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에는 죽어 쓰러진 밤나무들로 가득했다.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으로 시려진 가슴을 씻기 위해 들어간 숲에는 고사병(枯死病)으로 쓰러진 밤나무들로 가득했다. 마치 원시림에 들어온 듯하였다.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했다. 모두 3미터에서 6미터까지 자란 나무들이다. 제 삶을 살아갈 만큼 자랐을 때 해충의 공격을 받아 말라죽은 나무들이다. 어떤 나무들은 쓰러진지 오래 되어 이미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어떤 나무들은 선 채로 말라 죽어 있었다. 나는 죽어 분해되어가고 있는 밤나무들의 몸을 만지며 슬펐다.
돌아갈 수 없는 지나온 내 삶의 조각들이 그곳에 그렇게 누워있는 것만 같았다. 제 삶을 살아갈만하게 자랐으면서도 제 삶을 지켜내지 못한 밤나무들을 보며 떨어져 나간 내 삶의 조각들을 보는 듯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었고 교만이었고 나약함이었고 눈물이었다. 바스러져 내리고 있는 껍질들은 아문 것처럼 보이는 상처에서 떨어져 나간 딱지들 같았다. 그 딱지들도 분해되고 있었다. 상처에서 떨어져나간 딱지는 분해되어 가고 있었지만 내 상처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했다. 깊이 아팠다.
분해되고 있는 밤나무의 몸이나 껍질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도토리 하나 주워들었다. 다람쥐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탓에 상처 하나 없이 온전히 제 몸을 지키고 있는 도토리이다.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는다. 나무들이 열어 놓은 길을 따라 걷는다.
조금 걸어가자 큰 붉은 가문비나무가 서있다. 쓰러진 밤나무들에 비해 그 위용이 놀랍다. 세 그루 나란히 서있다. 그 앞에 붉은 가문비나무와 이 산에 얽힌 이야기가 적힌 작은 안내판이 있다. 약 1만년 전에 있었던 마지막 빙하시대 전 이 숲은 붉은 가문비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빙하시대를 거치며 대부분의 나무들은 죽었고 일부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빙하시대를 견디고 살아남은 나무들도 사람들의 손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사람들의 남벌로 붉은 가문비나무는 산에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약 70여 년 전부터 벌목을 금지하고 나무를 심었지만 지금도 산의 꼭대기에서만 붉은 가문비나무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붉은 가문비나무를 올려 보았다. 잘 생긴 나무였다. 위용이 서려있는 나무였다. 빙하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명력 강한 나무였다. 붉은 빛이 나무의 꼭대기에 어려 있는 듯했다. 나무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상서로워 보였다. 하지만 사람에 의해 이 산에서는 거의 멸종 될 지경까지 이르렀던 나무이다. 다 자란 밤나무들을 말라 죽이는 해충들도 밤나무들을 거의 멸종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건만 사람들은 이 큰 붉은 가문비나무를 거의 멸종에 이르게 한 것이다.
나무에게는 사람이 가장 큰 해충이구나.
숲에게는 사람이 숲을 파괴하는 가장 나쁜 바이러스로구나.

마음 슬프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 욕심에 그들을 죽이고 있다. 나뭇잎 한 장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 내는 공기와 에너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숲을 죽이고 있다. 하기야 제 욕심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것을 나무 한 그루 숲 하나를 어찌 해치지 못하겠는가 말이다. 생존이 아니라 욕심으로 생명을 해치고 죽이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을까.
숲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나무들마다 크고 작은 옹이를 달고 있었다. 큰 수박 보다 커 보이는 큰 옹이도 있었고 사과나 참외처럼 작은 옹이들도 있었다. 한 몸에 옹이들을 여러 개 달고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기이해 우스꽝스러웠다. 어떤 옹이는 우는 듯 표정을 짓고 있었고 어떤 옹이들은 웃는 듯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슬픈 웃음이었다. 하기야 눈과 얼음으로부터 제 몸 제 삶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생겨난 옹이들이 웃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나무들에게 옹이는 제 삶의 상처였고 상처에 내려앉은 딱지였다.
저마다 옹이를 달고 있는 것을 보니 나무들에게도 삶은 버거운 것인가 보다. 나무를 어루만지고 어루만진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 지나온 삶의 상처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는 아물었을까. 그 상처들에도 이제는 딱지가 앉았을까. 내 삶의 옹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여물어 가고 있을까.
슬픈 웃음을 짓고 있을까.
나무의 옹이를 어루만지며 그리워 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나는 아팠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어린 시절 지나온 날들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었을까...
숲은 깊고 외로웠다.
그 숲을 지나며 나는 눈물 흘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