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겨울 숲이다.
나무에는 빈가지만 무성하고 숲가에는 바람만 서성인다. 모든 것이 떠난 듯하다. 그러나 모두가 떠난 것은 아니다. 모두가 떠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여전히 나무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새 봄이 되면 푸르디푸른 여린 잎들을 틔울 가지들도 그대로 있다. 행여 땅 속에 깃든 생명들이 혹독한 겨울 숲의 추위에 얼어 죽을까 염려하여 길도 떠나지 않은 채 따스하게 품고 있는 마른 나뭇잎들도 그대로 있다. 혹한의 추위로 인해 얼음에 갇혀 흐르지 못하고 있지만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들도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모두들 그 자리에서 겨울 숲을 지키고 있다. 새 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끼륵 끼륵 끼륵’
‘째재재재짹 째재재재짹’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새들도 남아 있구나.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겨울 숲의 새소리이다. 반가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을까. 이 혹독한 겨울 숲의 추위에서 어디에 몸을 뉘이고 있을까. 새는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만 지난다. 가슴 시리도록 파랗다.
모두들 떠난 것은 아니구나.
그래도 남아 있어 지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구나. 그 위로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겨울 숲처럼 숲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은 없다. 겨울 숲을 지나보아야 봄과 여름과 가을의 숲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겨울 숲은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생명일지라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가르쳐준다. 마른 나뭇잎 한 장도, 저 혼자 머물고 흐르는 바람 한 점도, 얼어붙은 물 한 방울도, 때로 서글프게 들리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모두 겨울 숲에서는 참으로 소중하다.
때로 사람이란 참으로 어리석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가슴 사무치도록 느낀다. 자신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세상이 정해준 삶의 목표를 이루겠다고 아우성치다가 송두리 채 제 삶을 잃어버린 후에야 한 번 뿐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다. 가져 보아야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가지겠다고 허우적거리다가 제 삶의 전부인 사랑을 잃어버린 후에야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잃어버린 자들만이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사랑을 잃어본 자들만이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듯이 말이다. 삶의 끝에 서서 마지막 숨결을 내 뱉어본 자들만이 한 숨결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듯이 말이다. 가슴이 저려온다. 아프다. 삶이 숲과 같을 수는 없다. 겨울 숲과 같을 수는 없다. 겨울 숲이야 다시 맞을 봄이 있지만 삶이야 그렇지 않다.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 온 삶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오직 삶의 남은 날들을 새롭게 살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을 삶의 새 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제라도 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살아가는 시간들을 삶이 맞이할 새 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렇게까지 가슴 깊이 사랑할 수 있었는지, 왜 그 사랑이 그토록 절실하고 그리웠는지, 왜 눈물 흘리고 왜 깊이 상처 받아야 했는지 그 의미를 깨닫고 살아가게 될 시간들을 삶이 맞이할 새 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왜 나뭇잎이 떨어지는지 왜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노래하는지 왜 구름이 흐르다 비가 되어 내리는지 그 의미를 깨닫고 살아가게 될 시간들을 삶이 맞이하게 될 새 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게라도 부르고 싶다. 그런 봄마저 없다면 삶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말이다. 얼마나 슬프겠는가 말이다. 참혹하겠는가 말이다.
모든 것이 떠난 듯 적막하기만 한 겨울 숲을 지난다. 겨울 숲을 지나면 겨울 숲의 맑은 눈으로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 볼 수 있다. 텅 비어 맑아진 숲의 마음으로 제 마음 깊은 곳까지 느낄 수 있다.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참으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참으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잃어버리고서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헛헛하기만 했던 삶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참으로 어리석게 살아왔던 제 모습을 그대로 만나 보듬어 안을 수 있다.
반가움 때문인가. 슬픔 때문인가. 텅 빈 겨울 숲을 지나며 눈물이 난다.
하늘은 높고 맑기만 한데 나 홀로 겨울 숲을 지나며 눈물이 난다. 겨울 숲 깊은 곳에서부터 찬바람이 불어온다. 옷 속으로 스며든다. 뼈 속으로 젖어든다. 춥다. 몸에 오한이 나는 듯 춥다.
그래서인가 보다.
그래서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기운이 이는가보다.
따스해진다.
최창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