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대통령 직속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진실위원회)’가 유신 독재 시절의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일부 언론에 유출한 사건 이후, 사회적 관심은 유신 시대의 인권 탄압이 아닌, 당시 재판관 이름의 공개 적절성 여부로 쏠리고 있다. 본말이 전도되고 있는 현상이다. 판례를 분석하자면 그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의 이름이 따라붙는 것은 상식이나 수구언론과 박근혜 측은 이를 ‘정치 공세’라며 반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친일파 명단을 공개했을 때처럼 야단법석이다. 유신독재라는 인권탄압의 시대를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것은 국민적 합의였고 이를 법제화한 것이 ‘진실위원회법’이다.
독일은 통일 이후에도 과거 청산 작업 즉 탈나치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독일에서의 과거 청산 작업 시작은 2차 대전 패전 직후인 1945년 11월 20일의 남부 도시 뉘른베르크 재판부터였다. 연합군이 주도한 이 재판은 주요 핵심 전범들을 반인륜적 범죄자로 단죄했다. 히틀러는 패전과 동시에 자살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법정에서 교수형 (12명), 종신형(3명), 징역 20년(2명), 15년 징역(1명), 징역 10년(2명), 무죄(3명)라는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그 후 1949년 서독정부가 수립되고 연합군으로부터 탈나치화 작업의 관할권을 이관 받은 직후부터는 처벌강도가 현저하게 약화되었고 국민들도 한 동안 침묵을 지킨 적이 있었다. 같은 민족에 대한 청산작업에는 아무래도 고충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는 친일파 문제 처리 등을 ‘과거 청산’이라고 부르나 독일에서는 과거 극복(Vergangenheitsbewaltigung)이라는 말을 쓴다. 극복은 아프더라도 참고 이겨내자는 의미이다. 독일인은 자신들이 저지른 오욕의 과거사에 대한 청산 작업을 모범적으로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극복 작업은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비교적 엄정하게 과거사의 진상을 가리고,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국민의 합의 아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형태로 지금도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과거사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매우 제한적인데도 그러한 시도마저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사회적 갈등과 대립 현상을 고의적으로 유발하는 세력이 현존하고 있다. 독일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진작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던 긴조시대의 재판 실상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된 것은 이 용훈 대법원장의 처신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대법원장 취임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고 말했고,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도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 등 과거사를 재심사건 판례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이 있다. 그런데 그가 판사 명단이 공개되자 공보관을 통해 “과거사 정리 작업은 사법부를 놓고 편 가르기 하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안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의 본심을 알 수 없다. 이른바 ‘유신 판사’의 명단은 덮어두자는 것인지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가 지금 망설이는 것은 과거 변호사 시절의 비위 의혹과 관련, 떨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번 이름이 밝혀진 판사들은 긴조 위반자를 기소한 검사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는데 대해 내심으로 섭섭하거나 분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긴조 위반 사범을 때리고 고문하고, 그것도 모자라 허위조서를 작성해서 재판에 올린 검사들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비겁해서 그랬든, 좋아서 그랬든 긴조 사범의 수사나 재판에 간여한 검사와 판사의 이름쯤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서 법조계의 교훈을 삼아야 한다.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던 독일의 경우를 들먹이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들을 처벌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현직에 있다면 물러남이 옳은 것이고, 지난날의 과오를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한 다음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이제 우리도 유신의 잔재를 털어내기 위한 탈유신화 작업에 나서야 한다. 공권력 분야는 물론이고 사회 각 분야까지 먼지떨이를 대야 한다. 유신본당과 야합한 DJ는 못했지만 노무현 시대부터는 가능하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시작이 반이다. 올해는 6.10민주항쟁 20주년이다. 그 날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민주시민이 아직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아프지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 할 시대적 과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