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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예술 ‘재미·감동의 옷’ 입히자

연극·무용·음악회 너무 클래식 관객 외면
시대 흐름·감성 접목 대중성도 제고해야

 

지난해 11월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2006년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들 대부분이 여가시간에 쉬거나 텔레비전 보기에 집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가시간에 ‘텔레비전을 보거나 집에서 쉰다’는 응답이 평일 43.7%, 주말·휴일이 29.0%에 달했다. ‘텔레비전 보기’와 ‘집에서 쉰다’와 같은 여가생활은 2000년(평일기준) 34.1%에서 2003년 38.9%,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다. 주말에는 주5일제가 도입되기 전인 2003년 26.4%보다 2006년 29.0%로 2.6%포인트 증가했다.

본격적으로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부터 전문가들은 이미 예상했던 결과이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미술관, 극장을 자주 찾으리라는 순진한 기대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빈약해진 문화생활은 그나마 영화에 지나치게 편중되고 있다.

국민들 100명중 1명이 무용공연을 볼 동안 39명은 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예술분야보다는 접근성이 좋고 값이 싼 영화를 선택해 문화생활을 즐기는 국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영화 관람률은 2003년 53.3%에서 2006년 58.9%로 증가했으나 미술 전시회, 클래식 음악회, 전통예술, 연극, 무용 등 이른바 기초예술분야의 관람률은 오히려 감소했다.

국산 영화의 질적 수준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순수예술에 비해 비중이 너무 높은 편이다.

3년 전 조사와 비교했을 때 분야별 관람률은 미술전시회 10.4%에서 6.8%, 클래식음악회·오페라 6.3%에서 3.6%, 전통예술 5.2%에서 4.4%, 연극·뮤지컬 11.1%에서 8.1%, 무용 1.1%에서 0.7%, 대중가요·연예 10.3%에서 10.0%로 각각 감소했다. 뮤지컬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가운데 이런 수치가 나타난 것은 연극인구의 대폭 감소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간의 조사를 보면 문화예술을 감상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묻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수위를 다투는 두 가지가 있다. ‘시간’과 ‘비용’이다. 이것은 국내외의 거의 모든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정말 시간과 돈이 모자라서 공연을 보지 않는다는 응답을 믿기는 어렵다. 실제로는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돼지고기 한칼 아껴 영화를 보고, 쇠고기 한 칼 아껴 연극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공연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는 교보문고를 비롯한 모든 서점에서 앞줄에 진열되는 책들이 처세를 비롯한 실용서와 같은 가벼운 읽을거리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 현대인들은 고단한 삶에 지쳐서인지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 자체를 기피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21세기를 살아가는 능력이 문화력이고, 문화력의 원천이 연극과 무용, 음악과 미술, 그리고 문학인데-아마도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공연장과 미술관, 서점이 요즘처럼 한산할 리가 없다. 오직 흥행이 잘 되는 공연은 현란한 춤과 화려한 의상이 어우러지는 뮤지컬뿐이다.

공연펀드가 만들어져 제작자들로부터 크게 환영 받는다고 하지만 이 역시 뮤지컬에 집중될 것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자본을 대는 주체가 손해를 보면서 연극이나 무용에 투자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모든 공기업이 서비스 우선을 구호로 내걸지만 결국은 사업수입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는 당연히 수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말이 기억난다. “이 세상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체험의 부피와 깊이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는 소박한 결론이다.

그러나 문화 감수성은 이제 삶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삶의 능력이 상상력과 통찰력임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그런데 개개인이 문화력의 원류인 문화체험을 기피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탓하기에는 석연치 못한 구석이 있다.

바야흐로 시대가 원하는 재미와 감동에 대한 예술가들의 통찰력과 분발이 절대로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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