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감정을 가지고 화난 표정을 나타내는 행동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분노라고 한다.
그리고 좌, 우에 치우치지 않는 이성적 상태에서의 행동을 냉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 살아갈 때에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을 가끔 듣게 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냉정한 이성적 판단 하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분노를 참지 못하여 법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감정상태에서 완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가리켜 하는 말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여당과 야당에 몸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심한 몸싸움을 하거나, 때로는 단상을 점령하여 저지하는 등 분노의 모습이 가득찬 채 으르렁대고 있는 모습을 가끔 TV를 통해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국회의원들이 과연 ‘분노해야 할 때에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분노하지 않고 냉정해야 할 때에 분노하고 있지나 않은지 의아하게 생각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겉으로는 ‘국민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지만 내면적으로는 당리당략과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하여 분노를 나타내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리사욕이나 집단적 이기주의, 그리고 당리당략을 충족시키기 위해 분노한다면, 그런 분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국가전체의 이익을 파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회의원이란 자리는 국민을 대신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욕을 위한 분노는 냉정한 이성이 결여된 의미 없는 분노로써 지탄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냉정한 이성적 기초위에 필수적으로 분노해야 할 때에 분노하는 의미 있는 분노야 말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위대한 분노가 될 것이다.
냉정해야 할 때에 의미 없는 분노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사회가 된다면 이 나라는 소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인은 어떤 역경과 유혹 속에서도 흰 것은 희다고 할 수 있고, 검은 것은 검다고 할 수 있는 소신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이 미칠까 염려하여 만일 흰 것을 검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보다 더 비겁하고 비굴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또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만일 부정직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보다 더 잘 산다던가 또한 권모술수의 거짓투성이로 살아가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보다 더 빛을 보는 사회가 계속된다면 국민들이 무슨 의욕을 가지고 살맛나는 삶을 살아가겠는가?
많이 배웠다고해서, 많이 안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배운 것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이 훌륭한 인격자다. 정치인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최소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도덕성을 상실한 정치인은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는 있지만 장래는 없다. 신념도 지조도 도덕성도 없이 자신의 이익과 살길만을 찾아간다면 병든 이기심으로 가득한 한국사회는 썩을 대로 썩어가는데 정치인마저 같이 썩어간다면 누가 우리 사회를 정화하겠는가?
공자가 도천(盜泉) 이라는 곳을 지났을 때 몹시 갈증이 났지만 그곳의 샘물에 눈길 한번 던지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 까닭은 ‘도천’이란 ‘도둑의 샘물’이라는 뜻을 가졌기 때문이며 그 곳의 샘물을 마실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샘물의 이름이 도(盜)자가 들어있다고 목마름을 참는 그 고결한 자존심 앞에 정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지방의원이든 국회의원이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적당히 시류에 편승하여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지 말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정신이 살아있어야 정의가 서고 윤리가 세워지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정치인은 쓸데없는 이론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이 해야 할 것은 오직 행동이다.
박 남 숙 <용인시 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