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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포럼]5월에 되새겨 보는 민주주의

말장난 민주주의는 그만 새로운 전통 찾아나서야
바다서 숲을 그릴 줄 아는 비합법의 길 걸음마 시작

 

다시 민주주의의 계절이 왔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4월이었고 5월이었고 설렘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맛을 10년 동안 본 지금은 예전 같지 않게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다. 정치적 감각이 둔한 나도 그러니 분석력이 뛰어난 학자나 감각이 발달된 예인들은 벌써 챙기고 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슬그머니 든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나도 그 동안 허송세월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 동안 다행히 슬기로운 스승을 만나 이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분위기에 나름대로 들뜨지 않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장 먼저 깨닫고 자신 있게 선언한 부류는 역설적으로 보수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보수 세력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른바 뉴 라이트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깃발을 들고, 민주주의가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솔직히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이 민주주의라는 허위의식에 가장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는 부류도 역설적으로 이른바 진보그룹이라고 말해야 한다. 군사독재 아래서의 시민민주주의, 민족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니, 민주집중제니 하던 모든 조어가 그러했던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그들이 집권 세력이 된 이후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니,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은 실질적 민주주의니, 참여민주주의니 하며 그 미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 아닌가. 아직도 그들은 견인과 견제를 주장할 셈인가?

이제 민주주의는 형식이며 그 본질은 부등가교환이란 사실을 드러내고, 민주주의의 합법성과 부등가성을 구분하며, 실질적 민주주의니 하는 말장난은 거둬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불평등성을 백일하에 드러낸 보수 논객에게 한 수 배웠음을 인정하고 쪽팔림을 무릅써야 한다.

이젠 합법의 세상이 되었다고 인정하자. 최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기존 개념대로 온건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손잡고 합법공간을 넓혀놓은 것이라고 거칠게 정리하자. 기존의 초법적 폭력과의 대항 전선에서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이루어놓은 합법적 성과라고 말하자. 그것을 패배주의나 투항으로 치부하던 결정론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이제 합법을 넘은 비합법의 전통을 다시 찾아 이어나갈 새로운 준비를 해나가자.

한 방울의 빗물이 산꼭대기에 떨어져 고고히 서 있는 낙락장송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골짜기 골짜기의 온갖 찌꺼기를 쓸어안고, 가다가 웅덩이가 있으면 그 웅덩이를 착실하게 메우고 나서 나아가며, 폭포가 나타나면 과감하게 뛰어내려서, 들판을 지나고 마을을 지나며 온갖 쓰레기와 냄새나는 것들을 끌어안고, 갯벌을 지나 자기를 한 번 거르고 마침내 가장 낮고 넓고 깊은 바다에 이르는 길이 그 첫 번째 단계이다. 산꼭대기 고고한 낙락장송 한 그루가 전위가 아니다. 바다는 전위이고 대중이고, 그리고 마침내 하방통전이다.

그리하여 어느 따스한 여름날 태양의 도움을 받아 눈부시게 푸른 바닷물 알갱이 동료보다 먼저 제 몸을 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수증기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 절로 절로 떠다니다가 자유무역협정으로 가늘게 떨고 있는 묵정 논 벼 한포기에 단비로 떨어져 숲을 이룰 꿈을 그리자. 그 곳에는 강아지풀, 명아주부터 진달래를 비롯하여 소나무, 참나무는 물론 서어나무의 극상까지가 옹기종기 모여 오손 도손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생태평화사회민주주의란 어렵고 거창한 체제가 거기에 있지 않은가!

천개의 고원을 떠받치는 거대한 바다,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바다가 거기 있다. 지난 시절 우리는 억압해왔던 제국주의, 제국은 이제 더 이상 바깥에 있지 아니하다. 제국은 우리 안에 있는바, 그것은 더 이상 ‘우리 안의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쪽팔림 의식’이다. 자폐증이다. 대인기피증이다. 삼체이다. “없는 것이 있는 체, 모르는 것이 아는 체, 못난 것이 잘난 체”

이 쪽팔림에서 벗어나서 자기를 진정으로 열지 않고서는 이 천지와 만물과 어떤 관계도 회복할 수 없다. 실리도 명분도 없다는 쪽팔림 의식이 리베이트, 게이트, 오늘의 고액 연봉 감사 사태까지 초래한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것인가? 이제 ‘선진화’는 참여정부 입의 공식 언어가 되었다. 바다에 이르러 숲을 그리는 비합법의 길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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