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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35>

‘자연을 읽으라고 가르친’ 도신-소설가 이재운

전법게를 내린 승찬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혜가 대사는 나에게 법을 전하신 뒤에는 곧바로 다른 곳으로 가셔서 30년 동안이나 교화를 하시다가 열반하셨다. 나도 이미 너에게 법을 전했으니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 즉 도신을 인정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보이겠다는 말이다. 이미 전법을 했으니 도신도 그만큼 컸다는 입증으로 승찬은 자신이 하던 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도신에게 맡긴 것이다. 이는 앞의 조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더 폭넓은 교화를 펴야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자신의 권위와 인격이 침해될까봐 충분히 일을 해낼 수 있는 부하가 많이 있는데도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요즈음 사람들의 의식 풍토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선사들의 행적은 좋은 귀감이 되어줄 것이다.

절에서도 그렇다. 중생을 찾아다니며 하는 교화가 아쉽다. 요즈음에는 탁발도 금지되어 스님들은 산간에만 있어도 되게 되었다. 필요한 것은 모두 신도들이 갖다 준다. 텔레비전도 놔주고 전화도 연결해준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바나나, 파인애플, 자몽, 키위같은 비싼 과일도 떨어질 새가 없다. 세상에 내려갈 일이 없다. 절에 찾아오고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만이 사람이 아니다. 이제 공부가 웬만큼이라도 된 사람들은 찾아오는 신도들을 맞아 택일하고 궁합보고 잡담하는 일을 집어치우고 ‘자기의 세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중생이라는 큰 논을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안 가보아도 비가 내려 자라기야 자라겠지만 그래도 돌보는 논 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스님이라면 중생이라는 논의 지주(地主)인데 소작농을 불쌍하게 생각해주지 않는다면 밥 한 술 먹는 것도 수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얻어먹기만 하고 빌빌댄 스님은 죽어서 신도집 소가 된다고 하는 경계의 말이 있다.

승찬은 그 뒤 나부산으로 가서 교화를 하고 도신은 그곳에 계속 머무르면서 승찬의 뒤를 이어 더 설득력있는 교화를 폈다.

말년에는 승찬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홍인에게 맡기고 파두산으로 가서 열반할 때까지 머물렀다.

651년 9월 4일, 도신은 갑자기 문인들을 모두 모이게 하라는 분부를 내렸다. 문인, 대중, 좌중은 모두 한 무리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지막 설법을 하려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은 모두 다 중생을 해탈케 하는 것이니 잘 보호해 갖고 있다가 미래의 유정들을 교화해라.”

이 말은 물론 임종 설법의 일부다. 사족을 붙여본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모두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는 재료라는 말은 곧 자연이 거대한 가르침의 덩어리, 진리의 덩어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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