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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논의’피하지 말자!

 

지난 반세기 이상을 원수로 지내던 북한과 미국이 올봄부터 갑자기 깊은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변한만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변하고 있다는 조짐이다. 이대로 가면 두 나라가 한반도에 그토록 기다렸던 ‘평화’를 선물할 기세이다. 이렇듯 견원지간이던 다른 민족끼리도 대화를 통한 화해와 상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권과 언론은 ‘개헌’이라면 대화나 지상 토론마저 거절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어 개헌 논의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얼른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탓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지지율과 개헌발의 행위 또는 조건부 유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는 대선 기간 중 국민에게 자신의 임기 중 ‘개헌 발의’를 공약한 바가 있다. 다만 지난해 쓸데없이 한나라당에게 연정 제안을 해서 시간만 낭비했는데, 차라리 개헌 발의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민 다수는 개헌은 찬성하지만, 그 시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다음 대통령 때라야 좋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그러나 여론이란 아침저녁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노 대통령도 이런 점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1월 초엔 개헌 발의를 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달 들어서는 개헌 시안 발표와 함께 ‘조건부 유보’라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정부 주최 개헌 관련 공청회 등 여러 기회를 만들면 국민들이 현 헌법에 대한 문제를 알게 되면서 여론의 변화도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승부사 기질이 강한 정치인이다.

설사 올해 안의 개헌을 지지하는 여론이 다수로 변한다 하더라도 국민 투표까지를 마칠 수 있을지는 아주 불투명하다. 우리는 경성헌법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고치자면 국회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에서 투표자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경성헌법이다. 대선 일정 등을 볼 때 정치인들은 국회를 등한시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시간이 별로 없다. 더구나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야당의 입장 정리를 촉구하는 것은 정략적이라기보다는 개헌 자체에 대한 집착인 듯이 보인다.

올해는 문제의 ‘87헌법’ 마련의 기폭제가 되었던 6월 민주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동안 많은 헌법학자나 시민단체들은 87헌법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헌법은 절차적 민주주의에만 중점을 두었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받고 있다. 심지어 한나라당이나 수구언론들도 개헌을 적당한 시기(2007년 중)에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했던 수구세력들이 막상 노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꺼내자 막무가내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개헌 바람이 혹시 반 한나라당 바람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지 않을 가를 우려하는 듯 하다.

노 대통령이 발의하려는 대선과 총선의 시기 일치 그리고 대통령 4년 연임 조항을 담은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다. 5년 단임제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주장(민주당 조 순형의원), 내각 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충남대 명 재진 교수), 민노당처럼 4년 연임제일 경우 민노당 집권은 더 멀어진다는 주장(권 영길 의원) 등 백가쟁명 식으로 여러 주장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문제라면 먼저 원 포인트 개헌을 하고 난 다음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87헌법은 신군부와 3김씨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임은 자명하다. 더구나 20년 지난 20세기의 헌법이다. 이 헌법은 21세기 정신을 담고 있지 못하다. 거기다 한반도 평화나 남북통일의 정신도 빠져 있다. 이런 헌법이 고쳐져야 하는 것은 당위이다. 앞으로 발생할 한반도 환경의 변화를 감안할 때 개헌 절차를 좀더 용이하게 하는 문제도 논의되어야 한다. 바로 까다로운 개헌 절차를 규정한 경성헌법의 폐기 여부다. 통일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독일도 통일 이후 헌법을 고쳤다. 그러자면 경성헌법보다는 일반 법률처럼 국회의원 과반수로 개정이 가능하고, 국민투표라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 없는 연성헌법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발의하면 안 되고 다음 대통령은 발의해도 좋다는 여론은 올바르지 못하다. 설사 당론으로 정해진 개헌공약이라도 다음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각오하고 발의하리란 보장은 없다. 과거 여러 대통령들의 전례가 있다. 현직 대통령이 헌법 절차에 따라 개헌 발의를 한다면 논의를 활성화하는 것이 민주 사회이다. 민주 사회엔 국민의 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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