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화)

  • 구름많음동두천 9.3℃
  • 흐림강릉 2.8℃
  • 맑음서울 11.6℃
  • 구름많음대전 11.7℃
  • 구름많음대구 10.9℃
  • 구름많음울산 7.7℃
  • 구름많음광주 14.8℃
  • 맑음부산 11.4℃
  • 맑음고창 12.8℃
  • 흐림제주 11.6℃
  • 맑음강화 8.6℃
  • 구름많음보은 10.9℃
  • 맑음금산 11.4℃
  • 흐림강진군 12.3℃
  • 구름많음경주시 9.2℃
  • 흐림거제 10.3℃
기상청 제공

아침이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겨울 산으로 들어간다. 속리산이다. 지금은 세속과 가까워 졌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멀리 떨어진 깊은 산이었으리라. 그래서 속세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으리라. 속리라는 그 이름 때문이기도 하였으리라. 그 이름을 그리워하며 마음 길 따라 살기를 원하던 이들이 들어가 마음공부를 하며 살던 산이기도 하였으리라. 제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세속의 삶을 떠난 이들이 몸 기대어 살던 산이기도 하였으리라. 그런 이들로 인해 속리산은 더욱 깊은 산이 되었으리라. 그런 이들의 마음이 깊어질수록 속리산도 더욱 깊어졌으리라.
그렇게 깊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따라 더욱 깊어진 속리산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깊어진 산을 따라 산을 지나는 이들의 마음이 깊어지는 겨울 산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마음이 상한다. 마음 길 따라 살아가겠다고 산으로 들어간 사찰 사람들이 길을 막아선다. 속세의 사람들조차 산이 모두의 것임을 알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날 수 있도록 돌려준 것을 마음 길 따라 살겠다고 속세를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온 사찰의 사람들이 제 것이라고 아우성치며 길을 막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 그 오래된 사찰의 마음도 돈 몇 푼에 세속을 떠나지 못하고 있구나.
겨울 산을 지나는 이들의 시린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는구나. 따뜻하게 품어 안지 못하는구나.
하기야 마음 길 따라 사는 것이 어디 산중만의 일이랴. 산 중에 있다고 마음 길을 따라 사는 것은 아니다. 속세에 몸을 두고 살아도 마음 길 따라 살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유혹이 많은 세속의 삶이 마음공부를 하기에 더 합당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세속의 유혹이 없는 산중의 삶이 마음공부에는 합당치 않은 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곳인지도 모르겠다.
돈 몇 천 원 건네며 마음 한구석 씁쓸한 마음을 미뤄 놓고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으로 인해 상한 마음을 산이 위로해 주려는가. 바람이 불어온다. 산자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려온 산바람이 씁쓸했던 마음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쓸어간다. 지나는 바람을 따라 몸을 돌린다. 나무들도 나처럼 반가운 모양이다. 몸을 흔들며 바람이 지나는 길을 따라 몸을 돌린다. 나무들도 바람을 따라가고 싶은 모양이다. 하긴 어찌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을 어찌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바람 따라 흘러가며 어찌 세상을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 때문일까. 나무들마다 아우성이다. 나무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린 노린재나무도, 수십 가닥의 가는 가지를 하늘로 곱게 뻗은 말발도리도, 세월의 무게를 담고 듬직하게 서있는 당단풍나무도 모두 바람을 따라 가고 싶은 모양이다. 그 곁으로 서 있는 산딸나무, 전나무도 가지를 흔들며 제 마음을 드러낸다. 어디 그들뿐이랴. 점잖게 서 있는 졸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도 모두 슬며시 가지를 기울여 바람이 지나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들도 나처럼 바람을 따라 흘러가고 싶은 모양이다. 바람을 타고 이곳 저곳으로 날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제 마음 길 따라 말이다.
제 마음의 깊은 사랑을 찾아서 말이다.
잃어버렸던 제 삶의 깊은 사랑을 찾아서 말이다.
바람이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 곁으로 계곡이 나있다. 꽤 넓고 깊은 계곡이다. 산중의 겨울은 깊어지고 계곡 기슭마다 눈이 쌓여있는데도 계곡으로 물이 흐른다. 기슭에 갈대가 무성하다. 숲을 이루었다. 햇살을 받은 갈대가 빛난다. 빛바랜 갈대이다. 바랜 빛이 더욱 빛난다. 세월이 흐르며 깊어진 마음 때문이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흐르는 계곡물 위로 깊어진 갈대의 빛바랜 줄기가 흔들리며 드리워져 있다.
아무래도 이 산에는 마음 길 따라 살아가는 것들은 이들 뿐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속세를 등진 깊은 산에서도 마음 길 따라가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보니 그리 오래지 않아 사람의 흔적이 사라질 모양이다. 아무래도 제 욕심을 따라 살다가 서로 다투고 미워하다 종내는 바람에 대고 제 마음의 말을 전하는 나무들만 남을 모양이다. 산기슭 계곡물만 말없이 흐르고 흐를 모양이다.
바람이 분다.
어느 산기슭 곁에 서서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본다.
내 얼굴이 비췬다. 내 모습만 비취는 것이 아니다. 내 곁에 나란히 선 나무들의 모습도 비췬다. 서로를 바라보며 반갑다는 듯 몸을 흔든다. 웃는 듯 보듬어 안는 듯 서로 엉키며 흐르는 물길을 따라 함께 흐른다.
하나 되어 흐른다.
강도 나무도 나도 산도
모두 하나 되어 흐른다.
떠난 빈자리에
바람이 차다.


최창남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