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의 고릉을 배관(拜觀)코, 파평산 죽립석 금촌서 보아, 순식간에 문산역 당도해 보니, 상선의 돛대가 포구에 가득, 임진강 철교월편 화석정 거쳐, 장단역 잠간 쉬어 개성 이르니, 시가의 번화함과 물화(物貨)의 번창, 경성을 떠난 후로 제일이로다.” 이 노래는 해방 전 ‘경의선가’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려진 것인데 작자나 연대는 미상이다. 서울에서 의주까지의 여정을 장장 16절이나 되는 가사에 담고 있다. 이 대목은 임진강을 중심으로 일산과 개성 사이의 경관을 묘사한 것이다.
2007년 5월 17일 오전 11시 28분, 남북 철도 연결 구간 시범운행 열차 가운데 경의선을 담당한 남측 열차는 예정대로 종점인 개성역을 향해 문산역을 출발했다. 같은 시각, 동해선을 담당한 북측 열차는 금강산역에서 남측 제진역을 향해 출발 기적을 울렸다. TV 생중계화면에는 ‘경의선가’의 풍경이 대충 보였다. 경의선의 운행은 남북 전쟁 시기인 1951년 6월 12일 열차왕래가 끊어진 이후 56년만이며, 동해선의 경우는 1950년 이후 57년만이다.
경의선 열차는 문산역을 떠나 도라산역에서 북측 당국으로부터 승객들에 대한 간단한 세관 및 통행 검사를 받고 개성역에 도착했고, 동해선 열차는 금강산역을 출발, 감호역에서 남측 당국으로부터 승객들에 대한 똑같은 검사를 받았다. 경의선의 운행 거리는 27.3㎞, 동해선의 운행 거리는 25.5㎞이다. 양측은 오후 3시를 전후하여 군사분계선을 넘어 각 측으로 돌아갔다. 이날 시험운행의 승객은 남측에서 각 100명, 북측에서 각 50명이었다.
남북 양측이 이날 열차 시험운행을 하기까지는 실로 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될 당시부터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단절된 남북 철도 연결사업을 추진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늦어져 오다가 최근 남북 군사당국 간에 ’일회적 군사보장 조처‘가 합의됨에 따라 두 노선에 한하여 실시된 것이다.
열차는 막힌 군사분계선을 뚫고 남과 북으로 각각 달렸다. 그 장면은 바로 감동이었다. 그러나 남북 관계라면 시비를 거는 세력이 엄존한다. 특히 미국은 6자 회담의 진행 속도와 남북관계를 ‘속도 조절’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100년 전 미국은 우리를 속인 적이 있다.
우리는 ‘한미 동맹’을 말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남북 열차가 느리지만 쉼 없이 달렸듯이 앞으로 상시적 운행을 하자면 남북 모두가 인내와 지혜 그리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