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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굽이치고 넘실거리며 헤아릴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깊고 오랜 세월을 유유히 흘러온 포토맥 강을 바라본다.

빈 나뭇가지에 아직 새싹이 돋지 않았는데 이제 봄이 오려나.

겨우 내내 제 자리를 지켜 온 얼음덩어리들이 녹아 흐른다. 강줄기를 따라 더 큰 강으로 흐르는 돛단배들처럼 흐르듯 나아간다. 제 갈 길을 알지 못한 채 물줄기를 따라 흐르기만 하던 어린 시절 냇가에 띄우던 종이배처럼 흐른다. 그 모습이 때론 나무토막 흐르듯 기우뚱거려 위태해 보이고 때론 나뭇잎 흐르듯 유유하다. 수십 수백의 작은 배들이 물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는 것만 같다. 작은 배들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들이 흐르는 것이다.

흘러 온 물길을 바라본다.

굽이치며 흘러온 저 끝은 굽이굽이 돌고 돌아 보이지도 않는데 그곳에서부터 강은 이렇게 흘러오고 있다.

흐르는 이 강물들은 지나 온 세월, 두고 온 시간들이 그립지는 않을까. 두고 온 물줄기들이 그립지는 않을까. 굽이마다 내려놓은 제 삶의 흔적들이 사무치듯 그립지는 않을까. 깊고 깊은 사랑에 마음 뜨거웠던 날들이 사무치듯 그립지는 않을까. 그 사랑을 잃고 달빛만 고요하던 어느 골목에서 흐느껴 울고 목 놓아 울던 날들이 절절하게 그립지는 않을까. 그 사랑을 잃고 괴로워하던 마음과 몸을 추슬러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날들, 가난하고 고통 받던 이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젊은 날들이 그립지는 않을까. 함께 살아가고자 했던 이들의 악착스러움과 어리석음에 찔리고 상처 받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지난날들이 눈물겹게 그립지는 않을까.

그렇게 기쁘고 아팠던 모든 순간들, 그렇게 사랑하고 절망했던 모든 날들이 제 삶의 일부이고 전부인 것을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말이다. 어찌 사무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묻어 놓고 사무침은 사무침대로 놓아둔 채 강물은 흐르고 있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제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물줄기를 따라 마음도 함께 흘려보낸다. 넘실대고 굽이치며 흐르고 흘러가는 물줄기의 끝을 바라본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보이지도 않는 물결 너머로 흐르는 물줄기들을 바라본다.

그리움 묻어 놓고 떠나온 인생길에서 이제는 그리움 없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그리움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그리움들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사무친 모든 것들을 그대로 놓아 둔 채 떠나 온 인생길에서 이제는 사무침 없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다시 놓아둔 채 떠나야 할 사무치고 절절한 아픔들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절절한 아픔들로 인해 삶은 삶다워지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강줄기의 끝에 그들이 원했던 삶이 있을까. 그 곳이 그들이 가고자 염원했던 곳일까.

그 곳에 그들의 삶이 있을까.

바람이 불어온다. 빈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부딪힌다.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마른 장작 타듯 ‘타다닥 타다닥’ 소리를 낸다. 하늘을 바라본다. 마른 장작 타듯 소리를 내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침침하다. 어두워진다.

눈이 오려나. 봄이 올 듯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더니 다시 눈이 오려나.

눈이 내린다. 2월의 끝에 눈이 내린다. 조금씩 내리던 눈이 이내 함박눈이 되었다. 펑펑 쏟아져 내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조용하다. 내리는 눈 때문인가. 고요해진다.

 

‘타다닥 타다닥’ 소리를 내며 흔들리던 나뭇가지들도 이제는 소리 내어 울지 않고, 넘실거리고 굽이치며 소리 내어 흐르던 강줄기도 소리 없이 흐른다. ‘윙~윙~’ 소리를 내며 불어오던 바람도 잠잠하다. 나뭇가지 위로 눈이 쌓인다. 나무들에 눈이 쌓인다.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 가득한 포토맥 강 가의 숲에 눈이 쌓여간다. 강에도 눈이 내린다. 강에 내리는 눈은 나무숲에 내리는 눈과는 달리 쌓이지 않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녹아들어 하나 되어 흐른다. 말없이 하나 되어 흐른다.

눈발은 더욱 굵어진다. 참나무 숲에서 유유히 흐르는 포토맥 강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는 내 머리 위로 굵어진 눈송이들이 내리고 있다. 땅에도 나무에도 내 몸에도 눈이 덮여간다. 모든 것이 하얘진다. 땅도 나무도 나도 흐르는 물줄기도 하얘진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눈 속에서 하늘도 땅도 나무도 강도 나도 모두 하나가 된다.

발걸음을 떼며 바라 본 하늘에 새 한 마리 날아간다.

이 눈 내리는 겨울에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새들이 있나보다.

제 삶의 길을 찾지 못한 이들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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