나무에게도 주목나무에게도 똑같은 은총을 베푼다.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똑같이 자라지 않을 뿐이다. 소나무와 주목나무가 똑같이 자라지 않을 뿐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갈 뿐이다.
숲에서는 다르다는 것은 은총이다. 다름은 숲의 선물이다. 다르기 때문에 수많은 생명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다. 숲이 이루어진다. 숲에서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살린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만 다른 것이 용납되지 않을 뿐이다. 다른 것을 미워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서로 다른 것이 이유가 돼서 죽이며 싸우는 것은 오직 사람들뿐이다. 보잘것없는 것이 있는 곳은 오직 사람들이 사는 세상뿐이다. 그것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래서인가. 아무래도 그래서인가 보다.
지나는 이들 없는 겨울 산에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은 나뿐인 듯하다.
나무들 싱그럽고 풀들 바람에 흔들린다.
겨울 산에서 올려다보는 겨울 하늘은 높고 맑다.
나를 보며 빙긋이 웃는 듯하다.
최창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